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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어 파츠

미국에 와서 살면, 미국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

2004년 애리조나 피닉스.

칼 헤이든 커뮤니티 고등학교에 다니던 오스카 바스케스는 미군에 입대하고 싶었다. 그는 학교 ROTC에서 ‘올해의 후보생’으로 뽑힐 만큼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군인이 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넘기 어려운 선이 하나 있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합법적인 체류 신분이 없었다. 실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출발선에 설 자격부터 허락되지 않았다.

오스카는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수중 로봇 대회에 나갈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칼 헤이든의 네 소년

칼 헤이든은 명문 과학고가 아니었다. 피닉스의 가난한 지역에 자리한 공립학교였고, 학생 대부분은 히스패닉이었다. 첨단 연구실도, 넉넉한 제작비도 없었다.

오스카와 함께 크리스티안 아르세가, 로렌조 산티얀, 루이스 아란다가 모였다. 오스카는 팀을 이끌었고, 크리스티안은 수학과 설계에 강했다. 로렌조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고, 말수가 적은 루이스는 묵묵히 힘든 일을 맡았다.

서로 닮은 구석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팀이 됐다. 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있었다.

(Left to right) Oscar Vazquez, Luis Aranda, Lorenzo Santillan, Allan Cameron(teacher), Cristian Arcega and Fredi Lajvardi(teacher) (Courtesy: Fredi Lajvardi)

상대는 MIT

목표는 MATE가 주최하는 수중 로봇 대회였다. 교사들은 고등학생 부문 대신 대학생들과 경쟁하는 Explorer Division을 택했다. 질 거라면 또래에게 지는 것보다 대학생에게 지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출전 명단에는 MIT가 있었다.

MIT 팀의 제작비는 약 1만1천 달러. 칼 헤이든이 마련한 돈은 약 800달러였다. 상대는 대학 연구실과 후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반면 네 소년에게는 학교 작업실과 교사들, 그리고 자신들의 손뿐이었다.

돈으로는 경쟁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홈디포에서 시작된 로봇

학생들은 홈디포에서 PVC 파이프를 샀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파이프 안의 공기를 이용하면 부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모터와 카메라, 펌프, 센서와 집게를 붙였다. 필요한 기능은 하나씩 직접 해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중 로봇은 세련된 기계와 거리가 멀었다.

접착제 냄새가 지독해 이름도 스팅키(Stinky), 냄새 나는 놈이 되었다.

볼품은 없었다. 대신 모든 부품에는 쓰임이 있었다.


물에 넣자 벽으로 돌진했다

학교에는 수영장이 없어 외부의 스쿠버 훈련용 풀을 빌렸다. 처음 스팅키를 물에 넣은 날, 기대와 달리 로봇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벽에 충돌했다.

그런데 그것도 정보였다. 추진력은 충분했다. 제어 방식을 손보면 됐다.

제작 과정은 거의 그런 식이었다. 완성된 설계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원인을 찾아 개선했다. 돈이 부족하니 새 장비를 주문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으로 답을 만들어야 했다.

스팅키는 그렇게 조금씩 완성됐다.

Photo: The theatrical poster for Spare Parts (2015)

산타바버라에서 만난 다른 세계

대회가 열린 UC 산타바버라에 도착하자 차이는 더 선명해졌다. 대학팀들은 전문 장비와 정교한 기체를 가져왔다. MIT에서는 열두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그 옆에 PVC 파이프로 만든 스팅키가 놓였다.

처음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작은 팀인지 실감할 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비교할 이유도 없었다. 물속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문제가 터졌다.


물이 샜다

연습을 마치고 스팅키를 꺼내자 전자장치를 보호하는 케이스 안으로 물이 들어와 있었다. 회로에 닿으면 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수 있었다. 배선에도 문제가 발견됐다.

오스카와 로렌조는 숙소에서 밤을 새우며 전선을 다시 납땜했다. 하지만 누수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로렌조가 떠올린 것은 첨단 부품이 아니었다.

탐폰(스틱형 생리대)이었다.

물을 흡수해야 한다면 가장 잘 흡수하는 물건을 넣으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는 마트에서 고흡수성 탐폰을 사 왔다.

NASA가 후원하고 MIT가 참가한 수중 로봇 대회. 칼 헤이든의 로봇 안에는 PVC 파이프와 값싼 부품, 그리고 마트에서 산 탐폰이 들어갔다.

다음 날 스팅키는 다시 물속으로 내려갔다.


MIT가 실패한 임무

경기에는 수중에서 액체 샘플을 채취하는 과제가 있었다. MIT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췄지만 기체 구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샘플 확보에 실패했다.

스팅키의 차례가 왔다.

