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부부 공동 사업, 원치 않은 결말
그날 아침
2025년 봄,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호텔.
한의원을 함께 운영하는 한인 부부가 환자 치료차 출장을 와서 하룻밤을 묵었다. 평범한 출장이었다. 전날까지 남편 B씨는 환자를 진료했고, 저녁에는 아내 A씨와 함께 호텔에 체크인했다.
다음 날 아침, A씨가 눈을 떴을 때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처음에는 편의점에라도 간 줄 알았다. 그러나 B씨의 여행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소지품 일부도 함께 사라졌다. A씨의 핸드폰도, 두 사람이 키우던 고양이도. 침대 위에도, 욕실 거울에도, 호텔 메모지 위에도 한 줄의 메모조차 없었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잔 사람이 아침에 흔적 없이 증발한 것이다.

A씨는 호텔 프런트에서 전화를 빌려 남편에게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다. 그 사이 노스캐롤라이나를 포함해 흩어져 있는 세 곳의 한의원은 시술자 없이 문을 열 수 없었다. 예약된 환자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그 순간까지 A씨는 남편에게서 직접 단 한마디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두 사람의 시작
아내 A씨는 1970년대 후반생 영주권자로, 미국에서 건축학과 건설경영학을 공부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건설업을 하던 어머니를 돕고 있었다. 남편 B씨는 1980년대 중반생,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 두 주의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2020년 가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한인 커뮤니티 앱을 통해 만났다. 이듬해 8월, 버지니아주의 한 법원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양가 부모는 여섯 살 차이의 연상연하 결혼을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에서 함께 뿌리내리겠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유지된 기간은 3년 남짓이었다.
명의는 아내, 면허는 남편
B씨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영주권자였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거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한의학 학위는 있었지만, 그 학위를 걸고 자기 이름으로 클리닉을 열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A씨 앞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A씨는 B씨의 영주권을 위해 가족초청 이민 청원(I-130)을 신청해 두었다.
2022년 말부터 약 1년 반에 걸쳐 세 곳의 한의원이 문을 열었다. 임대차 계약서의 서명란에는 A씨의 이름이 적혔다. 장비 구매 영수증도, 카드 결제 내역도, 사업자 등록 서류도 모두 A씨 명의였다.

A씨가 인테리어 설계와 공사를 직접 주도했다. 벽을 세우고, 시술실을 나누고, 대기 공간을 배치했다. B씨와 함께 직접 손으로 공사했다. 클리닉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역할은 뚜렷하게 나뉘었다. A씨는 행정, 환자 관리, 회계. B씨는 침술 시술. 부부이자 동업자였다. 서면 파트너십 약정 같은 것은 없었다. 부부 사이에 그런 서류가 왜 필요한가. 그렇게 생각했다.
세 곳 모두 처음에는 적자였다. 그러나 천천히 환자가 늘었고, A씨에 따르면 흑자 전환에 성공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A씨는 한 가지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클리닉의 실질적 운영자는 B씨였지만, 법적 책임의 전부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묻혀 있던 균열
돌이켜보면 불화의 씨앗은 일찍부터 묻혀 있었다. 2023년 4월, A씨의 가족초청 청원(I-130)이 승인됐다. 다음 단계인 I-601A 사면 신청을 거쳐 서울 미 대사관 인터뷰만 통과하면 B씨도 영주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A씨에 따르면 B씨는 서류 준비를 미루다 끝내 이민국에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로 영주권의 길을 닫은 셈이었다.
같은 무렵, A씨의 주장에 따르면 B씨는 캘리포니아 등 타주를 오가며 최소 네 차례 성매매를 했다. A씨가 한국을 방문한 틈에 벌어진 일이었다. A씨는 B씨가 포주와 수차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사진 등을 포함해 B씨가 결혼 전후로 지속적인 성매매를 해왔다고 자백한 녹취록도 확보했다.
드러난 균열
곪아 있던 것들이 표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4년 가을이었다. 시아버지 C씨가 미국을 방문해 아들에게 이혼을 종용했다는 것이 A씨 측 주장이다. 손주를 보지 못하는 며느리 대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B씨도 조건 없는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A씨는 남편의 핸드폰에서 다른 여성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A씨가 나중에야 비로소 연결시킨 사실이 있다. 2021년 교제 당시 산부인과 검진에서 확인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이었다. 당시 A씨가 이를 알리자 B씨는 공중 화장실 등에서 감염된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A씨는 이후 자신의 감염이 B씨의 반복된 성매매로 인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고, 이 내용은 한국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에도 포함됐다.

