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

산 위의 남자

2026년 4월, 이란 남서부 자그로스 산맥.

해발 2,100미터 능선, 바위 틈새에 남자 하나가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탈출 과정에서 접질린 발목, 몇 시간에 걸친 산행으로 생긴 출혈.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권총 한 자루와 조난 신호기 하나.

수 시간 전까지 그는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의 뒷좌석에서 2천 파운드 폭탄을 투하하던 무기 시스템 장교였다. 지금은 적국 한복판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한 남자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암호화된 무전기를 짧게 눌렀다. 그가 보낸 세 단어는 “God is good.” 길게 누르면 이란군이 먼저 신호를 잡는다. 미국의 자산이 먼저 잡기를 기도하며, 그는 다시 신호를 껐다.

워싱턴의 작전 책임자들은 이 짧고 낯선 문구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이란이 그를 잡아 무전기를 빼앗고, 구조대를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가 독실한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동료들이 나서서야, 워싱턴은 그 세 단어가 그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AI-generated image recreating a downed U.S. Air Force officer hiding in Iran’s Zagros Mountains, April 2026. By Frame.

그의 머리 위로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한 사람당 6만 달러. 산자락의 어느 양치기가 그를 발견하고 전화 한 통만 걸어도, 그는 테헤란의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두 손을 묶이고, 눈을 가린 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생포되는 순간, 이란이 쥔 지렛대가 된다.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한 장의 카드. 자신 한 사람 때문에 국가가 흔들리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부상 입은 발을 끌고 7,000피트 산등성이를 기어 오른 이유다.

그리고 그가 굳게 믿었던 또 하나의 사실. 자신이 이 바위틈에서 혼자 버티는 동안, 누군가 전력을 다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 세계 최강의 군대, 미군 말이다.


한 사람을 위한 전쟁

수천 마일 떨어진 펜타곤과 탬파의 중부사령부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F-15E가 피격된 순간부터 미군 시스템에는 한 단어가 번쩍이고 있었다. ‘Isolated Personnel (고립된 인원)’. 조종사는 6시간 만에 구출됐다. 총격전을 뚫고 쿠웨이트로 이송됐다. 그러나 뒷좌석에 탔던 대령은 여전히 산 어딘가에 있다.

CIA가 움직였다. 비밀 감시 드론이 이란 상공을 소리 없이 훑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특수작전 요원이 소집됐다. 네이비 실 6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던 바로 그 부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중에 공개한 숫자는 항공기만 155대. 대령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동원된 자산의 총량은 웬만한 국가의 전면전 규모였다.

동시에 CIA는 기만 작전을 폈다. “미군이 비행사를 이미 확보했다. 차량 호송대로 빠져나오고 있다.” 이란 지상군의 수색대가 엉뚱한 방향으로 흩어지는 동안, B-1 폭격기들이 대령이 숨은 산 주변의 이란군 도로와 주둔지에 2천 파운드 폭탄을 쏟아부었다. 산 하나를 둘러싼 불의 고리였다.


진흙에 갇힌 최정예

어둠이 내린 뒤, 특별 개조된 MC-130 수송기 두 대가 이란 상공을 갈랐다. 내부에는 소형 헬리콥터들이 접힌 채 실려 있었다. 7,000피트 산 정상에는 큰 비행기가 내릴 수 없었다. 수송기가 산 아래 오지의 폐활주로에 헬기를 토해 내기가 무섭게, 헬기들은 산 위로 치솟았다.

미군 특수작전 요원들이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냈다. 미국은 그를 찾아냈고, 그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헬기를 다시 실은 MC-130 두 대의 앞바퀴가 젖은 모래에 박혀 버린 것이다. 이란 한복판에 미군 수송기 두 대와 약 100명의 최정예 요원이 갇혔다.

AI-generated image recreating a U.S. special operations extraction mission in Iran’s Zagros Mountains, April 2026, including MC-130 deployment, helicopter insertion, and emergency exfiltration under fire. By Frame.

