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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밴스를 보냈을까

피 묻은 케이지, 두 사람

4월 11일 토요일 밤 9시, UFC 경기가 열리는 마이애미 카세야 센터.

President Donald J. Trump Attends UFC 327 in Miami, Florida (Photo: The White House)

키드 락의 노래가 울렸다. 관중의 함성 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링사이드 자리로 걸어 들어왔다. 장녀 이방카, 차녀 티파니, 장남 돈 주니어가 함께였다.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이 UFC 경기장에서 서로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Photo: ABS-CBN Sports 영상 캡처)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와 암호화폐, 버드라이트 광고판이 뒤덮인 팔각형 케이지 안에서 파이터들이 서로를 두들겼다. 바닥에는 첫 경기에서 터진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무표정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트럼프가 경기 도중 루비오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UFC 경기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루비오 국무장관을 불러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The White House)

빈손의 연단

같은 시각,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이슬라마바드 세레나 호텔.

JD 밴스 부통령이 연단에 섰다. 옆에는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가 서 있었다. 17시간의 비행, 21시간의 체류, 그중 16시간이 넘는 밀실 협상을 마친 직후였다. 약 50년 만의 최고위급 미국-이란 직접 대화. 밴스가 입을 열었다.

“나쁜 소식입니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JD 밴스 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Photo: CBS News 캡처)

기자 세 명의 질문만 받고 밴스는 자리를 떠났다. 휴전이 유지될지, 호르무즈 해협이 열릴지, 트럼프가 이란 문명을 지도에서 지우겠다는 위협을 실행에 옮길지.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밴스가 협상 실패를 발표하던 바로 그 순간, 트럼프는 대형 스크린 속 파이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UFC 경기장에서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다.
(Photo: The White House)

그는 경기장에 오기 전 이미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백악관을 떠나며 기자들에게 한 말은 이랬다. “합의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어요. 군사적으로 이미 이겼으니까.”

실패가 예견된 회담에 트럼프는 왜 밴스를 보냈을까.


되면 내 덕, 안 되면 네 탓

이란 대표단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전원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한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대표단은 군사시설 인근 학교 폭격으로 숨진 학생들의 신발과 가방을 들고 왔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장에 이란 측 대표단이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Photo: NBC News 영상 캡처)

이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상복과 학생들의 유품을 들고 나타난 것도, 미국 부통령의 카운터파트로 국회의장을 보낸 것도. 협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의 대가를 묻겠다는 것이었다.

밴스가 대표단의 수장이 된 데는 이란의 요구가 있었다. 개전 전 쿠슈너와 위트코프가 이끈 협상을 이란은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의 기만”이라 판단하고, 이 둘과는 다시 앉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성과가 있으려면 밴스가 와야 한다.”

트럼프는 밴스를 보냈다. 그런데 이란이 거부한 쿠슈너와 위트코프를 함께 붙였다. 이란이 불신하는 사위를 밴스 곁에 배치한 것이 감시였는지, 연속성이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분명한 것은 외교의 핵심 당사자인 루비오 국무장관이 이슬라마바드가 아니라 마이애미에서 트럼프와 함께 UFC 경기를 관람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자신이 부활절 오찬에서 이 구도를 요약했다. “합의가 되면 내 공로로 가져갈 거고, 안 되면 JD 밴스 탓으로 돌리겠습니다.” 장내가 웃었다.


네타냐후의 한 시간

6주 전인 2월 11일 오전 11시, 백악관 지하 상황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모사드 국장과 이스라엘 군 고위 장교들이 화상으로 도열해 있었다. 회의는 극비였다.

참석자는 루비오, 헤그세스, 케인 합참의장, 랫클리프 CIA 국장, 쿠슈너, 위트코프, 와일스 비서실장으로 제한됐다. 다른 주요 각료들은 이 회의가 열리는 것조차 몰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러라고(Mar-a-Lago)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개최했다.12/29/2025 (Photo: The White House)

밴스 부통령은 빠져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출장 중이었고, 회의가 너무 급히 잡혀 돌아오지 못했다.

