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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가 끊어지는 결단

어미 원숭이의 창자

4세기, 중국 동진. 장수 환온이 성한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들을 배에 태우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배가 삼협의 좁은 협곡을 지날 무렵, 부하 한 명이 강가 숲에서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배에 실었다. 재미 삼아 데려갈 생각이었다.

배가 다시 떠났다. 그러자 강 언덕을 따라 어미 원숭이가 울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유속이 느려지면 함께 걸음을 늦추고, 빨라지면 함께 내달리며. 그렇게 백 리를 따라왔다.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서 어미는 마침내 배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새끼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AI-generated image by Frame.

병사들이 어미의 배를 갈랐다.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보고를 받은 환온은 크게 노하여, 새끼를 잡아온 부하를 군영에서 내쫓았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어미 원숭이의 창자에서 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단장(斷腸). 

그로부터 1700여 년이 흘렀다.


단장의 심정

2026년 3월 12일 오후 3시 30분, 도쿄.

혼다 본사 기자회견장. 미베 도시히로 사장이 단상에 섰다. 짙은 감색 정장, 정돈된 머리. 그러나 입을 떼는 데 시간이 걸렸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참 이어진 뒤, 그가 첫 문장을 꺼냈다.

“북미 시장에 출시 예정이던 전기차 세 종 모두, 개발과 출시를 중단합니다.”

기자들이 술렁였다. 불과 1년여 전 라스베이거스 CES 무대에서 화려하게 공개됐던 차들이었다. 오하이오 공장은 이미 EV 전용 라인으로 개조됐고, 협력업체들은 부품 양산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 모든 것을 멈춘다는 선언이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아사히 신문 영상 캡처)

“애끊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미베 사장이 사용한 표현은 일본어로 ‘단장의 심정’이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 

그 뒤에 따라온 숫자는 회견장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최대 2조 5천억 엔, 약 157억 달러의 손실. 상장 이후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될 연간 순손실이었다. 경영진은 단기 성과 연동 보수의 25~30%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기자가 물었다. “왜 그냥 출시해서 시장 반응을 보지 않았습니까?”

미베의 대답은 길지 않았다. “사업 성립이 곤란한 상태로 차를 내보내면, 조기에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고, 결국 고객님들께 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문장 더. “회사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것은 최선이 아니었습니다.”


1948년의 약속

도쿄 미나토구의 혼다 본사 1층 로비. 그곳에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작업복 차림의 한 남자가 모터사이클 엔진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은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1906년 시즈오카현의 한 작은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처음 자동차를 본 것은 마을에 들어온 포드 모델 T였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것이 어떻게 자기 힘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차가 내 옆을 지나갔을 때, 왜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차를 따라 길을 달렸다. 달릴 수 있는 데까지.”

1936년 그는 도카이 정밀공업을 차려 피스톤링 제작에 뛰어들었다. 도요타에 납품하기 위해 만든 첫 50개 중 합격한 것은 단 3개. 47개는 모두 불량 판정을 받았다. 

1948년 혼다 모터 컴퍼니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전후 일본은 폐허였다. 혼다는 군이 쓰다 버린 잉여 엔진을 사들여 자전거에 부착했다. 기름 한 방울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던 시대에, 적은 연료로 멀리 가는 모터바이크는 폐허 속 사람들에게 다리를 만들어 줬다. 11년 뒤 혼다는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가 됐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그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성공은 99%의 실패에서 나오는 1%의 결과다.”

미베 사장이 1조 엔의 손실을 한 분기에 자진해서 떠안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창업주의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회견장 바깥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떠돌았다. Mr. 혼다라면 어떻게 했을까.


코닥의 75년

자동차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의 사례 하나가 회견 직후 자주 인용됐다. 코닥이었다.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다. 무게 3.6kg, 해상도 0.01메가픽셀. 한 장을 찍는 데 23초가 걸렸다. 코닥 임원들은 그 카메라를 봤지만 봉인했다. 당시 필름 사업이 회사 매출의 70%를 차지했고, 디지털이 필름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다.
(Photo:Reddit)

1981년 소니가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했다. 1990년대에는 후지필름이 디지털로 전환했다. 매번 결정의 순간을 미뤘던 코닥은 2003년에야 본격 디지털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그 사이 카메라 자체가 스마트폰으로 옮겨 갔다. 2012년 코닥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디지털 기술을 가장 먼저 가졌던 회사가 디지털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졌다. 75년이 걸린 침몰이었다.