워싱턴의 시계가 멈췄다. 플랜 B가 가동됐다. 새 수송기 세 대가 다시 이륙했다. 그 몇 시간 동안, 상공의 폭격기들은 접근하는 모든 것을 때렸다. 새 비행기가 도착하고, 대원들과 대령이 차례로 탑승했다.

이륙 직전, 모래밭에 박힌 수송기 두 대와 헬기들을 스스로 폭파했다. 안에 담긴 기술이 이란 손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불빛을 등진 채 이란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그를 구했다”

4월 6일 월요일, 백악관 기자회견장.

연단에 오른 트럼프의 목소리에는 자랑과 흥분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미군이 지금까지 시도한 전투 수색 및 구조 임무 중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임무. 그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덧붙였다.

“고립된 장교를 구조했습니다. 모든 위협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이란 영토를 빠져나왔습니다.”

White House press briefing, April 6, 2026 (Photo: Official White House video screenshot)

트럼프 옆에 선 전쟁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이번 작전을 예수의 부활에 빗댔다. “성금요일에 격추됐고, 토요일 내내 바위 틈새에 숨어 있다가, 부활절 일요일 해가 뜰 무렵 이란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시 태어난 조종사입니다(a pilot reborn).”

피격 후 약 50시간을 적진에서 버틴 한 남자와 그를 데리러 지구 반바퀴를 날아간 수백 명의 동료. 이들이 지켜낸 것은 한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었다. 160년 동안 미군이 병사에게 해 온 한 줄의 약속이었다.

No one left behind.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


이 원칙은 언제부터?

1862년 9월 17일, 메릴랜드 앤티텀 크리크.

남북전쟁 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 하루 만에 23,000명의 사상자가 쏟아졌다. 그전까지 미군은 부상병을 전장에 사흘, 때로는 일주일씩 방치했다. 다쳐 쓰러진 병사는 대개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날,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소령 조너선 레터맨이 설계한 최초의 전용 구급대가 처음 가동된 날이었다.

해가 지기 전 부상자 전원이 전장에서 후송됐다.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감정이 아니라 조직으로 옮겨간, 미군 역사의 분기점이었다. 2년 뒤, 의회는 이 제도를 전군에 표준화했다.

“Battle of Antietam” by Kurz & Allison (Photo: Wikipedia)

그 정신은 시대를 건너갔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전우의 시신을 끌어내려 포화 속으로 기어 나가는 병사들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유럽과 태평양에서, 포위된 부대가 한 명의 실종자 때문에 전선을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반복됐다. 미군은 그렇게 한 문장을 암묵의 원칙으로 새겼다. 전우를 두고 오는 군대는 다시 전선에 서지 못한다.

베트남 전쟁이 그 원칙을 국가의 신념으로 끌어올렸다. 헬기 의무후송 콜사인 “Dustoff”. 총알이 쏟아지는 정글 한복판으로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비무장 헬기가 내려앉았고,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가 평균 33분 만에 외과 의사 앞에 놓이는 시대가 열렸다.

베트남 전쟁 당시 Dustoff 헬기로 부상병을 나르고 있다. (Photo: Dustoff.org)

부상당한 병사들은 훗날 같은 말을 반복했다. “휴이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면, 나는 살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가는 포로와 실종자를 찾았다. 수십 년에 걸쳐, 정글과 강바닥을 뒤지며. “죽더라도 같이 돌아온다”는 것이 국민과 군대 사이의 계약이 됐다.

지금 미 육군 레인저의 신조에는 한 문장이 박혀 있다. 

I will never leave a fallen comrade.

