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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될 수 있었던 남자

전투보다 혹독했던 언덕

1777년 12월 19일, 펜실베이니아 밸리 포지(Valley Forge). 사방에서 매서운 눈발이 날렸다.

1만 2천 명의 대륙군이 언덕길을 올랐다. 신발이 없는 병사가 셋 중 하나였다. 발을 헝겊으로 감고 걸은 사람들이 남긴 핏자국이 눈 위에 찍혔다. 조지 워싱턴은 훗날 이렇게 적었다. “붉은 발자국으로 이 군대의 행군로를 추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병력은 도착 즉시 도끼를 들었다. 오두막을 직접 지어 추위를 피하려 했다. 병사들은 밀가루에 물만 부어 구운 빵으로 간신히 버텨냈다. 신발, 옷, 담요, 음식, 약품 모두 부족했다.

그해 겨울, 이 언덕에서 2천 명이 죽었다. 총알이 아니라 발진티푸스와 이질, 폐렴이었다. 전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병사들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시간을 열여덟 달 되돌려 보자.

Photo: George Washington at Valley Forge. Source: Wikipedia.

함께 매달리거나, 각자 매달리거나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주 의사당. 56명의 대표가 한 장의 문서에 차례로 서명했다. 종이에 이름을 적는 일이었지만, 실제로는 사형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영국 왕에게 반기를 든 대가는 교수형이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서명을 마친 이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함께 뭉쳐 매달리지 않으면, 각자 따로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좌중에서 낮은 웃음이 터졌다. 농담 같았지만, 훗날 서명자 상당수가 실제로 재산을 몰수당했고, 집이 불탔고, 가족이 포로로 잡혔다.

그날 의사당 앞뜰에서는 종이 울렸다. ‘자유의 종’이라 불리게 된 그 종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온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Photo: The 1823 facsimile of the original Declaration of Independence. Source: Wikipedia.

스물세 살의 마지막 말

두 달 뒤인 9월, 뉴욕. 워싱턴 휘하의 스파이 한 명이 영국군에 붙잡혔다. 코네티컷 출신 교사였던 네이선 헤일, 스물세 살이었다.

재판 없이 다음 날 아침 처형이 집행됐다. 형장에서 그가 남긴 말은 훗날 미국 교과서에 거듭 실린다.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해 가을, 워싱턴의 군대는 뉴욕에서 잇달아 패배하며 강 건너로 밀려나고 있었다.

결국 1년 3개월 뒤, 워싱턴은 장차 자신의 리더십을 시험하게 될 언덕으로 군대를 이끌고 갔다. 필라델피아의 영국군을 감시할 만큼 가깝고, 기습당하지 않을 만큼 먼 언덕. 바로 밸리 포지였다.

Photo: Washington and Lafayette at Valley Forge. Painting by Dunsmore. Source: Library of Congress.

답장 없는 편지

거기서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영국군이 필라델피아를 점령하자, 대륙회의*는 요크라는 작은 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의원들은 벽난로가 있는 여관방에 모여 있었다.

워싱턴의 편지가 그 방에 도착했다. “지금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 군대는 굶어 죽거나 병들거나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답장은 없었다.

병사들의 담요는 부족했고, 부상병 일부는 입을 옷이 없어 그대로 죽었다. 이듬해 2월, 워싱턴의 아내 마사가 도착했다. 그녀는 장교 부인들을 모아 앉혀 양말을 짜고 옷을 기웠다.

그런 와중에도 워싱턴은 인근 농가와 건물을 강제로 빼앗지 않았다. 집주인들에게 임대료를 치르고 병영으로 빌려 썼다. 군대가 굶주릴수록 원칙은 오히려 더 지켜졌다.

그 겨울, 일부 장교들이 워싱턴을 끌어내리고 새 총사령관을 세우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륙회의 몇몇 의원들도 그의 지휘력을 공공연히 의심하기 시작했다. 훗날 ‘콘웨이 음모’라 불리는 이 움직임은 조용히 흩어졌다. 굶주린 병사들이, 자신들과 함께 굶는 사령관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 구성한 입법 기구로, 오늘날 미국 의회의 전신이다.

Photo: The Washington Family. Source: Wikipedia.
Note: George Washington had no biological children. This well-known painting depicts the Washington household, including Martha Washington, her children from a previous marriage, and other family members, which is why it is commonly titled The Washington Family.

말이 통하지 않던 장군

1778년 2월 23일, 낯선 남자가 진지에 도착했다. 프로이센 장교 출신 프리드리히 폰 슈토이벤. 영어는 한마디도 못 했다.

상관없었다. 밤이면 프랑스어로 훈련 교범을 썼다. 부관이 등불 아래서 영어로 옮겼다. 다음 날 아침, 그 종이 그대로 병사들 손에 쥐여졌다. 슈토이벤은 직접 소총을 들고 대열 한가운데 섰다. 자세가 틀리면 영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뒤섞어 소리쳤다. 그마저 통하지 않으면 부관을 불러 욕설만 정확히 번역시켰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의 고함이 진지를 채웠다. 한 장교는 이렇게 적었다. “그의 명령에는 묘한 위엄이 있어서 병사들을 순순히 복종시켰다.” 5월 6일, 프랑스 참전 소식이 전해진 날 열병식이 열렸다. 여섯 달 전 맨발로 언덕을 오르던 병사들이 총검을 맞추며 대열을 바꿨다. 축포가 연달아 터졌다. 밸리 포지에 들어올 때는 오합지졸 민병대였으나 나갈 때는 진짜 군대가 되었다.

