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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의 2분, 치료의 열쇠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의사


처음 그를 찾아간 건 순전히 환자로서였다. 피부에 생긴 발진 때문에 클리닉 문을 두드렸고, 선택의 근거는 구글 리뷰였다. 수십 개의 후기가 하나같이 별 다섯 개. 흠 하나 없는 만점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진료실에 들어선 나는 순간 멈칫했다.

흰 가운 안에서 그가 건네는 첫마디부터 달랐다. 오랜 세월 진료를 해 온 의사들에게서 간혹 보이는 관성, 굳어버린 표정 같은 것이 그에게는 없었다. 눈빛에는 여전히 총명함이 살아 있었고, 환자를 향한 태도에는 열정과 존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해박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대체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저리 맑고 단단할까. 미국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그가 살아온 인생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번 이너뷰는 애틀랜타 코리아타운에서 조용히 환자를 만나온 알레르기·면역학 전문의, 신 별 닥터를 담았다.


이름값 치른 삼남매

기자: 이름이 ‘별’이신데, 참 예쁜 순우리말 이름이에요.

아버님이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형은 ‘솔’, 여동생은 ‘시내’예요. 어린 시절에 셋 다 놀림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한글 이름이 흔치 않을 때였던 데다가, 형은 솔담배 때문에, 동생은 신신애 씨의 등장으로 꽤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지요.


여동생 대신 탄 비행기

기자: 미국에는 어떻게 오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전산학과였어요.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사이언스지요. 그런데 원래 제가 원했던 학과는 아니었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때 마침 오래 전에 신청해 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미국 영주권이 나왔습니다. 80년대에 가족 영주권 신청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10년쯤 지나서 나온 거예요.

막상 영주권이 나오니 가족들은 다 가기 싫어했어요. 공부를 꽤 잘했던 여동생을 보내려 했는데 동생이 안 간다고 해서 제가 대신 오게 됐습니다. 뉴욕에는 작은아버지가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계셨고, 고모도 그쪽에 계셨거든요. 미국에 가서 저도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1992년 5월이었습니다. 플러싱과 퀸즈에서 처음 정착했고, 스물두 살이었어요.

그의 미국행은 거창한 계획의 결과가 아니었다. 오래 전에 넣어두고 잊고 있던 서류 하나가 한 사람의 길을 완전히 돌려 세웠다. 동생 대신 길을 떠난 청년은 그곳에서 자기 인생의 방향을 새로 정했다.


친구를 끊고 의사가 되다

기자: 유학을 꽤 늦게 오신 편인데, 영어나 의대 공부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의대 진학하면서 친구 관계를 모두 끊었습니다.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데 시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대 다니는 내내 누구와도 말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원래는 외향적인 편이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면서 완전히 내성적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제게 가능한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의대를 수석으로 마치고 예일대학교에서 내과 인턴과 레지던트를 끝냈습니다. 이후 플로리다에서 알레르기 및 임상 면역학 펠로우십까지 마쳤고요.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힘들긴 했던 모양입니다.

2004년 예일대학교 인턴/ 레지던트 시절
(Photo courtesy of Dr. Byol Shin)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거의 수도승 같은 시간이 들어 있었다. 친구를 끊고, 말을 줄이고, 목표 하나에 자신을 밀어넣었던 청춘. 외향적인 청년은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은 전혀 다른 내가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시한부 선고가 불러온 결혼

기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감사하게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일은 겪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면 2003년이었어요. 의대를 마치고 인턴을 막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위암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6개월 시한부라는 말을 들었지요. 불과 한 달 전 아버지를 뵙고 왔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이모 소개로 만난 분이 있었는데, 가족들이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서두르라고 했어요. 그렇게 열 번 남짓 만난 분과 갑자기 결혼하게 됐습니다. 인턴 시작, 아버지의 암 판정, 결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혼한 아내와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도 암을 다 이겨내셨어요. 지금은 지리산 종주를 하실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가끔 아내가 물어요. 그때 정말 6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하신 거 맞냐고요. 하하. 저희 결혼생활 햇수가 곧 아버지가 제2의 인생을 사신 시간입니다.


