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어느 날, 그는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비록 사흘간이었지만.
이듬해 봄, 닷컴 버블이 터졌다. 주가는 100분의 1로 줄었고 재산의 99퍼센트가 1년 만에 증발했다. 훗날 어느 언론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잃은 사람.’
손정의. 일본명 손 마사요시. 올해 예순여덟이다. 재일 한국인 집안에서 태어나 무일푼으로 시작해, 스물넷에 소프트뱅크를 세웠다.
이 남자가 지금 굴리는 돈은 한화로 수십조 원이다. 어지간한 나라의 1년 살림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시작은 할머니가 끌던 냄새 나는 리어카 옆, 그라운드 제로에서부터였다. 고개를 들지 못해 제 발밑만 보던 아이는 훗날 300년 뒤를 보는 남자가 된다.
이번 이너뷰는 ‘조센진’ 소리를 듣던 소년이 무작정 유명한 사업가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그의 실제 발언과 일화를 추려 새로 풀어냈다.

무번지(無番地)
번지수조차 없는 동네였다.
일본 규슈의 판자촌. 지도에 주소가 없어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무번지’라고 불렀다. 손정의는 1957년 그 동네에서 태어났다.
새벽이면 할머니가 어둠도 가시지 않은 골목으로 나섰다. 식당마다 들러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얻어 리어카에 실었다. 그것은 집에서 키우던 돼지의 먹이가 됐다.
리어카가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뒤따라 번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슬쩍 코를 막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 옆에 예닐곱 살 사내아이가 바짝 붙어 걷는다. 고개를 푹 숙인 채다.
손정의: 친구들이 볼까 봐, 그 냄새가 제 몸에 밸까 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커서 절대로 이 냄새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야스모토’라는 가면
가난보다 더 아팠던 건 이름이었다.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 하나로 아이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조센진’. 그 세 글자가 골목을 따라다녔다.
견디다 못한 집안은 결국 일본식 이름을 쓰기로 한다. ‘야스모토’. 그 이름 뒤에 숨으면 아무도 그를 조선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안전했다. 그러나 안전함이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열다섯, 그는 할머니에게 부탁해 부모의 고향 땅을 처음 밟는다. 대구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정을 베풀었다. 그 길가에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한마디를 했다. “다른 사람 덕을 생각해라.”
그다음 그가 향한 곳은 미국이었다. 그는 난생처음, ‘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세상을 보았다.
손정의: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건 이름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다는 걸요.
열아홉, 그는 일본 이름을 미련 없이 버렸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스스로 다시 차별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짓이라고.
그는 듣지 않았다. 훗날 일본 국적을 얻을 때조차, ‘손’이라는 성만은 끝내 지켜냈다. 가장 아프게 자신을 찔렀던 이름을, 평생 짊어지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성을 할머니의 리어카에 비유했다. 무겁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3분만 내주십시오”
열여섯 살 소년이 어느 사업가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60번이 넘었다.
“3분만 내주십시오. 사장실 문턱만이라도 밟게 해주십시오.”
상대는 일본에 맥도날드를 처음 들여온 당대의 유명 사업가였다. 소년이 가진 거라곤 그가 쓴 책 한 권과, 무모함뿐이었다.
결국 그 어른이 15분을 내주었다.
손정의: 제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앞으로 뭘 하면 좋겠느냐고요. 대답은 딱 한마디였어요.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온다. 미국에 가서 컴퓨터를 공부해라.”
그 한마디에 소년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열여섯 살의 눈이 그날 미래에 고정됐다.
몇 해 뒤. 성공한 그는 그 노신사를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리고는 60번 전화를 걸던 그 학생이 자신이었다고 밝혔다. 노신사는 크게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컴퓨터 300대를 주문했다.
머릿속을 팔다
스무 살 무렵,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는 작은 기계 하나를 떠올린다. 여러 나라 말을 자동으로 옮겨주는, 손바닥만 한 번역기였다. 문제는 그에게 그걸 만들 돈도, 기술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교수를 찾아갔다.