Photo: Baron Friedrich von Steuben training the Continental Army at Valley Forge during the winter of 1777–1778.
Source: Wikipedia.

총알을 재지 않은 밤

1778년 6월, 밸리 포지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륙군은 뉴저지 몬머스에서 영국군과 맞붙었다. 전투 초반 지휘 혼선으로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대로 흩어졌을 상황이었다. 병사들은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다시 대열을 갖췄고, 영국군의 총검 돌격을 되레 총검으로 맞받아쳤다.

3년 뒤인 1781년 10월, 버지니아 요크타운. 알렉산더 해밀턴이 이끄는 경보병 부대가 영국군 요새를 향해 어둠 속을 걸었다. 총에 총알을 재지 않았다. 밸리 포지에서 몸에 익힌 총검술만으로 기습을 감행했다. 요새는 무너졌고, 10월 19일 영국군 최고 사령관 찰스 콘월리스가 8천 명의 병력과 함께 항복했다. 전쟁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였다.


안경을 꺼낸 순간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783년 3월 15일, 뉴욕주 뉴버그의 한 막사. 급료를 받지 못한 장교들이 모였다. 일부는 워싱턴을 앞세워 의회를 압박하거나, 아예 군을 동원해 정부를 뒤엎자는 격문을 돌리고 있었다.

예고 없이 워싱턴이 들어섰다. 장교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준비한 연설문을 꺼냈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듯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안경을 꺼내 썼다. “여러분,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사이 머리가 세었고, 이제는 눈까지 어두워졌습니다.”

그 한 줄에 강경했던 장교들 사이에서 눈물이 터졌다. 반란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9개월 뒤, 12월 23일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워싱턴은 의회 앞에 나가 자신의 군 통수권을 반납했다.

영국의 조지 3세는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벤저민 웨스트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그렇게 할까?” 웨스트가 그렇다고 답하자,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Photo: General George Washington Resigning His Commission, depicting the Continental Army commander resigning his commission in Annapolis, Maryland, on December 23, 1783. Painting by John Trumbull.

만장일치, 그리고 유산

1789년 4월, 워싱턴은 선거인단 69명 전원의 표를 받아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첫 취임식은 당시 수도였던 뉴욕의 페더럴 홀 발코니에서 열렸다. 워싱턴은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했고, 군중은 환호했다. 선서를 마친 그는 성경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So help me God.”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

1796년, 그는 세 번째 임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물러났다. 그가 남긴 두 번의 임기라는 전례는 훗날 미국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는 헌법 조항의 근간이 됐다. 고별 연설에서 그는 당파 싸움과 해외 개입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이 연설은 지금도 매년 2월, 미국 상원 의사당에서 낭독된다.

Photo: An oil painting depicting George Washington’s inauguration as the firs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n April 30, 1789. Source: Wikipedia.

250번째 여름

올해가 밝기도 전부터 미국은 갈라져 있었다. 3월 28일, 이민 단속과 전쟁, 치솟는 생활비에 항의하는 ‘노 킹스’ 집회가 전국 3,300여 곳에서 동시에 열렸다. 8백만 명 넘는 사람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 역사상 하루 동안 열린 시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7월 4일, 워싱턴 D.C. 내셔널 몰. 화씨 102도, 1919년 이후 가장 더운 독립기념일이었다. 도시 반대편에서는 흰 마스크를 쓴 약 700명이 남부연합기와 거꾸로 든 성조기를 들고 행진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패트리엇 프론트였다.

같은 날, 249년 전 병사들이 맨발로 걸었던 그 언덕. 밸리 포지에서는 재연 배우와 주민들이 독립선언서를 세 차례 낭독했다. 낭독을 지켜본 한 방문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시국을 생각하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동시에 이 나라 시민이라는 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날 ‘프리덤 250’ 행사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쇼와 불꽃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로 기획됐다. 그러나 행사 직전 강력한 폭풍우와 뇌우가 몰아치면서 두 시간 넘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일부는 떠났고, 남은 군중은 밤이 되어서야 다시 모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무대에 오른 대통령은 헌법이 금지한 3선 이야기를 농담 삼아 꺼냈다.

President Donald J. Trump and First Lady Melania Trump attend the Salute to America 4th of July celebrations for America’s 250th anniversary, Saturday, July 4, 2026, on the National Mall in Washington, D.C.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Andrea Hanks)

가장 위대한 결정

1799년 12월 14일, 마운트버넌. 워싱턴은 숨을 거뒀다. 향년 67세. 장례식에서 헨리 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서도 으뜸, 평화에서도 으뜸, 국민의 마음속에서도 으뜸이었던 사람.”

Photo: George Washington. Source: Wikipedia.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간은 8년이었다. 왕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보다 길었다.

*헨리 리는 독립전쟁 당시 기병대를 이끈 대륙군 장교로, 워싱턴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의 아들이 훗날 남북전쟁 남부군을 이끈 로버트 E. 리 장군이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23 2026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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