나는 쓰러진 전우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한 명을 위해 더 많이 죽을 때

1993년 10월 3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블랙호크 Super Six-Four가 도시 한복판에 추락했다. 조종사 마이클 듀런트는 부상을 입은 채 조종석에 끼어 있었고, 수백 명의 소말리아 민병대가 골목골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공중에서 엄호 중이던 델타 포스 저격수 게리 고든과 랜디 슈가트는 헬기를 내려다봤다. 지상 병력은 오지 못한다. 두 사람은 무전기를 잡고 요청했다. 내려가게 해 달라. 지휘부는 거절했다. 두 번째 요청도 거절당했다. 세 번째에 허가가 떨어졌다.

두 사람은 저격총과 권총 한 자루씩만 들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추락 지점까지 100미터. 그 사이 좁은 골목의 모든 창문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그들은 듀런트를 끌어내고, 헬기 주위로 방어선을 만들고, 한 발씩 쏘며 시간을 벌었다. 고든이 먼저 쓰러졌다. 슈가트는 고든의 소총을 집어 듀런트에게 건넸다. 얼마 뒤 슈가트도 전사했다. 추락 현장은 함락됐고, 듀런트만 살아남아 11일간 포로로 잡혔다. 두 사람은 베트남전 이후 미군 최초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블랙호크 ‘슈퍼 64’ 실제 추락 사진(Photo:나무위키)

그날 밤이 끝날 무렵, 미군 18명이 숨졌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남기고 갔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그 전투였다.

9년 뒤, 아프가니스탄 타쿠르 가르 산정. 네이비 실 대원 닐 로버츠가 헬기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해발 3,000미터, 눈 덮인 능선이었다. 구조팀이 곧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 적의 매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미군 7명이 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2005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쿠나르주. 네이비 실 정찰팀 네 명이 산속에서 고립됐다. 그들을 구하러 간 치누크 헬기 한 대가 RPG에 격추됐다. 헬기에 탄 16명이 전원 전사했고, 정찰팀에서도 세 명이 더 돌아오지 못했다. 미 특수작전사령부 역사상 단일 작전(Operation Red Wings) 최악의 손실이었다. 정찰팀 네 명 중 마커스 루트렐 한 사람만이 살아 돌아왔다.

레드윙스 작전(Operation Red Wings)에 투입된 특수부대원들(Photo: 나무위키)

그리고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귀환이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먼지 속에서, 전사한 전우의 유해를 데리러 다시 적진으로 걸어 들어간 이들.

계산으로만 보면 비효율이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열 명이 죽는다. 그러나 군대는 계산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한 줄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 병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미군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가 된 이유는 무기나 예산만이 아니다. 내가 쓰러져도, 누군가는 나를 데리고 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두 장교가 초인종을 누를 때

어느 평범한 오후, 현관 벨이 울린다.

문을 여는 순간, 어머니는 숨이 멎는다. 정복을 입은 두 장교가 서 있다. 한 사람은 통보 장교(Casualty Notification Officer), 다른 한 사람은 군목이다.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이 나라에는 원칙이 있다. 가족이 세상보다 먼저 안다. 통보 장교가 입을 연다. 문장은 정해져 있다.

“The Secretary of the Army regrets to inform you…”

육군 장관의 지시로, 유감스럽게도 전사 소식을 전합니다.

소식을 전한 뒤, 두 사람은 떠난다. 그러나 국가는 떠나지 않는다. 며칠 안에 지원 장교(Casualty Assistance Officer)가 가족에게 전화를 걸고, 방문 약속을 잡는다. 장례, 보험, 연금, 유해 송환, 군 장례식. 지원 장교는 가족이 원하는 만큼 몇 달, 길게는 1년을 함께 걷는다.

며칠 뒤, 델라웨어 도버 공군기지.

활주로 위로 수송기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후방 문이 열리고, 성조기에 덮인 관이 여섯 명의 대원 어깨 위로 천천히 내려온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모든 군인이 경례한다. 카메라 셔터도 없다. 박수도 없다. 가족이 활주로 끝에서 지켜본다. 존엄 이송(Dignified Transfer). 그 이름이 전부 말해 준다.

