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멕시코 몬테레이.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에서 짐을 쌌다.
1승 2패. 조 3위. 유럽 빅클럽 선수를 여럿 데리고도 넘지 못한 벽이었다.
조별리그 시작 전, 한 노(老) 축구인이 카메라 앞에 섰다. 목이 메인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차범근.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발밑에 두었던 사나이.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유럽을 놀라게 한 최초의 아시아 스타. 그리고 지금은, 후배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원로다.
그의 74년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들을 따라가 봤다. 반세기 전 낡은 운동화 한 켤레로 시작된 도전부터,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경기를 앞두고 흘린 눈물까지.
이번 편은 SBS [브라질2014특집다큐] ‘레전드 차범근을 기억하는 수많은 독일 시민들’과 JTBC ‘차박로드’에 담긴 차범근의 실제 발언과 일화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대목을 골라 새로 풀어냈다.
낯선 땅, 홀로 선 스물여섯
1978년, 26세의 차범근은 낡은 운동화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독일 땅을 밟았다. 연고도, 언어도, 아무것도 없었다. 유럽 무대에 도전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데뷔 전부터 골을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갈색 폭격기, 차붐(Cha Boom)’이라 불렀다. 10년간 98골.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 대회에서 두 번이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시절 그의 기록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거친 몸싸움이 일상인 분데스리가에서 10시즌, 308경기를 뛰는 동안 그가 받은 옐로카드는 단 한 장이었다. 98골 중 페널티킥은 단 한 골도 없었다. 전부 필드에서, 정면으로 뚫어낸 골이었다.
실력으로 증명하되, 반칙으로 앞서지 않는 사람. 그것이 유럽이 먼저 알아본 차범근이었다.

“허벅지밖에 안 보였다”
질문자: 프랑크푸르트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면요?
차범근: 1980년 5월입니다. UEFA컵* 우승을 했을 때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가 우승해서 모두가 열광했고, 광장 아래는 온통 사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컵을 들어올리니까 사람들이 ‘차붐, 차붐’ 하고 연호를 하더군요. 그때는 그게 원래 이런 건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했을 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았습니다. 그 시절이 프랑크푸르트의 전성기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제 허벅지 근육이 참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마테우스가 저를 처음 봤을 때 허벅지만 보였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많이 작아졌지만, 그래도 한때 그런 몸을 가졌었다는 건 참 좋은 기억입니다.
*UEFA컵: 지금의 UEFA 유로파리그 전신으로, 당시 유럽 챔피언스컵 다음으로 권위 있던 클럽대항전이다.

인터넷 없이 새겨진 이름
그 시절엔 지금 같은 인터넷, SNS가 없었다. 경기 하이라이트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지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순식간에 독일 전역이 아는 얼굴이 됐다. 지역 방송국은 물론 독일 주요 방송사들이 그를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잇달아 편성했고, 심지어 다른 나라 방송사까지 그를 취재하러 왔다. 동양인 선수를 좀처럼 보기 힘들던 1980년대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신문도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는 발행부수 500만 부 돌파 기념행사에, 프랑크푸르트를 연고로 한 선수 중 유일하게 그를 초청했다. 본사가 함부르크에 있는 신문이 프랑크푸르트 선수를 굳이 부른 것이었다. 광고료도 치솟았다. 분데스리가 진출 전 천만 원 남짓이던 광고료가, 활약이 무르익은 뒤에는 국내 최정상급 스타들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까지 올랐다.
지금처럼 클릭 한 번으로 퍼지는 인기가 아니었다. 방송 카메라 앞에 서고, 신문 1면에 실리고, 경기장에서 직접 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가며 차곡차곡 쌓인 이름이었다. 그렇게 10년 만에, 독일 사람들은 한국이 지도의 어디쯤 있는지는 몰라도 ‘차범근의 나라’라는 사실만은 다들 알게 됐다. 온라인 하나 없이, 두 발로 뛴 실력 하나로 한 나라의 이름을 유럽 한복판에 새겨 넣은 것이다.

독일의 우상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는 구단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빛낸 전설 11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차범근은 그중 최고의 공격수로 선정됐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을 찾은 독일 스타 미하엘 발라크는 입국하자마자 그를 자신의 우상이라 부르며 차붐의 나라에 와보고 싶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세월이 흘러 그가 은퇴한 지 한참 뒤인 2008년, 분데스리가 경기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조용히 관중석에 앉아 있었는데, 전광판에 그의 얼굴이 비치자 관중 전체가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고, 경기를 뛰던 선수들조차 영문을 몰라 놀랐다고 한다.
독일 작가 에크하르트 헨샤인은 그를 위해 헌시까지 썼다. 동방에서 온 친구, 제2의 고향을 이 땅에서 찾은 사람이라고.

