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헝가리 총리 페테르 머저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우리나라에는 통합이 필요합니다. 평화가 필요합니다. 모든 헝가리인이 자랑스러워할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그가 지목한 이름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체스판을 떠난 지 12년 된 은퇴한 여자 그랜드마스터였다.
유디트 폴가르. 올해 마흔아홉. 헝가리 역사상 가장 강했던 체스 기사이자, 지금도 남자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어본 유일한 여성이다.
머저르는 그녀를 직접 만나 물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서 줄 수 있겠느냐고.

이번 이너뷰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오브 체스(The Queen of Chess)’와 아버지 라슬로 폴가르가 남긴 기록, 수십 년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체스를 두던 한 소녀가 대통령직을 요청받기까지, 모든 편견을 깨고 묵묵히 걸어온 장면들을 따라가 봤다.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1960년대 후반 헝가리. 교육학자 라슬로 폴가르는 세상을 향해 도발적인 주장을 던졌다.
“천재는 유전이 아니다. 교육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증명하기로 했다.
심지어 아이를 낳기도 전에, 자신의 이론을 시험할 계획부터 세웠다. 문제는 그 계획에 동의해 줄 여자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클라라라는 여교사에게 편지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 사람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훗날 회상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만나 보기로 했다. 둘은 결혼해 세 딸을 낳았다.
두 사람은 아이들의 성과를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분야를 원했다. 수학도, 음악도, 외국어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고른 건 체스였다. 이기고 지는 데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 아버지를 이기다
부다페스트의 작은 아파트는 수천 권의 체스책으로 가득했다. 세 딸, 수잔·소피아·유디트는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받았다. 체스 연구소이자 도서관 같은 방에서 수학과 여러 외국어도 함께 배웠다.
동네에서는 “아이들의 유년기를 빼앗는 짓”이라며 부모를 손가락질했다.
유디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불행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행복했어요.”
유디트는 네 살 무렵부터 언니들 옆에서 어깨너머로 체스를 배웠다. 공부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살 유디트가 아버지를 이겼다. 라슬로가 봐준 게 아니라 진심으로 뒀다가 졌다.
그는 딸을 안아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다.’
“천재인지 그냥 여자인지 보자”
1988년 11월, 테살로니키. 제28회 체스 올림피아드.
당시 여자 체스는 소련의 것이었다. 소련 여자팀은 올림피아드가 열릴 때마다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소련 여자팀 코치이자 그랜드마스터였던 에두아르트 구펠드가 폴가르 자매를 향해 이렇게 잘라 말했다.
“이 소녀들은 곧 얻은 명성 대부분을 잃게 될 거에요. 그때가 되면 알게 되겠죠. 헝가리 자매들이 천재인지, 아니면 그냥 여자인지.”
세 자매는 헝가리 대표로 나섰다. 결과는 헝가리의 우승. 소련이 올림피아드에서 우승을 놓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유디트는 2보드에서 대회 최고 성적을 내며 개인 금메달까지 따냈다.
구펠드의 장담은 정확히 반대로 뒤집혔다.

“여자 대회는 가지 않을래요”
10대 시절부터 유디트는 세계 체스계가 이상하게 여기는 선택을 했다.
당시 여성 선수 대부분은 여성 세계선수권, 여성 전용 국제대회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유디트는 여성부 출전을 거의 포기했다.
상금 때문도, 자존심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여자 선수와 경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한 사람들과 둬야 가장 많이 성장한다고 믿어요.”
그녀는 남녀 구분 없는 전체 랭킹만 목표로 삼았다. 당시에는 거의 혁명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최고의 여자 체스 선수인가요?”
유디트의 답은 이랬다.
“나는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카르포프, 스파스키, 크람니크 같은 세계 최강자들과 계속 맞붙었다. 훗날 세계 챔피언이 되는 매그너스 칼센까지, 세계 챔피언 11명을 꺾었다.
전설이 인정한 천재
1991년, 유디트는 15세 4개월의 나이로 그랜드마스터 타이틀을 땄다.
이전까지 이 기록의 주인은 바비 피셔였다. 냉전 시절 소련의 체스 제국을 홀로 무너뜨렸던 전설, 그 이름 석 자가 가진 최연소 기록을 열다섯 살 소녀가 갈아치운 것이다.
몇 년 뒤, 그 피셔가 실제로 헝가리 땅을 밟았다. 은둔 생활을 하던 그가 폴가르 가족과 여러 날을 함께 보내며 체스를 뒀다는 사실은 체스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가 됐다.
피셔는 좀처럼 다른 기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디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진짜 체스 선수다.”
‘여자치고’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손 떼기’ 논란
1994년 리나레스 대회. 상대는 세계 최강 가리 카스파로프였다.
경기 중 그가 나이트를 한 칸에 놓았다가, 손을 뗀 뒤 다른 칸으로 옮겼다. 손을 뗀 순간 수는 확정된다는 터치 무브 규칙대로라면 반칙이었다. 훗날 대회 관계자들은 그 장면을 담은 영상이 있다고 밝혔지만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카스파로프가 승리했다. 유디트는 경기 후 불평하는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나는 심판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녀의 침착함은 오히려 많은 팬들의 존경을 받았다.

가장 통쾌한 복수
8년 뒤 200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대 세계 연합팀 경기.
유디트는 다시 카스파로프를 만났다. 이번에는 누구도 논란을 제기할 수 없었다. 중반부터 주도권을 잡은 유디트에게 카스파로프는 끝내 항복했다. 공식 경기에서 카스파로프가 여성에게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기 후 카스파로프는 패배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그녀가 더 잘 두었다.”
2004년, 그녀는 세계 랭킹 8위에 올랐다. 이듬해엔 세계 최정상급 기사만 진입하는 실력 구간에 여성 최초로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도 그 벽을 넘은 여성은 그녀뿐이다.

출처: 로사 데 라스 니에베스(Rosa de las Nieves) / 넷플릭스 제공
체스 전설의 2막
정점에 오른 뒤, 유디트는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많은 선수들이 “세계 랭킹을 유지해야 한다”며 출산을 미루던 시절, 유디트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 대회를 포기했다.
“체스는 내 삶의 일부지만, 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녀의 철학이었다.

2014년, 유디트는 은퇴를 선언했다. 26년간 지켜온 여자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정점에서 내려놓았다. 그러나 체스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헝가리 남자 국가대표팀의 헤드코치를 맡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세워 아이들에게 체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체스는 사고력을 키우는 최고의 교육 도구예요.”
그녀는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한 수
2026년 7월, 헝가리 정치 지형이 통째로 흔들렸다.
4월 총선에서 페테르 머저르가 이끄는 티서당이 오랜 집권 여당을 꺾었다. 취임 두 달 만에, 머저르 정부는 헌법을 개정해 기존 대통령을 강제 해임했다.
빈자리가 생겼다. 헝가리는 의원내각제 국가라서 대통령은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상징적 직위이고, 실제 국정 운영은 총리가 맡는다. 새 정부는 유디트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봤다.
교육 실험으로 시작된 한 소녀가 세계 최강 기사들을 넘어서며 국민 영웅이 되었고, 이제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될 기로에 섰다.
답은 하루 만에 나왔다. 월요일 밤, 유디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역사적 책임을 감당할 힘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평생 남이 깔아 준 판을 거부해 온 사람은, 이번에도 자기 판이 아닌 곳에 앉기를 거절했다. 체스에서 가장 어려운 수는 두는 수가 아니라, 두지 않기로 하는 수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어쩌면 그녀가 예순네 칸 위에서 배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InnerView. No.25 2026년 7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