하루 여섯 명만 보던 의사

기자: 지금의 닥터 신별이 있기까지 영향을 준 멘토가 계셨나요?

펠로우 트레이닝 때 정말 존경했던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당시에도 환자 대기 기간이 6개월 정도 밀려 있었어요. 예약 취소가 없으면 신규 환자는 보기 힘든 분이셨지요. 존 슬리즈먼 교수님인데, 지금은 듀크대학병원 알레르기·면역과 학과장으로 계십니다.

그분은 하루에 환자를 딱 여섯 명만 보셨어요. 대신 한 사람당 무조건 한 시간을 쓰셨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그냥 환자와 대화를 하셨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자의 상태를 살피시면서요.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진료를 하실까, 감탄만 나올 뿐이었지요.

유명한 의사는 많다. 그러나 누군가의 진료 철학까지 바꿔 놓는 의사는 흔치 않다. 하루 여섯 명. 한 사람당 한 시간. 숫자로 보면 비효율적이나 진료에서 ‘느린 것’은 종종 가장 정확한 것이다.


진료실의 2분 규칙

기자: 선생님의 진료 방식도 그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진료실에 들어가면 처음 2분간은 환자의 말을 절대 끊지 않고 무조건 듣기만 하려고 노력합니다. ‘2분 규칙(2 minutes no talking)’이라고 저만의 철칙인데요, 그렇게 먼저 들어주면 환자분들이 마음을 열고 더 깊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런데 그 2분이 생각보다 참 깁니다. 가끔은 증상 얘기하시다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인생 이야기를 다 꺼내 놓으시는 분도 계셔서 난감할 때도 있지요. 그래도 최대한 들어 드리려 합니다.

진료 마지막에도 항상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Anything else)?”라고 묻습니다. 바로 그때 진짜 속마음이나 다른 증상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10분 남짓 짧게 만나고 끝내는 진료는 제 방식이 아닙니다. 신뢰는 그 시간 속에서 쌓이고, 올바른 치료는 그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2분 동안 끊지 않고 듣는 일. 사소해 보이지만, 바쁜 진료실에서는 가장 지키기 어려운 약속일 수 있다.


알레르기라고 믿는 병의 절반

기자: 내과 과정도 수료하셨네요?

펠로우십할 때 이런 가르침을 받았어요. “네가 훌륭한 알레르기 전문의가 되고 싶다면 먼저 뛰어난 내과 전문의가 되어라.”

저를 찾아온 환자 10명 중 절반은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어느 한 곳만 봐서는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알레르기는 결국 면역 체계의 이상 반응인데, 그 반응은 온몸에 걸쳐 나타나거든요. 피부도 봐야 하고, 호흡기도 봐야 하고, 심장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확신하시는 분들에게 원인이 다를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제 방식이 맞다고 무조건 강요하는 대신 대화를 통해서 제 치료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여 드려요. 새로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관련 자료를 드리고 읽고 오시라고도 합니다. 과제를 많이 드리는 편이지요. 환자 스스로 치료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결과도 더 좋다고 믿습니다.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낫는다

기자: 의사로서 지치지 않기 위해 꼭 하시는 것이 있다면요?

너무 무리해서 진료 스케줄을 잡지 않습니다. 환자들에 치일 정도로 진료를 하다 보면 의사도 지치고 결국 환자에게도 안 좋은 영향이 가니까요. 의사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 환자는 금방 알아챕니다. 그리고 무조건 7시간 이상의 수면을 챙깁니다. 의대 공부할 때도 그랬어요. 아무리 공부할 게 많아도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7시간 이상 자야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환자들을 볼 수 있거든요. 저는 제가 행복해야 환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귀넷 클리닉 패터슨 진료실에서 신 별 닥터 (Photo:Eunice Lee)

환자에게 위로받은 의사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를 묻자, 그는 아주 특별한 한 환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말을 잇다가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 터져나온 울음에 멋쩍어했지만, 그만큼 진심이 담긴 기억이었다.