“지금은 드릴 돈이 없습니다. 대신 이게 성공하면 그 돈으로 다 갚겠습니다.”
첫 사업 파트너가 된 그 물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공학팀을 붙여 주었고, 번역기는 실제로 완성됐다. 그 번역기 특허는 당시 일본 최고의 전자기업 샤프(SHARP)에 팔렸다. 스물셋 청년의 머릿속 아이디어 하나에, 샤프는 우리 돈 약 10억 원을 건넸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돈으로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귤 상자 위의 선언
그 10억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스물넷에 회사를 차린다. 그게 바로 소프트뱅크다.
첫 출근 날. 직원이라곤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전부였다. 그는 귤 상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두 사람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30년 안에, 두부 가게가 두부를 한 모 두 모 세듯 매출을 1조, 2조 단위로 세는 회사가 됩니다.”
직원 둘은 사장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얼마 못 가, 둘 다 회사를 떠났다.
그로부터 30년 뒤. 소프트뱅크의 매출은 정말로 약 27조 원을 넘어선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믿겠소”
이름 없는 회사가 커 나가는 과정은 문전박대의 연속이었다.
그는 빌 게이츠를 몇 번이고 찾아갔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의 일본 독점 유통권을 달라고 매달렸고, 끝내 받아냈다. 창업 4년 만에 일본 소프트웨어 유통 시장의 60퍼센트가 그의 것이 됐다.
광고를 실어주는 잡지가 없자, 잡지를 직접 만들었다. 그 잡지는 3년 만에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컴퓨터 잡지가 됐다.
하지만 그를 먼저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창업 초기, 그에게는 실적도 담보도 경력도 없었다. 은행마다 문전박대였다. 그러다 한 은행 지점장이 그의 사업 계획을 끝까지 들어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믿겠소.”
그렇게 45만 달러가 나왔다. 당시로선 전례가 없는 결정이었다.
멀리 보는 눈은 혼자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나를 그렇게 봐 줬을 때 생긴다.
죽음이 준 시간표
스물여섯, 회사가 막 날아오르던 때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만성 간염. 길어야 5년이라고 했다. 3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지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노하거나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침대 위에서 그가 한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역사, 경영, 과학, 철학… 3000권 가까이 독파했다. 병상에서 그는 사카모토 료마의 삶을 떠올렸다.
원수처럼 칼을 겨누던 두 세력을 한자리에 앉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메이지 유신의 문을 연 사내. 정작 본인은 그 새 시대를 보지 못한 채 서른셋에 죽었다.
손정의: 저는 생각했습니다. ‘료마는 서른셋에 죽었지만 일본의 역사를 바꿨다. 나에게 5년이 남았다면, 나도 그렇게 살겠다.’
그는 병상에서 자신의 50년 인생 계획을 다듬었다. 20대에는 창업하고, 30대에 기반을 쌓고, 40대에 큰 승부를 걸고, 50대 이후에는 세상을 바꾸는 사업을 한다.
몸이 멈춘 3년 동안, 그의 눈은 오히려 가장 멀리 뻗어 나갔다.
그를 병상에서 일으킨 건 신문 한 조각이었다. 아버지가 새 치료법을 소개한 기사를 찾아내 의사를 수소문한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훗날 그는 여러 번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없었을 거라고.
왜 하필 300년인가
그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 회사는 300년 동안 계속 자라야 한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당장 내년 일도 모르는데 300년이라니.
허세가 아니었다. 그의 계산은 이렇다.
사람의 뇌세포 수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컴퓨터 칩의 부품 수는 해가 갈수록 불어나, 머지않아 인간의 뇌를 추월한다. 그러니 앞으로 수백 년, 세상은 통째로 뒤집힌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분기 실적을 보고, 뛰어난 경영자는 10년을 본다. 그는 자기 장례식 이후를 본다. 그리고 그 흐름의 한복판에 서겠다고 결심했다.
“내 몸에 불을 붙이겠소”
질문자: 1999년 재산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 시기를 어떻게 버티셨나요.