여기서부터는 양측의 이야기가 갈린다. A씨는 한국 경찰에 B씨와 시아버지를 성매매 알선, 상해, 유기, 재물손괴, 위치정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2025년 9월, 송파경찰서는 핸드폰 절취 및 파손에 따른 재물손괴죄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내렸을 뿐, 성매매·상해·유기 교사 등 핵심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본보가 B씨에게 사실 여부 확인과 반론을 요청하자, B씨는 서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답해 왔다.
자신의 한국 귀국은 “장기간 누적된 부부 갈등과 건강상 위기, 생활상 사정 등이 종합된 결정”이었으며, 이를 “사전 통보 없는 일방적 출국”으로만 단정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한의원 운영에 대해서도 “각자의 역할, 수익 귀속 구조, 의사결정 과정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배우자가 일방적 피해자이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은 사실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혼인 기간 중 성매수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며, 확인되지 않은 사적 의혹”이라고 분명히 부인했다. 혼인신고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감정적 대응이 아닌 법률 절차를 통해 정리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쪽의 진술만으로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의 전모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누가 먼저 마음을 닫았는지, 누가 어떤 약속을 깼는지, 그 책임의 무게는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이 모든 것은 두 사람만이 아는 영역이다. 부부의 일은, 결국 부부의 것이다.
사라진 사람, 남겨진 청구서
그러나 부부의 영역을 벗어나 명백히 남은 것이 있다. 숫자다.
B씨가 떠난 뒤 A씨 앞에 남은 목록은 길었다. 클리닉 세 곳의 임대 계약. 해지하면 위약금이 발생하고, 해지하지 않으면 매달 임대료가 빠져나간다. 시술 장비 리스 할부금. 세 곳의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간 비용. 사업 운영 과정에서 쌓인 카드 결제 대금. 모두 A씨 명의였고, 모두 A씨의 신용 기록에 직결되는 채무였다.

가장 곤란한 건 환자였다. 한인 한의원 업계에서는 패키지 선불 판매가 일반적이다. 10회 치료권, 20회 치료권. 환자들은 할인을 받는 대신 치료비를 미리 낸다. 그런데 시술자가 사라졌다. A씨는 한의사가 아니다. 시술을 이어갈 자격이 없다. 환불 요구는 쏟아지는데, 환불 재원은 없다.
A씨가 추산하는 총 피해 규모는 약 20만 달러, 한화로 약 3억 원. 임대료와 인테리어, 장비, 이사 비용, 항공료, 체류비를 합산한 금액이다. 여기에 매달 최소 1만 달러의 고정 지출이 지금도 흘러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신용 점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다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신분증이다. A씨의 미국 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부, 한국에서는 미혼
A씨의 사례에는 경제적 피해 너머에 또 하나의 사각지대가 숨어 있었다. 혼인신고의 이중성이다.
두 사람은 미국 법원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미국법상 유효한 부부다. 그러나 한국 영사관에는 혼인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한국 국적자가 해외에서 결혼하면 그 혼인은 현지 법률에 따라 유효하게 성립하지만, 한국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자동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당사자가 직접 영사관을 통해 별도 신고 절차를 밟아야만 한국 기록에도 ‘기혼’으로 등재된다.
B씨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한국 가족관계등록부상 그는 ‘미혼’이다. 이론적으로 B씨는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다른 사람과 새로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물론 미국법상 유효한 혼인이 존속하는 상태에서의 중혼은 미국법상 범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당국이 미국의 혼인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고하지 않으면, 한국 시스템 안에서는 없는 혼인이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큰 위험
한인 이민 사회에서 부부 공동 사업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식당, 세탁소, 네일살롱, 한의원, 치과, 보험 에이전시. 한쪽이 면허나 자격을 갖고, 다른 쪽이 행정과 운영을 맡는 구조. 이 모델은 효율적이다. 인건비를 아끼고, 의사결정이 빠르고, 무엇보다 ‘가족이니까’ 서로를 믿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구조에 법적 안전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부부 사이에 파트너십 약정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업 이탈 시 정산 절차, 명의 변경 조건, 부채 분담 비율을 미리 정해 두는 부부는 더 드물다. 한국 문화에서 부부에게 그런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히기 쉽다. 여기에 한쪽이 비영주권자라는 변수가 겹치면 구조는 한층 취약해진다. 면허는 한쪽에, 명의는 다른 쪽에. 사업이 잘 돌 때 이 분리는 단순한 행정적 편의에 불과하지만, 관계가 파탄에 이르면 양날의 칼이 된다.

사랑하는 지금, 서류를 꺼내라
이민법 전문가들의 조언은 한결같다. 부부 사이에서도 사업은 사업이다. 서면 약정을 작성하라. 각자의 재정적 책임 한도를 명확히 하라. 사업 이탈 시 정산 절차를 미리 정하라. 그러나 현실에서 이 조언을 따르는 부부는 많지 않다. 사랑하니까. 가족이니까.
하지만 그 ‘사랑하니까’가 깨졌을 때, 남는 것은 서류 없는 빈손이다.
미국에서 결혼한 한인 이민자가 지금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국 영사관에 혼인신고를 했는가. 부부 공동 사업의 명의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파트너십 약정서가 있는가. 배우자의 이민 서류는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사업 이탈 시의 정산 조항이 어디엔가 적혀 있는가. 이 질문들 중 하나라도 답이 ‘아니오’이거나 ‘모른다’라면, 지금이 서류를 만들 때다. 사랑이 식은 뒤가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지금이.
Now / What’s Next
A씨는 현재 미국에 남아 이혼 소송과 경제적 피해 보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변호사 비용은 쌓이고, 클리닉 임대료는 매달 빠져나간다.
한국에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결혼. 한쪽은 영주권자이고 한쪽은 아닌 신분 격차. 명의가 한쪽으로 쏠리는 공동 비즈니스. 약정서 없는 동업. 이 네 가지 조건이 겹친 자리에서 관계가 깨지면,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한쪽의 일방적인 파산으로 흘러간다.
A씨의 이야기를 굳이 지면에 옮긴 이유는 한 사람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같은 조건 위에 서 있는 수많은 한인 부부들이 자기 발밑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이러는 거 아니야’ 하며 미뤄둔 종이 몇 장이, 끝내 서로를 베는 칼이 되지 않도록.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7 2026년 5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