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심문이 되다
오프라 윈프리 쇼, 2013년 1월.
오프라 윈프리는 질문을 길게 하지 않았다.
단어 하나씩.
도망칠 틈을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오프라: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때 도핑을 했습니까?”
암스트롱:
“예.”
짧은 대답.
그러나 그 한 단어는 7년의 기록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오프라:
“EPO를 사용했습니까?”
암스트롱:
“예.”
오프라:
“테스토스테론은요?”
암스트롱:
“예.”
오프라:
“혈액 수혈도 했습니까?”
암스트롱:
“예.”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울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오프라는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을 카메라에 맡겼다.
오프라:
“그럼 이건 단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나요?”
암스트롱:
“그렇습니다.
그 시절, 그 레벨에서는
도핑 없이는 우승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대답은 고백이었고,
동시에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었다.
오프라:
“당신은 수년간 도핑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한 사람들을 공격했죠.”
암스트롱:
“…그 점에 대해 깊이 후회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말은 분명했다.
암스트롱:
“나는 거대한 거짓말을 반복했습니다.”
오프라:
“당신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습니까?”
암스트롱은 잠시 멈췄다.
그의 모든 우승보다 길게 느껴진 침묵이었다.
암스트롱:
“미안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믿었던 이유를 이해합니다.”
이날의 고백은
한 스포츠 스타의 실토가 아니었다.
미국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이야기 하나가
공중에서 힘을 잃고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왜 그를 믿었는가
랜스 암스트롱의 삶은
처음부터 영웅 서사에 가까웠다.
텍사스 출신.
청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운동선수.
그리고 스물다섯,
그는 고환암 진단을 받는다.
암은 폐와 뇌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의사들은 생존 확률을 낮게 봤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암을 이겨낸 뒤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했다.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이나.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는 매 여름 프랑스의 산맥 위에서
미국 국기를 상징처럼 휘날렸다.
그 시기 미국은
9·11 이후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불안했고, 무너져 있었고,
다시 믿을 이야기가 필요했다.
‘사이클 황제’ 암스트롱은
완벽한 상징이었다.
병을 이긴 몸.
유럽 중심 스포츠 무대에서의 미국인 승리.
불굴, 회복, 집요함.
그는 단순한 선수가 아닌
미국식 서사의 집약체였다.
신뢰는 경기장 밖에서 완성됐다
암스트롱은
리브스트롱 파운데이션(Livestrong Foundation)을 설립했다.
노란색 고무 팔찌는
암 환자와 생존자의 연대 상징이 됐다.
학교와 병원, 기업과 정치권까지 스며들었고,
누군가의 손목에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설명되는 공통어였다.
그는 말 그대로
‘믿어도 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핑 의혹을 믿지 않았다.
혹은 믿고 싶지 않았다.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질투하는 패배자처럼 취급됐다.
진실보다
서사가 더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가 완성되던 시절
33세의 랜스 암스트롱은
모든 것을 가진 남자처럼 보였다.
전무후무한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주인공.
세계 챔피언 사이클 선수.
“Soak Up the Sun”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록 스타 쉐릴 크로우의 연인.
헌신적인 아들, 세 아이의 아버지.
베스트셀러 작가.
암 생존자.
롤모델.
그리고 노란 리브스트롱 팔찌의 얼굴.
그는 멈추지 않는 남자였고,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처럼 묘사됐다.
다른 세계를 열어준 남자
이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랜스 암스트롱과 쉐릴 크로우는
‘커플’로 등장했다.
오프라는 물었다.
서로의 팬이었느냐고.
암스트롱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은 팬이었지만,
그녀 역시 그랬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쉐릴 크로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이었죠.
그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고,
무엇보다
그는 정말 매력적인 남자였어요.”
쉐릴 크로우는
암스트롱이 여섯 번째 투르 드 프랑스를 준비하던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는 록 음악보다
그의 세계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고.
사이클 팀의 사람들.
그들의 헌신.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
수십 개 국적이 섞인 팀.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고.
암스트롱은
그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인터뷰에는
의혹도, 균열도 없었다.
오직
승리, 회복, 사랑, 연대.
미국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의 요소들이
완벽하게 배열돼 있었다.
몇 년 뒤,
오프라의 질문 앞에서
같은 남자는
전혀 다른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 장면은
그가 무엇을 숨겼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얼마나 완벽하게
믿어지던 존재였는지를 증명한다.
그래서 배신은 더 깊었다
암스트롱이 무너졌을 때
미국이 느낀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배신에 가까웠다.
그는 단지 규칙을 어긴 선수가 아니었다.
암 환자들에게는 희망의 얼굴이었고,
미국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던
회복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의 고백은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 됐다.
2009년과 2010년,
그는 약물 없이 경주했다고 말했다.
당시 투르 드 프랑스 성적은
3위와 23위.
정직한 레이스의 결과는
영광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가 무너뜨린 것은
트로피가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싶어 했던 스토리였다.
도핑 고백 이후,
한때 ‘사이클 황제’로 불리던 그는
그해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스포츠 스타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은퇴 이후,
그는 철인 3종 경기와 마라톤 대회 출전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식 선수 자격을 회복해야 했고,
그 전제 조건은
과거의 도핑 사실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즉, 이 고백은
순수한 참회이기 이전에
다시 경기에 서기 위한
제도적 절차이기도 했다.
과연 이 고백은
양심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대로 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을까.
2015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핑이 만연했던 1995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약물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사이클계에
약물 사용이 만연해 있었다는
항변이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 이후
그가 겪은 ‘추락’은
엄청났고, 가혹했으며,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스스로 미화하지는 않았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자면
이제는 용서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러나 그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사이클계와
암 관련 단체들의
판단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진실을 말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진실이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었는지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증언이 만든 붕괴
끝내 그를 무너뜨린 것은
도핑 테스트 결과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시료(試料)에서는
금지 약물이 직접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 선수들의 구체적인 증언,
약물 구매에 대한 결제 기록과 이메일이
차례로 쌓이면서
도핑은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 됐다.
그래서 그의 사례는
‘도핑’보다
‘강요와 보복’으로 기억된다.
진실은
한 순간의 고백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쌓여온 결과였다.
가장 진실한 용기
암스트롱은
참회하지 않는 괴물도 아니고,
용서받아야 할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잃은 것과
되찾고 싶은 것 사이에서
여전히 협상 중인 인간이다.
그는 용기를 냈는가.
그렇다.
그 용기가 충분했는가.
아니다.
그리고 이 간극,
그 틈에 남아 있는 불편함이
바로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거짓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데에도
시기가 있다.
모든 것을 잃은 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내놓는 고백은
용기라기보다
살기 위한 절차에 가깝다.
진짜 용기는
여전히 모든 것을 누리고 있을 때,
정상에 서 있을 때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으며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용기는
고백의 순간이 아니라
시작의 순간에 있다.
거짓을 선택하지 않는 것.
신화를 만들지 않는 것.
처음부터 진실 위에 서는 것.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애초에 필요 없었던 고백이다.
끝나지 않은 그림자
2015년,
그의 이름은 다시 한 번 뉴스에 올랐다.
음주운전.
뺑소니.
거짓 진술.
도핑 이후의 삶 역시
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