시장에 나타난 차붐
2014년, 그는 다시 프랑크푸르트 시장을 찾았다. 언어도 서툴고 음식도 낯설던 시절, 이 시장은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은퇴한 지 수십 년이 지난 그를, 상인들과 시민들이 한눈에 알아봤다. 좌판 사이를 지나가는데, 여기저기서 “차붐, 차붐”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뛰쳐나온 상인들 손에는 앞치마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순식간에 시장 한복판이 사인회장으로 변했다.
그 인파 속에, 백발의 노인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다가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선수 중에 차범근이라는 사람이 있다며, 대뜸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다 눈앞의 사람이 바로 그 차범근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노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 훌륭한 선수였다고, 아직도 사랑한다고 했다.

아무도 듣지 않았던 말
그가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그는 몇 가지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경기장 안에서는 형, 선배라는 호칭을 빼자고 했다. 서열이 아니라 실력으로 뛰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기자회견 시간을 정해 언론의 무분별한 개입을 막았다. 비디오 분석관을 포함한 지원 인력의 필요성도 거듭 이야기했다.
당시 축구협회는 예산 낭비라며 대부분 거절했다. 그의 말은 한국 실정을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로 치부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도중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직후, 그는 대회 중간에 경질됐다. 협회와 언론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그는 한동안 한국 축구계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2002년, 거스 히딩크가 왔다. 형, 선배 호칭 없는 평등한 팀 문화. 비디오 분석. 체력 훈련. 차범근이 이미 말했던 것들이, 외국인 감독의 입에서 나오자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그해 한국은 4강에 올랐다.
먼저 본 사람이 반드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예언자 대접을 받지 못한 예언자였다. 그런데도 후배들 앞에서 한 번도 “내가 먼저 말했다”고 나서지 않았다. 대신 매 순간 뒤에서, 조용히 다음 세대를 응원하는 쪽을 택했다.

도쿄대첩, 그리고 지금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숙적 일본과의 원정 경기.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던 그때, 그는 수비수 홍명보에게 공격 가담을 지시했다. 과감한 승부수였다. 결과는 2-1 역전승. 국민들은 그 경기를 ‘도쿄대첩’이라 부르며 환호했다.
그날 그라운드를 지휘봉 삼아 뛰어다니던 후배가 2024년 또다시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다. 그리고 2026년,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7년 전 역전골의 주인공이 온 국민의 표적이 됐다.
차범근이 이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남긴 말은 없다. 경질의 아픔을 알아서일까. 차 감독의 급작스러운 경질 당시부터 수십 년이 지나도록 유일하게 그에게 연락하지 않은 선수가 홍명보로 알려져 있다.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질문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향한 걱정과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차범근: 역대 어느 감독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저희 때는 국민들의 응원과 성원 속에서 월드컵을 준비했고, 그 힘으로 뛰었습니다. 지금 같은 분위기는 저도 처음 봅니다.
저 역시 월드컵에 뼈아픈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축구인으로서.
선수들의 실력만 놓고 보면 8강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축구는 실력이 있다고 반드시 그 길로 가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지금 대표팀이 안고 있는 문제, 저도 압니다.
팬 여러분,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건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축구인들의 잘못입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건 다 내려놓고, 부디 우리 대표팀을 응원해 주십시오.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사기를 높여 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평생 유럽 무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울먹였다. “우리의 잘못”이라고 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고개를 숙이는 것.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다시, 레전드
한 세대 전, 차범근은 낡은 운동화를 신고 아무도 모르는 땅에 홀로 던져졌다. 그리고 실력 하나로, 반칙 없이, 그 땅의 사람들 마음을 얻었다.
한 세대 후, 그는 후배들이 만든 결과 앞에서 대신 눈물을 흘렸다. 이 두 장면 사이에 그의 축구 인생이 있다. 증명해야 했던 사람에서 지켜주는 사람으로. 실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청년에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끌어안는 어른으로.
독일 사람들이 반세기 가까이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가 남긴 것은 골 기록이 아니라 축구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InnerView. No.23 2026년 7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