작년에 제 아들이 여러 차례 입원도 하고 많이 아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제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평소 천식 등으로 저를 찾아오시던 환자분이 그때도 진료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늘 진료실에 들어오시면서 “How’re you doing? How’s your family?”라고 인사하세요.

보통 환자분들은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하시기에 바쁘신데, 오히려 의사에게 그렇게 안부를 물으시는 분이라 참 인상적이었지요. 그날도 제게 “잘 지내셨어요? 가족들은 다 평안하시고요?”라고 하셨는데, 그 따뜻한 말이 제 가슴을 훅 파고들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위안이었어요. 그날 이후 저도 그분처럼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상대의 안부를 먼저 묻는 한마디가 지쳐 있던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다.


균형을 택한 사람

기자: 개인 병원을 여실 생각은 안 하셨어요?

저는 워커홀릭과는 거리가 먼 편입니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원을 차리면 건물부터 직원들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잖아요. 지금처럼 주어진 시간 안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방식이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택은 야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삶의 리듬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기자: 취미가 있으세요?

하이킹을 좋아합니다. 제 버킷리스트가 미국 내 톱 50 내셔널 파크에서 하이킹하는 건데, 지금까지 절반 정도는 이뤘습니다. 가족들과 대자연 속에서 함께 걸을 때 가족의 소중함도 더 많이 느끼고 제가 걸어온 인생도 돌아보게 됩니다.

2023 아들과 함께 Grand Teton National Park에서
(Photo courtesy of Dr. Byol Shin)

기자: 의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까요?

아마 여행 가이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여행 플래닝 하는 걸 참 좋아하고 잘하기도 해요. 제 아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가 짜 준 여행 플랜이 꽤 인기가 있습니다.


환자 100명도 거뜬하죠

기자: 의사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의료선교 가서 환자들을 만날 때입니다. 매년 온두라스나 쿠바 같은 중남미로 의료선교를 가는데, 거기서는 의료 차트나 보험 같은 서류를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하루에 80명에서 100명 정도를 보는데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그 시간이 의사로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보람됩니다.

2015년 과테말라 의료 선교 현장 (Photo courtesy of Dr. Byol Shin)

AI가 못 하는 마지막 일

기자: 의사를 꿈꾸는 한인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요?

요즘은 의학 정보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지식적인 진단은 AI가 대체하기 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눈을 맞추고, 상태를 직접 살피며, 마음으로 공감하는 ‘휴머니즘’은 기계가 절대 할 수 없는 영역이죠. 우리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의료선교 같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지식만 외우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의사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면역의 세계를 다루는 의사.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의 진료실에서 치료는 청진기보다 먼저, 침묵으로 시작된다.

By Eunice Lee

신 별 닥터 (Photo courtesy of Dr. Byol Shin)

신 별 닥터(Dr. Byol Shin) 약력

신 별 닥터는 2008년부터 Gwinnett Clinic 소속 알레르기 전문의로 로렌스빌(패터슨)에서 진료하고 있다.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교를 최우수 성적(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한 뒤, 뉴욕 오스테오패틱 의과대학(New York 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을 수석으로 마쳤다. 이후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예일 뉴헤이븐 병원(Yale New Haven Hospital)에서 내과 인턴십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으며,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알레르기 및 임상 면역학 펠로우십을 이수하는 동안 전국 학술대회(National Meeting) 주요 발표자로 선정되는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내과(Internal Medicine)와 알레르기·면역학(Allergy & Immunology) 두 분야에서 모두 미국 전문의 자격(Board Certification)을 취득했으며, 알레르기성 비염, 부비동 질환, 천식, 습진, 두드러기, 식품 알레르기, 곤충 아나필락시스, 면역 결핍 및 각종 알레르기성 피부 질환 치료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소아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환자를 진료하며, 미국 알레르기 천식 면역학회, 알레르기 천식 면역학 대학, 조지아 알레르기 천식 면역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영어와 한국어 모두 능통하며,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Castle Connolly Top Doctor’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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