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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진주만’을 꺼냈나

서프라이즈

3월 19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

일본 기자가 왜 이란 공습 전 일본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냐고 묻자, 트럼프가 답했다. 

“…Because we wanted a surprise. Who knows better about surprise than Japan? Why didn’t you tell me about Pearl Harbor?”

“기습을 원했으니까요. 기습에 대해 일본보다 잘 아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진주만에 대해 왜 저한테 미리 말 안 해 줬어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는 눈을 크게 뜨고 질문한 기자 쪽을 바라봤다. 회담의 공기는 그 순간 바뀌었다. 다카이치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갔다. 

트럼프는 왜 ‘진주만’을 꺼냈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Photo: The White House)

미국이 가장 치욕스러운 날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해군은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 공격했다. 항공모함 6척에서 출격한 353대의 전투기가 미군 태평양 함대를 타깃으로 2차례 공습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미군 2,4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전함 8척이 파손됐으며 그중 4척이 침몰했다. 항공기 약 180대도 파괴됐다. 특히 전함 USS Arizona의 폭발은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불타고 있는 전함 애리조나호(Photo:NAID: 520601)

다음 날, 프랭클린 D.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치욕의 날”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일본은 왜 미국을 기습했나

충동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석유였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미국은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에너지가 끊기면 전쟁 기계가 멈춘다. 일본은 동남아 자원을 직접 손에 넣기로 했고, 그 길목을 막고 있는 미국 태평양 함대를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의 계산은 틀렸다. 공격 당시 미국 항공모함은 항구에 없었고, 연료 시설도 살아남았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협상 대신 총력전을 선택했다. 

1942년 미드웨이에서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단기 충격으로 끝내려던 도박은 4년짜리 재앙이 됐다.

그로부터 84년이 지나 오벌오피스에서 두 나라의 정상이 다시 마주 앉았다. 의제는 또다시 석유였다. 이번엔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고, 미국은 일본에게 함께 싸우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일본이 살아남는 법

다카이치는 오벌오피스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트럼프는 중동 전쟁에서 동맹국들이 충분히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거듭 불만을 쏟아내던 참이었다. 유럽 동맹국들은 이미 된서리를 맞은 뒤였다. 다카이치에게는 전략이 필요했다.

백악관 공식 계정 스크린 캡처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손을 내미는 트럼프에게 그녀는 와락 안겼다. 악수 대신 포옹이었다. 회담장에서는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도널드”라며 직함 대신 이름을 불렀다. 저녁 만찬에서는 트럼프의 외모를 칭찬했고, 막내아들 배런의 생일 축하도 잊지 않았다. 진주만 농담이 터졌을 때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닫았다. 

트럼프도 화답했다. 다카이치를 “매우 인기 있고 강한 여성”이라 부르며 일본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거부한 유럽 동맹국들에게 날을 세웠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였다.

(Photo: The White House)

금기어

전후 미국 대통령들은 동맹 관계를 고려해 진주만을 공개 석상에서 직접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고, 그 다음 할 일은 패전국을 동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진주만은 승리의 기념비가 아니라 외교의 비용이 됐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2016년 아베 신조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진주만 추모지를 찾아 미국인 희생자들에게 “진심 어린 영원한 애도”를 바쳤다.두 나라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화해의 언어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USS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트럼프의 이번 발언에 일본 열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다카이치가 잘 버텼다고 했고, 일부는 침묵 자체가 굴욕이라고 했다. 반면 트럼프의 차남은 소셜 미디어에 “역대 최고의 받아치기였다”고 썼다. 


사진으로 말하는 백악관 

이날 백악관은 만찬 사진 14장을 공개했다.

첫 번째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군악대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크게 벌린 다카이치의 모습이었다. 군악대가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의 ‘러스티 네일’을 연주하자 환호하는 장면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백악관 만찬에서 환호하고 있다. (Photo:White House)

일본 여론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맨 처음 올린 사진이 춤추는 다카이치라니, 미국이 일본을 가볍게 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일본의 수치’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졌다. 

백악관이 공개한 영상도 불을 지폈다. 다카이치가 바이든 전 대통령의 초상화 대신 걸린 ‘오토펜’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조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치한 전시물 앞에서, 일본 총리가 함께 웃은 셈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오토펜’ 전시물 앞에서 웃고 있다.
(Photo: The White House)

백악관이 아무 의도 없이 그 장면들을 골랐을까. 외교에 우연은 없다.


야망을 품고 워싱턴으로

1987년 가을, 일본의 한 청년 지도자 연수원에서 스물여섯의 다카이치 사나에는 TV 앞에 얼어붙었다. 화면 속 여성은 콜로라도 출신 하원의원 팻 슈뢰더였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카이치는 눈을 떼지 못했다. 훗날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세련되고, 매력적이고, 너무나 멋진 여성이었어요. 군사 문제를 품위 있고 힘 있게 연설하는 모습에 압도됐습니다.”

팻 슈뢰더(Pat Schroeder, 1940~2023). 콜로라도주에서 선출된 최초의 여성 연방 하원의원 (Photo: wikimedia commons)

몇 달 뒤 슈뢰더가 경선에서 물러나자 다카이치는 전보를 보냈다. “여전히 존경합니다.” 슈뢰더는 워싱턴으로 오라고 답장했다. 부모의 반대를 뚫고,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까지 그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워싱턴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월 1,200달러로 버티며 건물 관리인에게 낡은 담요를 빌려 썼다. 그래도 출근했다.