칼 헤이든 팀이 만든 펌프가 작동했고 용기에 액체가 들어왔다.

500밀리리터.

그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더 이상 경험을 쌓으러 온 고등학생 팀이 아니었다. 대학생들과 같은 문제를 풀고 있었고, 어떤 문제에서는 더 나은 답을 내놓고 있었다.


“Yes, sir.”

점수는 수중 경기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전문 엔지니어들 앞에서 자신들의 설계와 기술적 판단을 설명하는 심사도 있었다.

학생들은 레이저 측정 장치와 모터 제어, 배선과 신호 문제를 직접 설명했다. 자신들이 만든 기계였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와 왜 그렇게 했는지 알고 있었다.

심사위원이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없는 이유를 묻자 크리스티안은 PowerPoint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방해물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그럼 너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건가?”

크리스티안이 답했다.

“Yes, sir.”


4번 불린 이름

시상식이 시작됐다. 칼 헤이든은 먼저 특별상을 받았다. 학생들은 반기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여기까지 온 고등학생들에게 주는 격려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결과였다.

잠시 뒤 이름이 다시 불렸다.

Design Elegance Award — Carl Hayden High School.

또 한 번.

Technical Writing Award — Carl Hayden High School.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합 우승팀 발표가 남았다.

Overall Winner — Carl Hayden High School.

피닉스의 공립고등학교 학생 네 명이 MIT를 제친 것이다.

Photo: A scene from Spare Parts (2015), featuring the four high school students and their underwater robot, Stinky.

트로피와 신분

트로피를 들고 피닉스로 돌아왔다고 해서 네 소년의 삶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넷 다 서류가 없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국경을 넘어온, 이 나라 어디에도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

대학 진학과 학비, 취업, 체류 신분…공학 문제처럼 계산해서 풀 수 없는 현실이 그들 앞에 여전히 존재했다.

이듬해인 2005년, 기자 조슈아 데이비스는 네 소년의 이야기를 와이어드(WIRED)에 썼다. 제목은 〈La Vida Robot〉.

그의 기사는 2015년 《Spare Parts》라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피닉스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Photo: Cover of Spare Parts by Joshua Davis.

Spare Parts

사람들은 ‘스페어 파츠’가 슈퍼마켓에서 긁어모은 로봇 부품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제목이 가리킨 것은 아이들이었다.

실력은 넘치는데 신분 하나에 막혀, 이 나라에서 언제든 갈아 끼워지고 버려질 수 있는 ‘여분의 부품’ 취급을 받던 아이들. 재능이 있어도 서류 한 장 앞에서 멈춰 서야 했던 그 서늘한 기억은, 미국에 사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만져본 상처다.

영화는 불편한 질문을 남겼다.

미국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아직도 ‘여분의 부품’처럼 바라보고 있는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알아보고 문을 여는 나라인가.


선언 없는 폐지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드리머(Dreamer). 2001년 발의된 드림법(DREAM Act)에서 온 말이다.

스팅키를 만든 아이들 같은 청년들 — 어린 시절 부모 손에 끌려와 이 나라밖에 모르는 아이들 — 을 위해 생긴 제도가 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이다. 2년마다 갱신하는 조건으로 추방을 미뤄 주고, 일할 권리를 내준 얇은 우산이었다. 그러나 2026년, 그 우산이 소리 없이 접히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DACA 완전 폐지를 선언하진 않았지만 갱신 심사를 늦췄다. 승인은 지난해보다 63퍼센트 줄었고, 대기는 12만 건으로 역대 최고다. 새 신청문은 2017년부터 닫혀 있다. 갱신을 기다리는 사이 신분이 만료되고, 그 틈에 노동허가와 추방 보호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 문을 쾅 닫는 대신, 아주 천천히 밀어내는 방식이다.


미국을 위대하게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널드 레이건.

임기를 마치기 직전인 1989년 1월 19일, 백악관에서 이 같은 연설을 남겼다.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제가 하는 마지막 연설이니,
제가 사랑하는 이 나라에 대한 하나의 생각을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이 어울릴 듯합니다.

그것은 얼마 전 제가 받은 한 편지에 가장 잘 담겨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제게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은 프랑스에 가서 살 수는 있어도, 프랑스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독일이나 터키, 일본에 가서 살 수는 있어도, 독일인이나 터키인이나 일본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구상 그 어느 구석에서 온 사람이든, 미국에 와서 살면 미국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회의 땅으로 밀려든 새 이민자들의 물결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젊은 나라입니다.
언제나 활력과 새로운 생각으로 넘치고,
늘 세계의 맨 앞자리에 서 있는 나라.

저는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위대함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미국인들에게 문을 닫아버린다면,
세계 속에서 우리의 지도력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28 2026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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