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식탁
대체 AI와 고등어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상관이 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를 떠올려 보자. 지글거리는 소리, 젓가락으로 가르면 부드럽게 갈라지는 속살, 가시를 발라주던 어머니의 손. 한국인들에게 고등어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등어가 여기까지 오는 길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어
지난해 10월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극한직업 – 노르웨이 고등어>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노르웨이 올레순의 항구에서 시작된 여정은 바다 위의 긴 기다림을 지나 공장으로 이어진다.
어선은 15시간을 달려 어장에 도착하고, 선망 방식으로 고등어 떼를 감싼다. 잡는 즉시 영하 2도의 해수에 담가 선도를 유지한다. 항구에 닿으면 배는 공장 바로 옆에 정박하고, 대형 파이프를 통해 고등어가 건물 안으로 이동한다. 가공 시작부터 포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부패가 빠른 어종이기에 속도는 곧 품질이다.
공장 내부는 의외로 조용하다. 연간 약 15,000톤을 처리하지만 상주 인원은 10명 남짓이다. 공정의 대부분은 자동화되어 있다. 고등어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며 크기별로 분류되고, 최고급은 따로 선별된다.
마침내 은빛 몸통들이 *필릿 라인에 도착한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중심 뼈를 빼내는 순간, 컨베이어가 잠시 멈춘 듯 보인다. 그 위로 설치된 카메라가 고등어의 단면을 스캔한다. 화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가느다란 가시들이 선처럼 떠오른다. 뼈의 방향과 깊이가 계산되고, 다음 동작이 미리 그려진다.
곧이어 칼날이 내려온다.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다. 살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뼈를 따라 정확히 파고든다. 사람이라면 몇 번은 손을 멈추고 각도를 바꿔야 할 미세한 지점까지, 기계는 한 번에 통과한다. 가시가 싹싹 발라진 필릿이 매끈하게 떨어져 나오는 순간, 그 정밀함에 입이 벌어진다.
놀라운 것은 속도다. 이 모든 과정이 몇 초 안에 끝난다.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데이터는 쌓이고, 계산은 더 정교해진다. 숙련된 장인의 손놀림을 닮았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고등어의 95%는 수출된다. 상당량이 노르웨이 고등어 최대 수입국인 한국으로 향한다. 결국 한국인의 밥상 위에 오르는 고등어는 이미 AI를 거쳤다.
*필릿 라인(fillet line):생선을 통째로 처리하는 공정 중에서 살만 분리해 ‘필릿(fillet)’ 형태로 만드는 생산 라인
병아리 감별사
병아리 감별사를 기억하는가. 한인 사회에서는 흔히 ‘닭공장’이라 불리던 곳이 있다. 정확히는 가금류 부화장이지만, 이민자들에게는 미국 정착을 위한 생계의 현장이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영주권 취득을 위해 조지아와 앨라배마의 닭공장에서 일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부화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병아리를 손에 쥐고 몇 초 안에 암수를 구분했다.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판단은 감각과 숙련에 달려 있었다.
지금 그 라인 위에는 카메라가 있다.
AI 기반 머신비전이 병아리의 형태와 미세한 특징을 분석해 성별을 판별한다. 초당 수십 마리를 분류한다. 오차는 줄고 생산성은 오른다. 노르웨이 가공 공장에서 고등어 가시를 인식하던 그 카메라와 같은 종류의 기술이다.
생선의 뼈를 찾는 알고리즘과 병아리의 특징을 읽는 알고리즘은 다르지 않다. 둘 다 ‘감각’을 데이터로 치환한다. 한때 생계의 기술이던 감각은, 이제 알고리즘의 입력값이 되었다.
옷과 아몬드, 토마토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의 의류 공장에서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원단을 스캔한다. 1mm 이하의 미세한 직조 불량, 염색 번짐, 봉제 오차를 실시간으로 잡아낸다. 과거에는 숙련 검품원이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은 AI가 불량 좌표를 표시하고, 작업자는 수정만 한다. 불량률은 낮아지고 반품 비용은 줄어든다.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선별 라인에서는 머신비전이 색상·크기·표면 균열을 동시에 분석한다. 사람이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견과류도 알고리즘은 미세한 색조 차이를 읽어낸다. 등급이 나뉘고, 가격이 달라진다. 판단은 눈이 아니라 데이터가 한다.
플로리다의 토마토 선별 공장에서는 AI가 당도와 색을 기준으로 유통 목적을 분류한다. 신선 판매용, 가공용, 폐기용. 컨베이어 위에서 1초도 멈추지 않는다.
AI는 사무직을 위협하기 전에 제조업의 정밀도를 먼저 바꿨다. 노동을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라 오차를 줄이고, 낭비를 줄이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1차 판단은 점점 데이터가 맡는다.
일상
50대 이상 가정주부나 60대 이후 은퇴자들 중에는 “AI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코딩을 하지도 않고, 로봇을 다루지도 않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장보기
월마트(Walmart)와 크로거(Kroger)는 날씨, 지역 행사, 과거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발주 물량을 자동 조정한다. 진열대가 비지 않는 이유는 감이 아니라 예측 모델 때문이다.
배달 시간
도어대시(DoorDash)와 우버이츠(Uber Eats)의 도착 예정 시간은 단순 거리 계산이 아니다. 교통, 주문 밀도, 운전자 분포가 동시에 계산된다. ‘30분 후 도착’은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금융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를 비롯한 금융기관은 머신러닝 기반 신용 평가 모델을 사용한다. 대출 승인 여부는 점점 자동화된다. 상담은 사람이 하지만 1차 판단은 데이터가 내린다.
의료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등에서는 AI가 X-ray와 CT를 보조 판독한다. 미세한 이상 징후를 먼저 표시한다. 의사의 설명 이전에 알고리즘이 이미 화면을 훑는다.
온라인 쇼핑
아마존(Amazon)의 추천 시스템은 체류 시간, 클릭 패턴, 구매 간격을 학습한다. 우리의 클릭을 부르는 추천 상품은 실제로는 소비 패턴이 모델링된 것이다.
이처럼 AI는 특별한 순간에 등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생활 인프라다.
Now/What’s Next
AI는 혁명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스며든다.
거대한 로봇이 아니라 고등어 가시 제거처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지점에서 작동한다. 생산성은 상승하고, 인력 구조는 조정되며, 정밀도는 개선된다. 그 효율의 이익이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 기업 마진으로 축적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AI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AI에 의해 선택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고등어 가시, 병아리 감별, 마트 진열대, 배달 시간, 대출 심사—모두 하나의 구조로 모인다. 선택하지 않아도 작동하며, 피한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그래서 관건은 ‘사용 여부’가 아니다. 주도권이다.
수동적인 삶은 단순하다. 추천을 그대로 따르고, 승인 결과를 묻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인다.
반면, 주도적인 삶은 다르다. 추천이 왜 나에게 보였는지 질문하고, 자동화된 판단의 기준을 이해하려 한다. AI를 활용해 시간을 절약하고, 정보를 확장하며, 결정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고등어 가시를 대신 찾아주는 알고리즘은 고맙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까지 대신하도록 둘 필요는 없다.
AI는 이미 당신의 밥상 위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다.
By Eunice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