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 : 권력 앞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1969년, 미국 상원 청문회.
공영방송 PBS 예산 삭감을 논의하던 자리에
한 어린이 방송 진행자가 증인으로 불려 나왔다.
프레드 로저스였다.
그는 ‘미스터 로저스의 네이버후드’의 진행자였다.
정치도, 정책도, 로비 경험도 없는 인물이었다.
당시 상원은 PBS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 하고 있었다.
닉슨 행정부는 “교육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어린이 프로그램 예산을 가장 먼저 줄이려 했다.
로저스가 불려간 자리는
토론의 장이 아니었다.
이미 결론이 나버린
예산 삭감 절차의 일부였을 뿐이다.
위원장이었던 존 패스토어 상원의원은
강경하고, 숫자 중심적이며,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로저스에게 물었다.
“당신 프로그램이
공적 자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보통의 답이라면
시청률,
교육학적 효과,
전문가 의견,
통계와 성과를
나열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저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해온 원고를 접고,
부드럽지만 명료한 말투로 말했다.
“저는 어린이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일이죠.”
그는 아이들이 분노를 느끼는 순간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쓴 노래 가사를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날 때,
어떻게 할 거니?”
그 노랫말은
질문으로 시작해
선택으로 끝나고 있었다.
참지 말고,
폭발시키지도 말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내려놓을 방법은 없을까.
잘못된 행동을 하기 직전에도
사람은 멈출 수 있다고.
그 멈춤이야말로
가장 큰 용기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자신이 만드는 방송의 전부라고.
어떤 설명도,
어떤 주장도
덧붙이지 않았다.
상원은
노랫말이 끝난 뒤에야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건
어린이 프로그램의 예산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가
아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잠시 침묵하던 패스토어 의원은
눈물이 그렁한 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산은 통과됐고,
삭감은 철회됐다.
논쟁 없이,
표 대결 없이.
그리고
박수는
그날 가장 조용했던 증언을 향해
오래 이어졌다.
“People can change.”
이 사건 이후 미국 언론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문화의 주변부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영역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프레드 로저스는
청문회 인터뷰를
설득의 장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른에게 맞는 언어가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언어,
아이에게 하듯 말했다.
자기 자신을 증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지켜온 가치를
그대로 보여줬다.
로저스는 그날
상원을 이긴 것이 아니다.
그는
권력이 듣지 않던 언어를
권력 앞에
그대로 놓아두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People can change.”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가 강연과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했던 말이다.
아이들이 화를 내고, 실수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지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이해받고, 존중받는 환경 안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프레드 로저스는
아이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어른들에게도
잃어버린 믿음과
다시 시작할 기회를
돌려준 사람이었다.
그의 인터뷰와 방송이
시대가 바뀌어도
낡지 않는 이유다.
인터뷰 II : 상처 앞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영화 속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
2019년 개봉한 영화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주연 톰 행크스)는
프레드 로저스의 가치를 과장 없이 투영한 작품이다.
톰 행크스는
연기했다기보다
로저스의 리듬과 침묵을 옮겨 놓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극적이지 않다.
대신,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는다.
흥미롭게도 톰 행크스는
실제로 프레드 로저스와 육촌 관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기는 인상은
혈연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한 기자가 로저스를 인터뷰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990년대 말.
냉소와 분노를 안고 사는 잡지 기자 로이드 보겔은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로이드는 처음부터 마음이 닫혀 있다.
세상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고,
‘너무 착한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드 로저스 역시
그런 인물일 거라 확신한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로저스를 검증하려 든다.
정말 그런 사람인지,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인터뷰는
그가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로저스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논쟁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다.
질문은 점점 흐트러지고,
인터뷰는 취재가 아니라
대화가 된다.
영화의 중심에는
기자의 상처가 있다.
로이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분노를 끊어내지 못한 채
그 감정을 삶 전체에 끌고 다닌다.
로저스는
그 상처를 해결해 주려 하지 않는다.
조언도, 판단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묻는다.
“그 감정을 느끼는 건 어떤가요?”
그리고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로이드는 처음으로
자신의 분노를 마주하고,
용서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극적인 반전도,
명확한 교훈도 없다.
프레드 로저스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쪽은 기자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프레드 로저스는
사람을 고치지 않는다.
사람을 잃지도 않는다.
그 태도가
한 기자의 삶을,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천천히 바꾼다.
그리고 어떤 인터뷰는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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