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단어는 이상한 단어다. 입밖에 내기 전에 먼저 목이 메이니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주 부르지 못하고, 자주 부르지 못한 사람일수록 늦게서야 사무친다.
5월이 왔다. 한 해 중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달.
이번 이너뷰에서는 어머니라는 거대한 이름과 그 앞에 선 우리의 작은 마음을 만나 보았다.
“어머니가 진정한 MVP입니다”
2014년, NBA 시상식. 그해 정규시즌 MVP에 오른 케빈 듀란트가 수상 소감을 전하느라 마이크 앞에 섰다.
객석에는 그의 어머니 완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어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본인이 어떤 위대한 일을 해내셨는지 모를 거예요. 어머니는 18살에 형을 낳으셨고, 3년 뒤에 제가 태어났죠. 상황은 우리에게 너무도 불리했어요. 어머니가 21살이 되셨을 때, 이미 두 아들을 둔 싱글맘이셨으니까요.”
NBA의 가장 빛나는 무대 위에 선 청년이 꺼낸 말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자리에 오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이 아파트 저 아파트로 이사를 다녔죠. 제 인생 최고의 기억 중 하나는 우리가 처음으로 우리만의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예요. 침대도 가구도 없었지만, 거실에 모여 앉아 서로를 껴안았죠. 왜냐하면 마침내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의 말 한 땀 한 땀 속에는 젊은 어머니가 견뎌 낸 모든 무게가 들어 있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좋은 일이 생기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편입니다. 어머니는 여름날 한밤중에 저를 깨워 언덕을 뛰게 하셨고, 팔굽혀펴기를 시키셨어요. 제가 8살, 9살 때 경기장 밖에서 제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리치셨죠.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머니가 우리를 만드셨어요.”

객석의 완다는 이미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듀란트의 마지막 한 문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길거리로 나앉지 않게 지켜주셨고, 옷을 입혀주셨고, 밥을 먹여주셨어요. 본인은 굶으시면서도 우리가 밥을 먹었는지는 꼭 확인하셨죠.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시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어머니가 진정한 MVP입니다. You are the real MVP.”
현장에 있던 구단주도, 감독도, 동료 선수들도, 기자들도 모두 일어섰다. 어떤 트로피도 담을 수 없는 뜨거운 박수가 한 어머니에게 쏟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긴 헌사. “어머니가 진정한 MVP입니다.” 어쩌면 이 한마디는 우리 모두가 마음속 어딘가에 미뤄 둔, 언젠가는 꼭 전해야 할 고백이 아닐까.
마지막 꽃구경
2017년 4월, EBS 메디컬 다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는 두 모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김유. 암 환자다. 혼자서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딸의 이름은 지선. 10년 전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오랜만에 모녀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딸은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취재진: 심경이 어때요?
딸: 되게 조금 실감 나는 거 같아요. 아직까지는 그냥 엄마가 집에 없다, 많이 아프다 정도로만… 속으로는 왠지 이렇게 버텨 줄 거 같고, 한 1년이라도 더 있어 줄 거 같고…
지금 잡고 있는 이 손을, 당분간이라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어머니에게는 평생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 하나 있다. 어린 딸을 안고 매년 봄마다 꽃구경을 다녔던 그 시절.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도 그것이었다. 하나뿐인 딸과 다시 한 번 봄꽃을 보러 가는 것.

점심 무렵, 병실이 떠들썩하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딸과의 봄소풍을 앞두고 어머니가 화장을 하고 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화장을 할 땐 천상 여자다.
“엄마, 피부가 아직 탄력이 있네!”
암 환자라는 사실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휠체어가 공원으로 들어섰다. 예쁜 꽃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입술이 가만히 움직였다. 눈이 부신 듯 살짝 찡그린 그 얼굴 위로, 햇살이 머물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봄. 올봄은 유난히 눈부셨다.
취재진: 어떠세요, 나오니까?
엄마: 나오니까… 아, 뭐랄까, 삶에… 의욕이 다시 생긴다 할까. 그게 좋은 게 아닌데…
취재진: 그게 왜 좋은 게 아니에요?
엄마: 자꾸 더 살고 싶어지면 안 되니까…

어머니는 쉬어 가는 호흡 사이사이로 딸에게 영상 편지를 남겼다.
지선아, 정말 사랑한다. 이 세상에 너를 두고 간다는 게 죄인 같기도 하고…
내가 더 많이 참고 더 잘해줘야 했는데… 별 거 아닌 것 때문에 서로 맘 상했던 것들…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파…
엄마는 먼저 가고 없지만 행복하게 지내다가 오길 바란다. 사랑한다.
자식을 두고 떠난다는 게 죄인 같다는 어머니.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머니. 죽음을 앞두고서도 어머니의 마음이 향한 곳은 온통 자식이었다.
그 이름 부르기 가장 좋은 날
우리는 한 번도 어머니가 필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어머니의 체온이 없으면 살지 못했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이 없으면 점심시간이 서러웠다. 집을 떠난 다음에도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무너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머리가 희끗해진 나이가 되어서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한 번씩 무너져 어머니를 부른다. 평생 어머니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
누군가의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시고, 누군가의 어머니는 이미 그 자리에 안 계시며, 누군가는 자신이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살아 계시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사랑한다는 말이 된다. 어머니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당신이 어머니라면, 아낌없이 부어 주시기를. 어머니의 사랑은 본래 떠나고 난 뒤에야 보이는 것이라 해도, 남김없이 부어 주시기를.
어머니, 나의 어머니.
오늘, 그 이름을 불러 보기 참 좋은 날이다.
에디터의 편지
매주 편집장 딸래미의 글이 올라오는 날을 늘 가장 먼저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보다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주시는 내 엄마 배 여사님.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엄마가 진정한 MVP입니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InnerView15. 2026년 5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