네타냐후는 한 시간에 걸쳐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몇 주 안에 파괴될 수 있다. 정권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모사드가 거리의 봉기를 촉발하면 체제는 무너진다. 화면에는 체제 붕괴 이후 이란의 새 지도자 후보를 담은 영상까지 재생됐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트럼프가 말했다.

“좋아 보이는데(Sounds good to me).”


애초부터 레짐 체인지는 아니었다

2월 12일, 백악관 상황실. 전날 네타냐후가 떠난 자리에 미국 관리들만 모였다.

CIA 분석관들이 밤새 이스라엘의 프레젠테이션을 네 파트로 쪼개 해부했다. 아야톨라 제거, 군사력 무력화, 민중 봉기, 체제 전환. 결론은 냉정했다. 앞의 둘은 가능하다. 뒤의 둘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랫클리프 CIA 국장은 네타냐후의 체제 전환 시나리오를 한 단어로 요약했다. “코미디(farcical).” 루비오가 끼어들었다. “다시 말해, 헛소리(bullshit)라는 거죠.” 아제르바이잔에서 막 돌아온 밴스도 강한 회의를 표했다. 트럼프는 빠르게 정리했다. 레짐 체인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주가 흘렀다. 2월 26일 오후 5시, 마지막 상황실 회의.

이 자리에서 전쟁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밴스였다. 이란전을 “자원의 거대한 낭비”이자 “천문학적 비용”이라 불렀다. 지역 혼란, 대규모 민간인 사상, 탄약 재고 고갈.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전쟁 없음’을 약속받은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머지는 침묵하거나 대통령에게 맡겼다. 와일스 비서실장은 동료들에게 유가 급등과 중간선거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바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루비오는 입장을 살짝 틀었다. “체제 전환이 목표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사일 프로그램 파괴라면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헤그세스는 가장 적극적이었다. “어차피 언젠가 처리해야 할 일이니 지금 하자.” 케인 합참의장은 위험을 나열하면서도 끝내 찬반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테이블을 돌며 한 사람씩 의견을 물었다. 밴스가 말했다. “나쁜 생각이라는 거 아시죠. 하지만 하시겠다면 지지하겠습니다.” 아무도 대통령을 막지 않았다.

트럼프가 입을 열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날 오후, 에어포스원 기내. 케인 합참의장이 제시한 데드라인 22분 전, 트럼프가 명령을 보냈다.

“에픽 퓨리 작전을 승인한다. 중단 없이 진행. 행운을 빈다.”


누가 상황실의 대화를 흘렸나

4월 7일, 뉴욕타임스가 단독 보도를 냈다.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에 끌어들였나.” 곧 출간될 책 취재에 기반한 이 기사는 “익명을 전제로 한 광범위한 인터뷰”에서 나온 정보라고 밝혔다.

April 7, 2026 뉴욕타임스 단독 보도 스크린샷

상황실은 극비 공간이다. 참석자는 열 명 남짓. 그런데 좌석 배치, 발언 순서, 각 참석자의 어조까지 기사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 상세하게 기억하고, 아주 의도적으로 말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가장 좋게 그려진 인물은 밴스였다. 전쟁을 반대했고, 경고했고, 끝까지 저항했지만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 부통령. 원칙과 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유일한 인물. 반면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과대포장에 넘어간 대통령으로, 루비오는 독설은 날리면서 결국 반대하지 못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워싱턴에는 오래된 공식이 있다. 유출의 출처를 알고 싶으면 보도로 가장 이득을 보는 인물을 찾으라는 것이다.


트럼프를 히틀러라 부른 남자

2016년, JD 밴스는 무명의 오하이오 청년이었다. 가난과 마약 중독으로 얼룩진 가족사를 담은 회고록 《힐빌리 엘레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의 심리를 설명해 주는 책으로 읽혔다. 같은 해 밴스는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라고 불렀다. “위험하고 부적격한 인물”이라고도 했다.

