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남은 흔적
지붕마다 소복히 눈 쌓인 겨울, 평화롭고 조용하던 마을에 무장한 요원들의 발자국이 깔리기 시작했다.
수업을 받던 학생이 교실에서 사라졌고, 영하의 날씨 속에서 이웃 노인은 속옷 차림으로 연행됐다. 부모가 붙들려 간 집 앞에는 아이가 남았고, 식당 주인은 혹 직원들이 잡혀갈까 문을 닫을지 고민했다.
불안이 일상이 되자 주민들은 휴대전화와 호루라기를 들고 집 앞 거리로 나왔다. 촬영하고 경고음을 내는 것. 그것이 자신과 이웃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총성이 울렸다.
매일 지나던 출근길과 등굣길 한복판에서 짧은 기간 사이 주민 두 명이 숨졌다. 분노한 주민들은 이를 명백한 살인과 처형이라고 불렀다.
낯선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불행히도 민주주의를 자부해온 초강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이곳, 미국 말이다.
알렉스 프레티
2026년 1월 24일 오전 9시 5분,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니콜렛 애비뉴와 26번가 교차로.
알렉스 프레티(37)는 그날 시위 현장에 있었다. ICE의 대규모 단속 작전에 항의하는 집회였다. 보훈병원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순간이었다.
연방 이민단속 요원이 한 여성을 거칠게 밀쳐 넘어뜨렸고, 프레티는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곧바로 페퍼 스프레이가 뿌려졌고, 여러 명의 무장한 연방 요원이 그를 제압했다. 그의 허리에서 총기가 분리된 직후, 열 발이 넘는 총성이 연달아 터졌다.
프레티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영상 속 곳곳에서 “What the fxxx…”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연방 당국은 “위협 상황”이었다고 설명하며 사건의 성격을 축소하는 데 집중했다.
촬영된 동영상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미네소타 전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직장인과 가정주부,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르네 굿
프레티가 숨지기 17일 전, 미니애폴리스 인근에서는 이미 한 차례 치명적인 총성이 울렸다.
피해자는 르네 굿. 세 자녀의 어머니였다.
ICE의 대규모 단속 작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던 중, 굿은 차량에 탑승한 상태로 현장 주변에 있었다. 그녀의 파트너도 차량 근처에 함께 있었다.
총성이 울린 건 굿과 요원들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직후였다. 발포는 차량을 향해 이뤄졌고, 탄환은 그녀의 머리에 명중했다. 파트너는 그 자리에서 굿이 숨지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연방 당국은 요원이 위협을 느꼈으며,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과 확산된 영상은 발포의 필요성과 방향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프레티 사망 이전까지 미네소타에서 ICE 단속을 둘러싼 반발을 가장 격렬하게 만든 분기점이 됐다.
이후 시위 현장에서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ICE OUT.
다섯살 아이까지?
2026년 1월 20일, 논쟁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사진 한 장이 전국을 흔들었다.
파란색 털모자를 쓴 채 스파이더맨 가방을 멘 작은 몸,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
다섯 살배기, 리엄 라모스였다.
리엄은 미네소타 콜럼비아 하이츠의 주택가에서 연방 요원들에 둘러싸인 채 구금 차량에 태워지기 직전 카메라에 포착됐다.
단속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체포됐고, 리엄과 아버지는 텍사스의 가족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ICE는 아동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보호 차원의 동반 조치였다고 설명했지만, ‘선 넘었다’는 반응이 즉각 터져 나왔다.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분노는 빠르게 번졌다. 불법 체류 여부가 아니라, 아이를 집행 과정의 한가운데에 세운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 됐다.
며칠 뒤, 연방 판사는 리엄과 아버지의 즉각 석방을 명령했다. 판사 프레드 비어리는 이례적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해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 마태복음 19장 14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요한복음 11장 35절
리엄과 아버지는 합법적으로 망명 절차를 밟고 있었지만, 절차 결과에 따라 추방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한 장의 사진이 남긴 잔상은 미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되묻게 만든 질문이 됐다.
