딸의 배웅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방청석은 빈틈없이 찼다.
2019년 2월 27일 오후, 워싱턴 D.C. 레이번 하원 오피스 빌딩 2154호실. 청문회는 여덟 시간째였다.
증인석에 앉은 남자는 마이클 코언. 도널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이자 ‘해결사(fixer)’¹로 10년을 살았고, 이제는 위증죄와 선거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앞두고 있었다.
그날 그의 증언은 날이 서 있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사기꾼입니다. 협잡꾼입니다.”
10년간 그 사람의 그림자로 살았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질의가 끝나갈 무렵, 위원장 일라이자 커밍스가 마이크를 당겨 잡았다.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당신이 법원을 나서던 그날, 사진 한 장을 봤습니다.” 커밍스가 말했다. “따님이었죠, 아마. 치아교정기를 낀 채로 당신을 배웅하고 있더군요. 그 사진이, 그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딸이 둘인 아버지라서요.”
¹ 픽서(fixer): 유력 인사를 대신해 스캔들이나 법적 분쟁을 막후에서 조용히 해결해 주는 사람.

더 나은, 더 나은, 더 나은
코언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커밍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볼티모어 교회 강단에서 다져진, 권위와 품격이 밴 목소리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은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좌중이 숨을 죽였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 동안 청문회장 전체가 얼어붙은 듯했다.
“저는 이것이 당신 운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코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심장을 울렸다.
“그리고 이 시간이, 더 나은, 더 나은, 더 나은 마이클 코언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a better, a better, a better Michael Cohen)
“더 나은 도널드 트럼프, 더 나은 미합중국, 더 나은 세상으로요.” (a better Donald Trump, a better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a better world)
“이 말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코언의 어깨가 흔들렸다.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고, 다시 훔쳤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공화당 의원들조차 말을 잃었다. 하루 종일 고성과 신경전으로 채워졌던 청문회장에, 몇 초간 완전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증언이 끝난 뒤, 코언은 목이 잠긴 채 짧게 말했다. “커밍스 위원장님께 특히 감사합니다. 제게 진실을 말할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총알이라도 맞겠습니다”
코언과 트럼프, 두 사람의 인연은 뉴욕의 한 아파트 분쟁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소유 건물의 입주민이던 코언은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해 준 인연으로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 곧 그는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가 됐다. 적을 위협하고, 계약을 밀어붙이고, 언론의 입을 막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코언은 스스로를 “지정 폭력배”라 불렀다.
“나는 새어 나가는 걸 막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죠.” 그러고는 덧붙였다. 트럼프를 위해서라면 총알이라도 맞을 것이라고.
트럼프의 정치 참모들은 코언을 TV에 내보내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저 사람이 나올 때마다 우리가 갱단을 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입을 막아라
2016년 10월 17일, 코언은 델라웨어주에 회사 하나를 새로 등록했다. 이름은 에센셜 컨설턴츠.
열흘 전, 트럼프의 옛 녹취록이 터져 선거판이 뒤집힌 참이었다.
2005년 ‘액세스 할리우드’ 촬영장으로 향하던 버스 안. 트럼프는 진행자 빌리 부시 옆에서 유부녀에게 접근하려 했던 일을 자랑하듯 떠벌렸다. 스타면 여자들이 다 받아준다며 듣기 민망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라커룸에서나 하는 농담”이었다고 축소했지만, 십수 명의 여성이 실제 피해를 증언하며 파장은 커졌다. 대선을 3주 앞둔 시점이었다.
10월 26일, 코언은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13만 1천 달러를 새 계좌에 넣었다. 다음 날 그 돈은 성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변호사 계좌로 흘러들어갔다. 선거일을 열이틀 앞둔 날이었다.
대니얼스는 침묵의 대가로 서명했다. 트럼프는 그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다 잘될 거야, 강해져
2018년 4월 9일 이른 아침, 뉴욕. 연방수사관들이 코언의 자택과 사무실, 그가 묵고 있던 호텔 방문을 동시에 두드렸다.
그날 코언은 트럼프와 통화했다. “걱정하지 마.” 트럼프가 말했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야. 별일 아니야. 다 잘될 거야. 강하게 버텨.”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렇게 안심시켜 놓고, 트럼프는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다.
넉 달 뒤, 코언은 뉴욕 법정에 섰다. 탈세, 은행 사기, 선거자금법 위반. 여덟 개 혐의 모두를 인정했다. 그는 이 죄들을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그와 공모해”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해 11월에는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건과 관련해 의회에 거짓 증언한 혐의도 인정했다.
같은 날, 백악관 앞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코언을 저격했다. “이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에요.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고요.” 형량을 줄이려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쥐새끼가 된 남자
2018년 12월 16일 아침, 트럼프가 X 계정을 열었다. 코언을 가리켜 “쥐새끼(Rat)”라고 썼다. 마피아 세계에서 그 단어는 수사기관에 협조하는 배신자를 뜻한다.