JD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 엘레지’

그러나 5년 뒤, 밴스는 트럼프에게 사과하고 오하이오 상원 선거에 출마했다. 트럼프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해병대 출신으로 이라크에서 복무한 경험은 그의 정치적 정체성의 핵심이 됐다. “나는 이라크에서 거짓말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상원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했고, 해외 군사 개입을 일관되게 비판했다. 마가 진영의 반전파는 밴스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로 밴스를 선택하고 유세에 나섰다. (Photo: NBC News 캡처)

2024년 7월, 트럼프는 부통령 후보로 밴스를 택했다. 최종 후보에는 루비오도 있었다. 돈 주니어와 터커 칼슨, 일론 머스크, 피터 틸이 밴스를 밀었다. 40세의 밴스는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젊은 부통령이 됐고, 트럼프 이후 공화당의 미래로 불렸다.

한때 트럼프를 히틀러라 부른 남자가, 트럼프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되고 있다.


독이 든 성배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유가가 치솟자 트럼프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유고브/이코노미스트 4월 초 조사에서 순 지지율은 마이너스 23%포인트. 폭스뉴스조차 반대율 59%를 기록했다. 두 번의 임기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마가 진영의 반전파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밴스와 가까운 터커 칼슨은 전쟁의 가장 맹렬한 비판자가 됐다. 그는 개전 직전 백악관을 찾아가 “이란전은 대통령직을 파괴할 것”이라고 트럼프에게 직접 경고한 인물이다. 트럼프는 “걱정 마, 괜찮을 거야”라고 답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원래 항상 그래 왔으니까”라고 했다.

한때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전 폭스뉴스 앵커 출신 터커 칼슨이 이란전 이후 트럼프에게서 돌아섰다. (Photo: 터커 칼슨 쇼 영상 캡처)

2028년 공화당 대선 후보 최유력 주자로 꼽혀 온 밴스에게, 전쟁 반대 이력은 정치적 자산이 됐다. CNN은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밴스에게 부통령 재임 중 가장 큰 정치적 기회”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공화당 전략가 맷 와일리는 정반대로 읽었다. “이건 트럼프가 설정한 충성도 테스트일 수 있다. 밴스는 자기가 이 전쟁에 반대했다는 걸 알리려 했다. 그래서 바로 그 사람이 전쟁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MSNBC는 이 협상을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의 관심이 트럼프에서 밴스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 인생에서 자신보다 주목받는 부하들은 언제나 문제였다.

밴스에게 이번 임무는 기회이자 덫이었다.


균열

이란전은 많은 것을 뒤흔들었다.

5주간의 폭격으로 이란 최고 지도자를 포함한 고위 관료들이 제거됐고, 1만 3천 개의 목표물이 타격됐으며, 민간인 1,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군 13명도 전사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막았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결렬되자 트럼프는 다음 날 곧바로 이란 항구에 대한 해군 봉쇄를 실행에 옮겼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해적 행위”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개전 이후 1달러 넘게 올랐다. 한국을 포함한 석유 수입국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교황 레오 14세는 이란전을 공개 비판했고, 트럼프는 자신을 예수에 비유하는 AI 이미지를 올린 뒤 반발이 일자 삭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올렸다가 삭제한 이미지. (Photo: 트럼프의 트루 소셜 계정)

그러나 가장 깊은 균열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가 진영의 반전파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민주당은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단 내부에서도 입장이 충돌했다. 전쟁은 미국과 이란 사이만이 아니라, 공화당 내부, 백악관 안에서도 균열을 내고 있다.


Now / What’s Next

2주간의 휴전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는 가운데 양측 모두 2차 회담에 나서길 원하고 있다.

트럼프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거나, 전쟁을 재개하거나.

전시 중이지만 대통령은 UFC 경기장에서 주먹을 치켜세우고, 주말에는 골프를 친다. 강하고 여유로워 보이려는 몸짓이다. 그러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자신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전 휘발유 가격이 “같거나 조금 더 오를 수 있다”고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 밴스 부통령과 우샤 밴스 여사가 이란전 전사 미군의 유해 송환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2026년 3월 7일, 도버 공군기지. (Photo: The White House)

마가 진영의 분열은 깊어지고 있다. 반전파는 다른 목소리를 찾고 있고, 그 이름이 밴스라는 것을 트럼프도 안다. 링사이드에 루비오를 앉힌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지, 충견을 곁에 둔 건지. 트럼프의 충성도 테스트는 계속된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2 2026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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