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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스값이 대통령의 운명을 바꾼다

유가 147달러, 그리고 백악관의 세대 교체

2008년 여름,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3달러를 넘기더니 어느 순간 4달러에 가까워졌다. 운전자들은 펌프 손잡이를 잡은 채 가격판을 잠시 올려다봤다. 그 숫자는 단순한 연료비가 아니었다. 생활의 압력계였다.

그해 여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경제의 불안은 뉴욕의 금융 뉴스가 아니라 동네 주유소에서 먼저 감지되기 시작했다. SUV 판매는 급감했고 사람들은 연비가 좋은 작은 차를 찾기 시작했다.

Year 2007-08 – The Great American Nightmare

그리고 몇 달 뒤,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충격을 맞게 된다.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회사들이 무너지고 신용이 얼어붙자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공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은행은 흔들리고, 집값은 떨어지고, 실업이 늘어났다.

정치의 공기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CHANGE’라는 단어를 앞세운 한 젊은 상원의원이 빠르게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 올라왔다.

그해 11월, 미국은 상원의원 경력이 채 4년도 되지 않은 47세의 젊은 정치인을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승리가 진정 누구의 것인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승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 2008년 11월 4일,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당선인 오바마
(Photo: The Obama Foundation)

불타는 저장고, 움직이는 가격

3월 7일 밤, 이란의 석유 저장고들이 불탔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저장 탱크들이 연쇄 폭발했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번 공격에서 이스라엘은 이란 석유 저장고 약 30곳을 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반응은 예상보다 격렬했다. 미국은 이스라엘 측에 사실상 “도대체 무슨 짓이냐”(WTF)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 측근은 악시오스에 이렇게 말했다.

“석유는 비축하는 것이지 태우는 게 아니다. 저 장면은 사람들에게 기름값 오르는 것만 떠올리게 한다.”

백악관은 정유시설이 불타는 장면이 시장에서는 다른 신호로 읽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가.상.승.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의 석유 저장고가 불타고 있다.
(Photo: BBC 뉴스 스크린 캡처)

1년에 50번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고 썼다.

곧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유가 상승의 수혜는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가져가고, 국민들은 더 비싼 개솔린 가격을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늘어난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유소 가격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6일 기준 로스앤젤레스 지역 평균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5.60달러, 전국 평균 가격은 3.70달러까지 상승했다. 개전 이후 20% 넘게 오른 수준으로, 트럼프 두 임기를 통틀어 가장 높은 가격이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의 연구책임자 케빈 북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1년에 약 50번 주유한다. 지난번 투표에 대해 후회할 기회가 50번이나 있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의 목을 쥔 바다

페르시아만을 빠져나오는 유조선들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3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세계 원유의 약 20%가 이 바다를 통과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에서 생산된 석유가 이 해협을 지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석유 수입국에게는 사실상 생명선이다.

이 해협이 흔들리는 순간 시장은 먼저 반응한다. 실제 봉쇄가 없어도 보험료가 오르고 운송비가 뛰며 긴장은 곧 가격으로 번역된다. 유가가 움직이면 휘발유 가격이 먼저 오르고, 이어 운송비와 항공료, 식료품 가격이 따라 움직인다.

호르무즈는 석유만 지나는 길이 아니다. 전 세계 비료 해상 거래량의 약 3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3월은 미국 팜벨트가 봄 파종을 준비하는 시기다. 비료 공급이 흔들리면 농사가 멈춘다. 전쟁은 중동에서 시작됐지만 그 충격은 곧 미국 중서부 농장으로 번진다. 그리고 그 농민들은 미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유권자 집단 중 하나다.


카터의 패배

1979년 가을, 지미 카터는 외교적으로 재앙에 직면해 있었다. 이란에서는 미국 대사관 직원 52명이 인질로 잡혔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러나 그를 진짜로 무너뜨린 것은 테헤란발 뉴스가 아니었다.

Carter in the Oval Office, February 1977
(Photo: Wikipedia.org)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금수 조치 이후 에너지 의존성이 깊어진 미국 경제는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 쇼크에 직격탄을 맞았다. 유가는 두 배 이상 뛰었고 인플레이션은 13%를 넘었으며 금리는 20%에 육박했다.