“다섯 살 아이를 이렇게 다루는 것이 미국인가.”
왜 미네소타인가
미네소타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뚜렷한 주다. 시민사회와 노조, 교육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빠르게 조직되고, 언론의 주목도 또한 높은 지역에 속한다. 정책 충돌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곧바로 전국 단위의 이슈로 확장된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가 숨졌던 곳도 미네소타였다. 그가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하던 순간은 미니애폴리스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사건 이후 미니애폴리스는 공권력 행사에 대한 시민 감수성이 유난히 높은 도시가 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말부터 Operation Metro Surge라는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을 미네소타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이 작전은 이민자 체포와 추방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ICE와 CBP 요원 수천 명이 투입되고 시민 체포와 대규모 가택 수색이 포함되면서 단속은 일상생활과 지역 커뮤니티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결과는 통계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체감하는 충격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은 단속의 실효성보다 보여지는 공권력 과시, 즉 show of force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점에서 미네소타만큼 충돌이 즉각 뉴스가 되는 곳도 드물다. 강경 정책을 지지층에게 각인시키기에 이보다 적합한 무대는 없다.
정치적 맥락도 분명하다.
미네소타 주지사 팀 왈츠는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던 인물이다. 미네소타는 단순한 ‘민주당 주’가 아니라, 전국 선거에서 상징성을 지닌 정치적 거점이다.
왈츠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반이민 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곳에서의 강경 단속은 행정을 넘어 곧바로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연방 권력이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시험한 사례에 가깝다.
현재까지의 비용은 미네소타 시민들이 치르고 있다. 다만 그 실험의 진짜 대가를 누가 떠안게 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Minnesota Strong
사람들은 보통 남의 문제로 거리까지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제가 곧바로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고 인식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시위는 이민자를 향한 연대라기보다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시민들의 반응에 가까웠다.
체포된 사람은 뉴스 속 ‘불법 이민자’가 아니었다. 늘 보던 식료품점 직원이었고, 아이의 친구 부모였으며, 동네 식당의 종업원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자신들이 살던 공동체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결정적 계기는 단속의 대상이 아니라 집행의 방식이었다.
주택가로 들어온 요원들, 아이 앞에서 이뤄진 체포, 시위 현장의 발포, 그리고 시민의 죽음. “다음은 나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이 반응은 갑작스러운 분노가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 시민의 행동 기준선은 분명히 달라졌다.
공권력은 절대적 신뢰의 대상에서 감시의 영역으로 옮겨졌고, 침묵은 중립이 아닌 책임 회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학습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촬영했고, 개입했고, 현장에 섰다.
무엇보다 이 싸움은 이민자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미국 시민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인식됐다.
적법 절차, 권력의 한계, 부당한 집행에 대한 저항.
이는 미국 시민이 교육받아 온 헌법적 가치의 영역이다. 누군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원칙 역시 그 안에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일부는 위험을 알면서도 현장에 섰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것은 연대의 서사를 띠고 있지만, 끝내 자기방어의 문제다.
“Minnesota Strong.”
이민자 문제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문제로 전환된 순간, 미네소타의 거리는 호루라기 소리로 메워질 수밖에 없었다.
Now / What’s Next
이번 사태 이후에도 미국의 이민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뀔 조짐은 뚜렷하지 않다. 강경 단속과 추방이라는 큰 틀은 여전히 유지될 것이다.
다만 시민 사망과 아동 구금, 주택가 진입과 시위 현장의 발포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집행 방식의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앞으로의 단속은 더 적게 보이고, 더 신중해지며, 그만큼 더 많은 감시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사법부의 움직임도 같은 방향이다. 법원은 단속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집행 과정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사례별로 제한하고 있다. 이 기준이 쌓일수록 현장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이번 사건은 이민 정책의 전환점이라기보다 공권력이 시민의 일상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다시 계산하게 만든 계기다.
By Eunice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