혼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개였다. 코닥의 길과 그 반대의 길.


공룡의 시간

혼다가 고전하는 동안 옆 동네 도요타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025년 도요타 모터 노스 아메리카는 미국에서 251만 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8% 증가, 도요타 브랜드만 214만 대로 사상 최고치였다. 도요타는 EV 한 우물을 파지 않았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 그리고 일부 EV.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두고 시장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켜봤다. 

“멀티 패스웨이(multi-pathway)”라는 도요타의 전략은 한때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테슬라가 EV 혁명을 외치고,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이후 EV로 베팅을 옮기고, GM이 “2035년 내연기관 종료”를 선언할 때, 도요타는 구시대 기업으로 분류됐다. 변화에 둔감한 공룡. 

그러나 EV 보조금이 사라지고, 충전 인프라가 기대만큼 깔리지 않고, 소비자가 하이브리드로 회귀하자 그 공룡의 평가는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기준,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그 자리에 오기까지 도요타도 큰 시험대를 거쳤다.


워싱턴으로 간 손자

2010년 2월 24일, 워싱턴 D.C.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장.

53세의 도요타 사장 도요다 아키오가 증언대에 섰다. 창업주 도요다 키이치로의 손자였다. 도요타 차량의 의도치 않은 급발진 사고로 미국에서만 39명이 사망한 상황이었다. 전 세계 850만 대 이상이 리콜됐다.

일본 기업 관행상 CEO가 외국 의회에 직접 출석해 추궁받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도요타는 처음에 다른 임원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요다는 직접 가기로 했다.

도요타 사장 도요다 아키오

청문회 좌석에는 전년 8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렉서스 ES350 급발진으로 일가족 4명을 잃은 세일러 가족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도요다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세일러 가족 여러분께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 자신도, 도요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미디어 노출을 꺼리던 일본 CEO에게는 평생 가장 공개된 자리였다. 그는 그날 워싱턴에서 미국 의회와 미국 국민 앞에 직접 머리를 숙였다.

두 일본 CEO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나섰다. 대리인을 보내지 않았고, 숫자 뒤에 숨지 않았다.


두 갈래의 길

장래(將來). 미베가 발표문에서 두 번 반복한 단어였다. 다음 분기도, 이번 회계연도도 아닌, 그 너머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임원진이 자기 손실을 자기 임기에 떠안기로 한 결정의 무게는 그 단어 안에 있었다.

이미 들어간 돈은 거의 회수가 불가능했다. 1조 엔이 넘는 설비투자, 수년간의 연구개발, 협력업체와의 약속.

기업이 이런 상황에서 흔히 택하는 길은 하나다. 일단 출시하고, 시장에서 천천히 정리한다. 차가 안 팔리면 할인하고, 그래도 안 팔리면 단종한다. 손실은 분기별로 흘려보낸다. 장부의 출혈을 천천히 늘리는 방식이다.

혼다는 다른 길을 택했다. 모든 손실을 한 분기에 몰아서 떠안았다. 매를 한 번에 맞기로 한 것이다. 코닥처럼 결정을 미루다 75년에 걸쳐 침몰하는 대신, 창업주가 47개의 불량 피스톤링 앞에서 멈추지 않았듯 정면으로 부딪혔다.


Now / What’s Next

혼다의 회견 다음 날, 도쿄 증시에서 혼다 주가는 5% 넘게 떨어졌다. 거의 1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었다. 한 달이 지난 4월 말까지도 주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장의 시선은 5월에 발표될 자동차 사업 구조조정 계획에 모이고 있다.

단장의 결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지나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시장은 오늘을 묻는다. 그 질문을 버티는 일, 오롯이 경영자의 몫이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5 202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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