손정의: 매일 회사가 망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를 믿었던 사람들이 저를 사기꾼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저는 다른 걸 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에 제대로 된 초고속 인터넷이 없다는 것을요.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새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던 1위 통신사와 정면으로 붙는 사업이었다. 요금은 기존의 8분의 1로 책정했다.
회선을 깔려면 그 1위 통신사가 전국에 깔아 둔 전화선을 빌려야 했다. 그는 몇 달 동안 정부 청사 앞에서 매달렸다. 번번이 가로막히자 결국 관료들 앞에서 선포했다.
“이 전화선을 열어 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내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겠소.”
그의 눈에는 10년 뒤 온 국민의 손에 들릴 인터넷이 보였다.
파산을 점쳤던 그 사업은 몇 년 안에 일본 인터넷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값싸고 빠른 인터넷을 쓰는 데는 목숨까지 판돈으로 밀어 넣은 한 남자가 있었다.
6분의 결정
무너진 그해, 그는 중국에서 온 젊은이 하나를 만났다. 이름은 마윈. 알리바바(Alibaba)라는, 아무도 모르는 회사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실적은커녕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손정의: 있는 거라곤 눈빛과 아이디어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눈을 보는 순간 결심이 섰습니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300억 원을 넣기로 했어요. 딱 6분 걸렸습니다.
그 300억은 몇 년 뒤 100조 원이 되어 돌아왔다. 3,500배.
단순히 그의 ‘촉’이 좋아서였을까. 그는 마윈의 실적표가 아닌, 그 사람의 10년 뒤를 보았다.
가진 돈 거의 전부를 잃은 해에, 그는 인생 최고의 베팅 하나를 조용히 걸어두고 있었다. 한 손으로 폐허를 치우면서, 다른 손으로 씨앗을 심은 것이다.

너무 멀리 본 죄
그러나 멀리 보는 사람에게는 종종 대가가 따른다. 발밑을 놓치는 것이다.
2019년, 그는 위워크(WeWork)라는 회사에 143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결과는 파산이었다. 그가 세운 비전펀드는 조 단위 손실을 냈다.
손정의: 제 인생의 오점이었죠. 저는 가치평가라는 거품 속에 있었어요. 확신이 지나쳤습니다.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앞서가는 직관은 때론 축복이자 저주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있지도 않은 것을 보게 만든다. 그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던 순간을 감추는 대신 겸허히 수용했다.
거품이라 부르지 마라
그는 다시 판돈을 걸었다.
오픈AI에 수십조를 넣었다. 미국 전역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예순 즈음 약속했던 은퇴는 접었다.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손정의: 저는 초인공지능의 시대를 봅니다. 인간의 지능을 1만 배쯤 뛰어넘는 지능이요. 그건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오느냐’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10년, 15년은 더 일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또 거품이라 부른다. 그는 AI를 그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결례라고 되받는다. 인터넷도 처음엔 다들 거품이라 했다면서.
2026년 6월, 소프트뱅크는 22년간 일본 시가총액 1위를 지켜온 도요타를 제쳤다. 그의 개인 자산은 1,000억 달러를 넘어 아시아 최고 부자 자리에 다시 올랐다.
예순여덟의 그는 다시 가장 먼 곳을 본다.

잊히지 않는 냄새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수많은 사람 앞에 선 자리에서 그는 문득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리어카를 끌던 할머니, 그리고 그 곁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던 어린 자신. 이야기를 잇던 그가 끝내 말문이 막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쏟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 보이는 건 정해져 있었다. 흙바닥. 리어카 바퀴. 젖은 신발코.
성공한 뒤에도 그는 가끔 그 비린내가 나는 꿈을 꾼다고 가까운 이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보는 남자의 첫 시야는 제 발밑이었다. 그토록 멀리 보려 했던 건, 다시는 그 골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갯짓이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는 그렇게, 가장 먼 곳을 보는 거인이 되었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InnerView. No.24 2026년 7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