적국에서 온 스파이

당시 의회 분위기는 차가웠다. 일본이 미국 경제를 추월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팽배했고, 슈뢰더는 그 ‘일본 때리기 캠페인’의 중심 인물이었다. 일부 동료들은 다카이치를 적국에서 온 스파이처럼 대했다.

1988년, 검은색과 흰색 체크무늬 상의를 입은 다카이치 사나에가 스카프를 착용한 패트리샤 슈뢰더 하원의원 및 다른 인턴들과 함께 있다.
(출처: 미국 하원, 버트 램로우 제공)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했다. 전화를 받고, 민원 편지를 쓰고, 법안 초안을 도왔다.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신문을 매일 읽었다. 종이학과 일본 과자, 교육·국방 메모로 뒤덮인 그녀의 책상은 미국 권력의 한복판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전 공보국장 킵 체루테스는 이렇게 기억했다. “스펀지 같았어요. 정치인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누구와 악수를 나누고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빨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가 워싱턴에서 배운 건 정치 기술만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이 한국·중국·일본을 구별하지 못하고 뭉뚱그리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면, 일본의 운명은 피상적인 미국의 여론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워싱턴 인턴 시절
(출처: 미국 하원, 버트 램로우 제공)

워싱턴이 만든 총리

슈뢰더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를 가르쳤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라는 것. 

9개월 뒤 다카이치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1995년 체루테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워싱턴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다카이치가 슈뢰더 의원의 전 보좌관 버트 램로우에게 보낸 카드.
(출처: 버트 램로우 제공)

마거릿 대처를 존경하며 일본의 ‘철의 여인’이 되겠다던 그녀는 마침내 일본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됐다. 그리고 38년 만에 워싱턴을 다시 찾았다. 인턴이 아닌 정상으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

공교롭게도 그녀가 워싱턴에서 정치를 배우던 1987년, 트럼프는 자신만의 교본을 세상에 내놓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1987년 저서 《거래의 기술》

뉴욕 부동산 시장에서 배운 협상의 기술을 담은 책, 《거래의 기술》이다. 핵심은 단순했다.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레버리지다. 레버리지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 아니면 필요로 하는 것,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내가 쥐고 있다는 뜻이다.” 

그 원칙은 오벌오피스로 옮겨 와 외교의 언어가 됐다. 그에게 발언은 반응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는 언제나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판을 바꾸는 것.

상대의 약점, 상대의 기억, 상대가 피하고 싶은 이야기. 그것을 꺼내는 순간 협상은 감정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목표는 설득이 아니다.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카이치 앞에서 진주만을 꺼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일본이 가장 아픈 역사적 상처를 공개된 자리에서 건드려, 호르무즈 파병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압박이었다. 외교 사안을 외교 언어로 다루지 않고 거래 언어로 재코딩하는 것. 그것이 트럼프식 기선 제압의 핵심이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끔은 조금 과격하게 나가는 게 효과적이다.” 


다카이치의 외교의 기술

그녀의 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교본은 아베 신조였다. 2022년 암살된 전 총리는 골프와 햄버거, 그리고 아낌없는 칭찬으로 트럼프와 특별한 관계를 쌓으며 ‘트럼프 통역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카이치는 그 교본을 그대로 펼쳤다. 아베가 썼던 통역관까지 데려왔다. 트럼프는 그를 알아보며 반겼다. “신조와 함께 오래 알고 지낸 훌륭한 통역사군요.”

칭찬, 포옹, 미소, 그리고 인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Photo: The White House)

외교 전문가 실라 스미스는 이렇게 평했다. “다카이치는 이 순간에 뭐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실행했습니다. 며칠 전 트럼프의 태도와 비교하면 일본으로서는 충분한 성과입니다.” 

장면으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청구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트럼프가 일본에 원한 것

트럼프의 요구는 명확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 기뢰를 제거하고 유조선을 호위하는 데 일본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동 리스크를 미국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일본의 대답은 전형적인 일본식 유보였다. 다카이치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트럼프에게 설명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헌법은 여전히 전투성 해상 작전을 제약한다. 즉각적인 파병 약속은 없었다.

대신 일본이 꺼낸 카드는 돈이었다. 테네시와 앨라배마의 소형 원자로 사업에 최대 400억 달러, 펜실베이니아와 텍사스의 가스발전 사업에 최대 330억 달러. 미국산 원유를 일본 내에 비축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워싱턴이 원한 건 군함이었고, 도쿄가 건넨 건 730억 달러였다.


Now / What’s Next

트럼프의 방식은 효과가 있다. 상대를 움찔하게 만들고, 카메라 앞에서 우위를 점하고, 동맹국이 계산서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문제는 반복이다. 《거래의 기술》은 한 명의 상대를 몰아붙이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수십 개의 나라가 각자의 기억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판이다. 같은 수법이 반복될수록 상대는 학습한다. 이번 이란전에서도 미국은 동맹의 미온적 반응, 외교적 고립, 불명확한 전쟁 목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동맹은 공포로 움직일 수 있어도, 신뢰 없이는 오래 가지 않는다.

동맹을 레버리지로 쓰는 순간, 동맹은 천천히 다른 선택지를 찾기 시작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일본 총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The White House)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0 2026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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