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타임
2026년 8월 11일 밤, 위스콘신 매디슨의 애트우드 뮤직홀. 스크린에는 개표 현황이 떠 있었고, 지지자들의 얼굴에는 숨이 멎을 듯한 초박빙 승부로 흥분과 긴장이 역력했다.
밤 10시 20분, 프란체스카 홍(Francesca Hong)의 숫자가 처음으로 데이비드 크롤리를 넘어섰다. 환호가 터졌다. 그러나 몇 분 뒤, 밀워키 카운티 행정책임자 크롤리가 다시 앞으로 나갔다. 그날 밤 프란체스카가 앞선 건, 그 몇 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 시간 뒤, 프란체스카가 춤을 추며 강단에 올랐다. 선거운동 내내 그녀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튼 노래는 ‘골든’이었다 —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그날 밤, 그녀는 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치를 영원히 바꿀 무언가를 만들었고, 이 일은 오래 기억될 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싸우겠다고. 깊이, 깊이 감사하다고. 그러고는 군중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승자가 불린 건 새벽 2시 20분경이었다. 크롤리였다. 표수로는 4천 표가 채 안 되는 차이. 몇 달 내내 모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지키며 슈퍼스타 예감을 불러일으켰던 프란체스카는, 그렇게 졌다.

독특한 이력서
홍은 서른일곱 살, 한국계 이민자 부부의 딸로 매디슨에서 태어났다. 위스콘신 주의회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의원. 그러나 유권자 앞에 그녀가 내미는 건 그 타이틀이 아니었다.
접시닦이, 서버, 바텐더, 라인 쿡, 총괄 셰프. 식당의 거의 모든 자리를 거친 17년. 요리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대학은 졸업하지 못했다. 2016년 매디슨에 라멘집을 열었다가 2024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집 없이 세들어 사는 싱글맘이고, 주의원이 된 뒤에도 바 뒤에 서서 칵테일을 만든다.
그녀의 메시지는 이렇게 압축된다.
“정치인이 노동자를 대변한다”가 아닌, “내가 바로 그 노동자다.”

지금이 아니면
현직 토니 에버스 주지사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2026년 주지사 자리는 주인 없는 경기가 됐다. 홍은 2025년 9월 출마를 선언했다. 그녀가 남긴 말은 이 캠페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 같은 사람이 주지사에 출마해서 이길 수 있는 순간은, 아마 지금뿐일 것 같았다.”
그녀는 ‘사회주의’라는 이념 대신 ‘생활비’를 앞세웠다. 보편적 보육, 부유세, 신규 데이터센터 1년 건설 중단,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논리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이념의 이름표가 아니라, 당장 삶을 덜 힘들게 해줄 해법이라는 것.

