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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 – 올림픽, 엡스타인, 배드 버니

한때 한국에서 ‘3S’는 통치의 기술이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치가 숨 막힐수록 스포츠는 커졌고, 스크린은 밝아졌으며, 섹스는 금기와 자극의 경계에서 소비됐다.

서울의 밤에는 컬러 TV가 들어왔고,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영화관은 늘어났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뉴스는 조용해졌다.

그 시절 3S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장막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3S는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를 피해 오락으로 도망치지 않는다. 정치는 오히려 스포츠 경기장과 스크린 속 공연, 섹슈얼한 논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3S는 분산 장치가 아니라 노출 통로가 됐다. 동시에, 분열과 통합의 메시지를 같은 공간에서 흘려보내는 가장 위험하고도 강력한 무대가 되었다.


Sports – 중립은 사라지고, 상징만 남았다

경기장 밖에서 시작된 구호

202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

세계는 다시 한 번 ‘화합’을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는 다른 언어가 울려 퍼졌다.

“ICE OUT.”

미국의 이민 단속, 그리고 그 집행을 둘러싼 논란이 유럽 사회의 반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 사이에 쌓여온 긴장감은 올림픽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시위의 형태로 드러났다.

그 여파는 경기장 안으로 이어졌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가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는 초청 인사가 아니라 트럼프 정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읽혔다.

선수의 발언, 대통령의 반응

대표 선수단 안에서도 파장이 이어졌다.
미국 스키 대표 헌터 해스의 기자회견 발언은 강경 이민 단속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반응했다. 해스를 “패배자”라고 부르며 대표팀 도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대표팀은 선수 지원 센터의 이름을 ‘아이스 하우스’로 정했다가, 이민세관단속국 약칭과 겹친다는 반발에 ‘윈터 하우스’로 변경하기도 했다. 명칭 하나조차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됐다.

Winter Olympics 2026 Opening Ceremony Screenshot

기록을 넘어선 의미

올림픽이 정치화된 걸까.
그보다는 올림픽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편이 정확하다.

한때는 메달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전 국민이 TV 앞에 모여 국가별 순위를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튜브와 스트리밍 플랫폼이 스포츠 소비 방식을 바꿔놓았다. 경기는 쪼개지고, 하이라이트는 짧아졌으며, 인터뷰와 발언은 경기만큼 빠르게 확산된다.


Sex — 권력을 쥐는 가장 은밀한 손잡이

권력의 정상에서 교차한 이름들

지금 전 세계가 동시에 시선을 멈추고 바라보는 사건이 있다. 한 남자의 범죄가 아니라, 그 범죄가 수십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권력의 취약 지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Ghislaine Maxwell and Jeffrey Epstein / US District Court for the Southern District of NY

엡스타인 파일의 중심에는 미성년자, 특히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 성매매가 있다. 이 사건이 여기까지 커진 이유는 범죄의 잔혹성 때문만은 아니다. 더 불편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반복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왜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책임을 진 이는 거의 없는가.

문건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놀라울 만큼 익숙하다.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과 2기 임기 중인 도널드 트럼프, 세계 기술 자본의 상징인 빌 게이츠, ‘미국의 양심’으로 불려온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까지.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의 이름 역시 관련 보도에서 언급되며 논란의 반경이 더 넓어졌다.

욕망이 통제가 되는 순간

엡스타인이 쥐고 있던 힘은 정치적 직함도, 공식 권한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은 사람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었다. 그의 세계에서 섹스는 쾌락이 아니라 거래의 언어였다. 미성년자 소녀들은 접근의 수단이었고, 그 공간에서 만들어진 약점은 침묵과 보호로 되돌아왔다. 최고 권력자와 최고 부자들도 이 지점에서는 무너졌고, 이후에는 거짓말과 부정, 조직적인 회피가 이어졌다.

국경을 넘은 은밀한 결속

엡스타인과 연결된 인물 가운데에는 영국 왕실의 엔드류 왕자가 있었고, 이로 인해 왕실의 도덕성과 책임이 공개적으로 질문받았다. 프랑스에서는 모델 에이전트 장뤼크 브뤼넬이 미성년자 성착취 알선 혐의로 기소되며 유럽 사법권이 사건에 개입했다. 이스라엘 정치권 역시 전직 총리 에후드 바라크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큰 파장을 겪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왕실과 가까운 인물을 둘러싼 국제 사교 네트워크 논란이 확산됐다.

엡스타인 파일은 한 나라의 스캔들이 아니라, 여러 국가의 권력 주변을 관통하는 구조로 드러났다.