The Dignified Transfer of Remains of Six U.S. Soldiers,
March 7, 2026 (Photo: The White House)

그 다음, 가족이 선택한다.

알링턴의 흰 비석들 사이로 갈 것인가. 고향의 작은 교회 묘지로 갈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같은 예우가 따라온다. 성조기가 관을 덮고, 21발의 조총이 울리고, 나팔수가 Taps를 분다.¹ 의장대가 국기를 접는다. 한 번, 두 번, 열세 번. 접힌 삼각형이 유가족의 무릎 위에 놓인다. 그 삼각형을 건네는 장교는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정해진 한마디를 전한다.

“미국 대통령과 감사하는 국민을 대신하여, 이 국기를 바칩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원해 군복을 입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같다. 이 나라는, 내가 쓰러진 뒤에도 나를 기억한다. 내 가족을 혼자 두지 않는다.


¹ Taps는 24음으로 된 미군의 나팔곡이다. 1862년 남북전쟁 당시 하루의 끝을 알리는 소등 나팔이었으나, 같은 해 한 포병대가 전사한 동료의 장례에 예포 대신 이 곡을 연주한 뒤 군 장례식의 공식 곡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가 끝났다, 편히 쉬어라”는 뜻이 그 선율 안에 담겨 있다.


라이언 일병을 찾아서

1944년 6월, 뉴욕주 토나완다.

어거스타 니랜드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장교를 보았다. 전보가 도착한다는 것은 아들 중 누군가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전보가 한 통이 아니었다. 세 통이었다.

그녀의 네 아들, 에드워드, 프레스턴, 로버트, 프레더릭은 ‘함께 참전하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서로 다른 부대로 흩어졌다. 에드워드는 버마 상공에서 B-25를 몰다가 격추됐다. 로버트는 노르망디 상륙 첫날 D-Day 저녁에 전사했다. 프레스턴은 그다음 날 유타 해변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돌보다 독일군 포격에 쓰러졌다. 사흘 사이의 일이었다. 어거스타에게 그 소식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사령부가 움직였다. 마지막 남은 아들 프리츠를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101공수사단 군목 프란시스 샘슨 신부가 그 임무를 맡았다. 프리츠는 때마침 형 밥을 만나러 82공수사단을 찾아간 참이었다. 그곳에서 형의 전사 소식을 들은 청년이 고개를 든 순간, 군목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54년 뒤,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이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밀러 대위는 노르망디의 들판을 가로지르며 묻는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왜 죽어야 하는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소대는 계속 걸어간다. 마지막 장면, 총에 맞아 죽어가던 밀러 대위는 라이언의 얼굴을 끌어당기고 두 마디를 남긴다.

“Earn this.”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라.

수십 년 뒤, 백발의 라이언이 노르망디 미군 묘지의 밀러 대위 묘 앞에 선다. 흰 비석이 수평선까지 이어진 자리다. 그는 돌아서서 아내에게 묻는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소? 내가 그럴 만한 삶을 살았소?

그것은 미국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수백 명이 한 사람을 구하러 적진에 들어갈 때, 그 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와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질문. 나는 이 희생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이 살아 있는 한, 그 나라는 무너지지 않는다.


Now / What’s Next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

AI-generated image by Frame.

쉰여섯 명의 남자가 한 장의 양피지에 이름을 써 내려갔다. 미국 건국을 선언하는 독립선언문이었다. 맨 아래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We mutually pledge to each other our Lives, our Fortunes, and our sacred Honor.”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건다.

서명자 중 다섯은 체포되어 고문 끝에 죽었고, 아홉은 전장에서 숨졌고, 열두 명의 집은 불탔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서약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나라의 시작이었다. 피로 새겨진 언약.

트럼프 시대에 가장 많이 들리는 문장이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러나 정작 우리가 떠올려야 할 문장은 따로 있다.

“무엇이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어 왔는가.”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3 2026년 4월 22일

President Donald Trump greets troops at Fort Bragg
(Photo: The White House)

Published inFr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