되살아난 트윗들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한 지점은 과거였다. 경선 막바지, 6년 전 소셜 미디어 글들이 하나씩 발굴됐다. 경찰 폐지를 주장한 글. 추수감사절을 식민주의자들의 명절이라 부르며 “추수감사절을 취소하자”던 발언.
홍은 이를 팬데믹 당시 식당을 지키느라 짓눌린 채 내뱉은 “설익은 소리”였다고 했다.
“나는 변했고, 배웠어요.”
여기에 미납 신용카드 채무로 소송을 당한 사실까지 더해졌다. 상대에겐 공격 소재였지만, 홍은 방향을 틀었다. 생활비 때문에 빚을 지는 게 평범한 미국인의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아는 사람이 주지사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공산주의자라는 선물
8월 5일, 라스베이거스. 도널드 트럼프가 연설 도중 위스콘신의 한 여성을 겨눴다. 추수감사절을 없애자고 한 사람, 경찰은 백인 우월주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 사람. 트럼프는 그녀를 “공산주의자”이자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 자들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 무렵 공화당 주지사협회는 산하 슈퍼팩을 통해 약 36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표면적으로는 홍을 “위스콘신에 너무 진보적”이라고 때리는 광고였다.
홍의 캠프는 웃으며 받아쳤다. 우리 정책을 그렇게 대신 알려 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한마디는 무명이었던 매디슨의 한 주의원을 전국 무대에 세워 준 셈이 됐다.
홀로 선 사람
정작 진보 진영의 이름값 있는 인사들은 그녀와 거리두기를 했다. 진보의 두 큰 별,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끝까지 공식 지지를 내지 않았다. 홍이 너무 왼쪽이라는 판단이었다.
민주당 주류도 결집했다. 지지율 85퍼센트를 넘나드는 현직 에버스 주지사가 막판에 크롤리 곁에 서서 함께 뛰었다. 위험한 홍에게 도박을 거는 대신 무난한 크롤리가 안전하다고 여겼다.
홍은 사실상 혼자였다. 큰 별들의 지지도, 조직의 우산도 없이, 그녀는 보수 성향이 강한 카운티까지 훑으며 회의적인 유권자를 직접 설득하는 쪽으로 나섰다. 이길 수 없다는 판에, 그녀는 이길 수 있다고 우겼다. 그리고 한동안, 여론조사는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빗나간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건 여론조사가 홍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조사가 홍의 득표를 40퍼센트 안팎으로 봤고, 실제로 그녀는 39퍼센트를 얻었다. 완전히 빗나간 건 크롤리였다. 7퍼센트에 머물던 후보가 40퍼센트 가까이 치솟았다.
막판에 마음을 정한 부동층, 에버스의 지지 선언에 움직인 표, 그리고 홍의 열성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 유독 적극적으로 응답한 ‘무응답 편향’이 겹쳤다. 조사기관들은 젊은 층 투표율을 과대평가했고, 홍에게 등을 돌린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참여를 과소평가했다.
지고도 남긴 것
홍은 기업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 상반기에만 1만 3천 명이 넘는 기부자가 평균 45달러씩을 보탰다. 뉴욕의 조란 맘다니, 미시간의 압둘 엘사예드로 이어진 민주사회주의의 물결 위에서, 그녀는 위스콘신이라는 경합주 한복판에 그 흐름이 실재함을 증명했다. 졌지만, 민심의 한 축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가 그날 밤 드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민주당의 숙제가 함께 놓였다. ‘진보주의’와 ‘민주사회주의’를 어디까지 같은 정치적 묶음으로 볼 것인가. 다시 노동계급의 정당이 될 수 있는가. 진보의 열기를 경합주의 다수로 바꿔낼 수 있는가. 홍은 답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만은 아무도 못 본 척할 수 없게 만들었다.
11월 본선은 크롤리 대 트럼프가 지지하는 연방 하원의원 톰 티파니의 대결이다. 위스콘신 주지사는 대선 결과 인증에 관여하는 자리이고, 티파니는 2020년 바이든의 승리 인증에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누가 쥐느냐는 것은 위스콘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셜리 치좀
1972년, 미국의 공기가 바뀌고 있었다. 여성들이 처음으로 자기들의 정치 조직을 꾸렸고, 민주당은 굳게 닫혀 있던 대의원의 문을 여성과 흑인과 젊은이에게 열었다. 십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그 문틈으로, 브루클린의 한 흑인 여성이 걸어 들어갔다.
셜리 치좀. 서인도제도 이민자의 딸로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교사로 일하다가 정치에 뛰어들었고, 1968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입성했다. 첫 임무로 자기 지역구와 아무 상관없는 농업위원회에 배정되자, 순순히 앉지 않고 싸워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슬로건은 하나였다.
“매수되지 않고, 부림당하지 않는(Unbought and Unbossed).”

1972년 1월, 그녀는 브루클린의 한 교회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도전한 최초의 흑인, 최초의 여성이었다.
길은 험했다. 방송사들은 그녀를 TV 토론 무대에서 밀어냈고, 소송까지 건 끝에야 겨우 한 번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선거운동 동안 세 차례 암살 위협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 자신을 향해 인종 분리를 외치던 정적 조지 월러스가 유세 도중 총에 맞아 병상에 눕자 —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위험을 알면서도 — 그녀는 병문안을 갔다.
마이애미 전당대회에서 그녀가 손에 쥔 대의원은 152명. 필요한 수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그해 후보는 조지 맥거번에게 돌아갔고, 치즘의 152명은 ‘이만큼 해냈다’는 숫자였다. 방송 토론에서도 밀려나고 당 주류의 견제를 받던 흑인 여성이 그럼에도 전국에서 긁어모은 상징적인 성취였다. 적은 수지만, 당시로선 누구도 그녀가 이만큼 얻으리라 보지 않았기에 의미가 있었다.
Now / What’s Next

당시 치좀은 이렇게 말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완고한 틀(백인 남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에 금이 가게 하려고 대선에 출마했어요. 다음번에 여성이, 흑인이, 유대인이, 혹은 이 나라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집단의 누군가가 출마할 때, 그 사람은 처음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습니다.”
“I ran for the Presidency in order to crack a little more of that rigid mold… The next time a woman runs, or a black, a Jew or anyone from a group that the country is ‘not ready’ to elect to its highest office, I believe that he or she will be taken seriously from the start.”
변화의 바람이 그녀를 출발선까지 데려다 놓았다. 경주에선 졌지만, 역사에 남았고, 그녀의 이름은 뒤이어 올 사람들의 길이 됐다.
54년 뒤 위스콘신으로 전 미국의 눈이 쏠렸던 그 밤, 슈퍼스타 후보는 졌다.
그러나 그녀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질문 — 진보냐 본선 경쟁력이냐 — 은 2028년 민주당이 어느 길로 갈지를 미리 시험하는 문제로 남았다.
진보와 보수, 그 완고한 틀에 또 한 번 금이 가고 있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27 · 2026년 8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