1979년 6월 15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Photo: Wikipedia.org)

주유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고 사람들은 차 안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분노한 운전자들이 주유소에서 몸싸움을 벌이거나 폭동에 가까운 충돌이 발생했다. 정부는 자동차 번호판 끝자리가 홀수·짝수인지에 따라 격일로 주유를 허용하는 ‘오드-이븐(odd-even) 주유제’까지 시행해야 했다. 카터는 이 혼란 속에서 재선의 가능성을 잃어갔다.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한 가지 질문만 던지면 됐다.

“4년 전보다 지금 살기 더 나아졌습니까?”

1-20-1981 President Reagan and Nancy Reagan waving to the crowd from the limousine sunroof during the Inaugural Parade on Pennsylvania Avenue (Photo: reaganlibrary.gov)

부시의 반전

1991년 1월, 조지 H. W. 부시의 지지율은 89%였다. 역사상 최고 수준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는 30개국 다국적군을 이끌고 쿠웨이트를 해방시켰고 냉전을 마무리한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다. 워싱턴에서는 그의 재선이 사실상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걸프전이 끝나자 경제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쟁 중에도, 전쟁 직후에도 완만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실업률이 오르고 성장률이 둔화됐다. 부시는 외교와 안보를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지갑을 이야기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Photo: WFAA 스크린 캡처)

미국 정치에는 pocketbook vot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유권자가 국가의 거대한 담론보다 자신의 지갑 사정을 기준으로 표를 던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장면이 가장 극적으로 반복된 선거가 1992년이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빌 클린턴 캠프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선거본부 벽에 세 문장을 붙여 놓았다.

Change vs. more of the same.
Don’t forget health care.
It’s the economy, stupid.

변화인가, 아니면 지금과 같은 길인가.
헬스케어를 잊지 마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이 문장은 내부 전략 메모에 불과했지만 곧 미국 정치의 상징적인 문장이 됐다.

유권자는 세계사를 평가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나아졌는지, 아니면 더 어려워졌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걸프전의 승리도, 냉전 종식이라는 역사적 순간도 그 질문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3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부시는 168명에 그쳤다.

1992년 대선 유세 현장.
당시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Clinton Foundation)

착각과 오판

전쟁이 시작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외부의 위협 앞에서 국민이 지도자 주변으로 모이는 이른바 ‘국기 아래 결집(rally around the flag)’ 효과 때문이다. 걸프전 때도 그랬고, 9·11 이후에도 그랬다. 전쟁의 첫 장면은 대개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전쟁이 길어지고 유가가 오르고 생활비가 올라가면 유권자의 관심은 다시 경제로 돌아온다.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공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경제 충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고위 당국자들은 비공개 의회 브리핑에서 이란이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을 계획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는 결국 여기서 결정된다

트럼프는 말했다. “잠시 동안 유가가 조금 높을 수는 있지만 이 일이 끝나면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1979년 카터도, 1992년 부시도 그 ‘잠시’를 버티지 못했다.

에너지 장관 크리스 라이트는 TV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다른 말을 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유가가 내려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백악관 안에서도 답을 모른다는 뜻이다. 문제는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도 이미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Photo: The White House)

트럼프에게는 카드가 하나 있었다. 관세로 오르는 물가를 억누를 수 있는 유일한 완충재 — 저유가였다. 하지만 그 카드마저 이란에게 빼앗긴 셈이다.

숫자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유소 가격판에서,
마트 영수증에서,
항공권 예약 화면에서.


Now / What’s Next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 경제는 이미 균형을 잃어 가고 있었다.

2025년 말 GDP 성장률은 반토막이 났고, 2026년 초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연준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목표치인 2%를 넘어 있었다. 그 위에 전쟁이 올라탔다.

월가에서는 이제 더 불길한 단어가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late-cycle shock(경기 말기 충격). 이미 높은 금리와 높은 부채 위에 에너지 가격 충격이 겹치면 경기 하강은 훨씬 빠르게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 충격이 2028년 대형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대통령을 강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기름값은 유권자를 화나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 정치에서 종종 이런 말이 나온다. “전쟁은 중동에서 시작되지만 선거는 미국 주유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대통령도 잊어서는 안 될 문장 하나.

“It’s still the economy, stupid.”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09 202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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