나흘 전, 맨해튼 연방법원. 아내 로라와 두 자녀가 코언의 뒤에 앉았다. 판사석에는 윌리엄 H. 폴리 3세가 있었다.
코언의 목소리가 여러 차례 흔들렸다. “저는 트럼프 씨를 향한 맹목적 충성 때문에, 그의 더러운 짓을 덮어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세월이 자신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옥”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가족을 돌아보며 말을 맺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폴리 판사가 선고를 내렸다. 징역 3년.
“당신은 사기 행위의 종합선물세트를 인정한 셈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도덕적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변호사였던 만큼 더 잘 알았어야 했습니다.”
대신 치른 값
이 사건으로 실제 감옥에 간 사람은 코언 한 명뿐이었다.
출소 후 그는 회고록 『Disloyal(불충)』과 『Revenge(복수)』를 냈고, 팟캐스트 ‘미아 쿨파(Mea Culpa)’²를 열어 매주 트럼프를 때렸다.
2024년 맨해튼 형사재판에서는 검찰 측 핵심 증인으로 서서 트럼프의 사업 기록 조작 혐의를 입증했다. 그의 증언은 트럼프가 34개 혐의 전부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는 근거가 됐다. 건국 이래 어떤 대통령도 받지 않았던 낙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했다. 이듬해 1월, 판사는 그에게 ‘무조건 방면’을 선고했다. 징역도, 벌금도 없었다. 죗값은 코언이 치렀고,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다.
² 미아 쿨파(Mea Culpa): 라틴어로 ‘내 탓이오’. 코언이 출소 후 연 팟캐스트 이름으로, 트럼프 밑에서 일했던 과거를 반성한다는 뜻을 담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코언이었다.
지난해 여름 저녁, 뉴저지 베드민스터. 트럼프 소유의 프라이빗 골프클럽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몇 분이 수년의 적대를 풀었다.
코언은 형사재판에서 증언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은 이랬다. 코언은 애초에 트럼프와 완전히 결별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계속 그의 곁에 남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올해 1월, 코언은 서브스택³에 글을 하나 올렸다. 검찰이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답하도록 유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진보 진영은 곧장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 글은 백악관으로 전달됐고, 트럼프는 오히려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고 한다. 코언은 감사 문자를 보냈고, 두 사람은 플로리다에서 또 만났다.
“우리는 서로 배신당했다는 공통된 경험 때문에 다시 관계를 회복하게 됐습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코언이 한 말이다.
그는 라라 트럼프의 팟캐스트에 출연했는가 하면, 제프리 엡스타인 의혹에서는 오히려 트럼프를 감쌌다.
³ 서브스택(Substack): 개인이 구독형 뉴스레터나 칼럼을 직접 발행하는 미국의 온라인 플랫폼.
해결사의 밀당
2026년 7월 12일 일요일 오후 5시, 뉴욕 WABC 라디오. 새 프로그램이 첫 방송을 탔다. 진행자는 마이클 코언. 프로그램 이름은 “When You Know, You Know…”였다. 예고 방송 단 하루 만에 청취자 기록이 깨졌다. 코언은 이 새 무대를 “완전히 해방감을 주는” 자리라고 불렀다. 첫 방송 게스트는 트럼프의 오랜 측근 앤서니 스카라무치였다.
WABC는 친(親)트럼프 성향의 뉴욕 라디오 방송국이다. 지금은 여름 한철 임시 진행이지만, 그는 전국 방송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언젠가 트럼프가 직접 전화로 출연할 수도 있다는 말도 흘렸다.
트럼프의 침묵도 보상이었다. 재집권 이후 그는 다른 배신자들을 집요하게 물어뜯으면서도, 코언만은 한 번도 공개 비난하지 않았다. 법무부 역시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코언은 여전히 선을 긋는다. 모든 사안에서 트럼프와 생각이 같지는 않다고 했다. 대통령이 집무실 회의에서 졸았다는 의혹 같은 건 여전히 물고 늘어진다.

Now / What’s Next
2019년 청문회에서 일라이자 커밍스는 코언에게 한 가지를 더 당부했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지 마세요. 대신 이 일이 나를 위해 어떤 의미였는지를 물으세요.”
이 말을 남기고 몇 달 뒤, 커밍스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흑인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사당 국립조각상홀에 안치되는 예우를 받았다.
코언은 그런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까.
When You Know, You Know…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24 2026년 7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