도덕을 말하던 얼굴들이 가장 은밀한 자리에서 무너졌고, 책임을 말하던 시스템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만 작동했다. 섹스로 정치적 이슈를 가리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의 섹스는 권력이 어떻게 타락하고, 어떻게 자신을 감싸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잔인한 증거가 됐다.


Screen — 가장 미국적인 무대가 가장 격렬한 전장이 되다

연중 최대의 축제

슈퍼볼은 단순한 결승전이 아니다. NFL 한 시즌의 정점을 찍는 날이자,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방송 이벤트다. 거실마다 TV가 켜지고, 경기 못지않게 광고와 하프타임 쇼가 화제가 된다. 한밤의 오락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를 전시하는 날에 가깝다.

슈퍼볼이 정치와 완전히 분리돼 있었던 적은 없다.

2016년, 비욘세는 ‘Formation’ 공연에서 블랙 팬서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안무로 흑인 인권 문제를 상징적으로 건드렸다. 2017년, 트럼프 당선 직후 무대에 오른 레이디 가가는 “This land is your land”를 부르며 다양성과 포용을 암시했다. 2020년, 제니퍼 로페즈와 샤키라는 라틴계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2022년, 에미넴이 무릎을 꿇은 장면은 NFL의 ‘무릎 꿇기’ 논란을 다시 불러냈다.

그러나 그때의 메시지는 논쟁은 있었지만, 전선이 즉각적으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무대가 끝나기도 전에 정치적 반응이 쏟아졌고, 대통령이 직접 반격에 나섰다. 동시에 별도의 ‘대체 하프타임 쇼’가 조직적으로 송출됐다. 하나의 공연이 곧바로 진영 대결의 신호가 됐다.

배드 버니, 그리고 갈라진 반응

올해 무대의 중심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라틴 팝스타 배드 버니가 있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 영어권 중심의 미국 팝 시장에서 스페인어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드문 인물이다.

그는 이미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뒤 “ICE OUT”을 외치며 이민세관단속국을 공개 비판했다. 비영어권 가수 최초의 수상이었고, 정치적 메시지가 더해지면서 무대는 단순한 음악 시상식이 아니게 됐다.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그는 13분 동안 스페인어로만 공연을 펼쳤다. 사탕수수밭과 전통 가옥을 재현한 무대는 푸에르토리코의 풍경을 연상시켰다. 공연 말미 그는 영어로 “God bless America”라고 말한 뒤, 중남미 국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연대를 암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Bad Bunny’s Apple Music Super Bowl Halftime Show Screenshot

정치적 구호를 직접적으로 외치지는 않았지만 언어 선택 자체가 메시지였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 전체를 영어가 아닌 언어로 채운 것은 처음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라틴 문화의 축제적 면모”라고 평가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통적 가족 가치와 공동체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호평했다. 가디언은 “가장 미국적인 공간이 가장 격렬한 정치적 격전지가 됐다”고 썼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며 “아무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역대 최악 가운데 하나”라고 적었다. 마가 진영 인사들도 “가짜 미국 시민이 미국을 모욕했다”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들은 “슈퍼볼조차 더 이상 미국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일부 공화당 의원은 방송 기준 위반 여부 검토를 요구했다.

두 개의 하프타임 쇼, 두 개의 미국

같은 시간, 마가 진영은 키드 록이 출연한 별도의 ‘올 아메리칸 하프타임 쇼’를 유튜브로 동시 송출했다. 이 공연은 성조기와 군가, 전통적 애국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배드 버니의 무대와 뚜렷이 대비되는 메시지를 던졌다. 같은 시간대에 또 하나의 하프타임 쇼를 띄운다는 발상 자체가, 이 무대가 ‘누가 미국을 대표하는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약 400만 명이 유튜브로 해당 공연을 시청한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경기, 서로 다른 두 개의 하프타임 쇼.
하나의 스크린, 두 개의 미국.

과거 스크린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의 균열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Now / What’s Next 

스포츠는 여전히 경기의 무대이지만 더 이상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롭지 않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일탈이 스캔들로 소비되고 끝나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전세계가 성의 렌즈를 통해 권력의 취약점을 들여다본다. 과거에는 카메라가 선택한 장면만이 스크린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지금은 누구나 송출자가 된다. 미네소타의 ICE 총격 장면이 주민의 휴대전화로 확산됐듯, 사건은 편집을 기다리지 않는다. 의미는 속도와 함께 퍼지고, 해석은 즉각 갈라진다.

남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가볍지 않다. 우리는 화면 위에 떠오른 장면을 그저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 장면이 배치된 맥락까지 읽어낼 것인가. 스포츠를 단지 기록으로 볼지, 섹스를 단순한 자극으로 다룰지, 스크린을 오락으로 흘려보낼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3S는 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깊이로 해석하고, 어디까지 질문하느냐다.

By Eunic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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