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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을 든 소녀의 꿈

저 여자는 누구지?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밤, 워싱턴 D.C. 힐튼 호텔.

백악관 출입기자협회(WHCA)의 연례 만찬이 한창이었다. 턱시도와 이브닝 가운, 샹들리에 불빛, 카메라 플래시. 그리고 단상 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옆자리에 한 아시아계 여성이 앉아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비즈 드레스 차림의 이 여성. 카메라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가 농담을 던지면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었고, 그녀가 무언가 말하면 트럼프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그때 총성이 울렸다.

멜라니아 여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테이블 아래 몸을 숨겼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녀도 바닥에 엎드렸다. 곧바로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이 대통령을 무대 밖으로 끌어냈고, 그녀도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또 함께 피신한 그녀. 대체 누구인가.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이번 이너뷰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된 그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꿈을 잃지 않은 한 여성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따라가 보려 한다.


트럼프 옆에 앉아 웃던 여성

그녀의 이름은 웨이지아 장(Weijia Jiang). CBS 뉴스의 백악관 수석 출입 기자이자, 2025–2026년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회장이다. 유색인종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

그녀가 트럼프 옆에 앉은 것은 친분 때문이 아니었다. WHCA 회장이 주빈석에 앉는 것이 100여 년 된 전통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까지 오는 길은 결코 전통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었다.

2025–2026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회장 웨이지아 장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두 살, 샤먼에서 벅해넌으로

1983년, 중국 푸젠성 샤먼. 한 부부가 두 살배기 딸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지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벅해넌. 인구 5,500명의 작은 산골 마을이다. 세 식구의 이민은 아버지가 그곳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웨이지아 장의 부모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CBS 동료 기자 블라드가 몇 년 전 그녀의 고향을 함께 찾아갔을 때,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기자: “아니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인구 5,500명밖에 안 되는 이곳 벅해넌, 웨스트버지니아에 오게 되신 건가요?”

웨이지아: “(웃음) 저도 자라는 내내 저 자신에게 항상 묻던 질문이랍니다.”


중국집 딸내미

장씨 가족은 그 작은 마을에 식당을 열었다. 벅해넌의 유일한 중국집이었다.

웨이지아의 부모가 운영했던 중국집이 있던 건물 (Photo:CBS 모닝스 스크린샷)

웨이지아: “부모님은 하루에 15시간에서 18시간을 일하셨어요. 그건 정말 뼈 빠지는 노동이었죠(울먹이며). 부모님이 제게 주신 선물은 저의 직업 윤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에 대한 깨달음이었어요.”

어린 그녀는 식당 한쪽 구석에서 숙제를 했다. 친구들이 놀러 오는 곳도 그곳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직접 수천 장의 SAT 단어 카드를 만들었다. 그 카드들은 지금도 부모님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웨이지아: “아버지는 항상 제게 ‘너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넌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거란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는 대학 전액 장학금을 받았죠.”

수천 장의 손글씨 단어장. 매일 18시간을 서서 일한 부모. 백악관 기자단 회장이라는 자리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벅해넌의 그 식당 주방 한구석에서 이미 천천히 빚어지고 있었다.


“네 눈은 너무 작아서 앞이 보이니?”

벅해넌은 유색인종이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 어린 웨이지아는 학교에서 거의 매일 같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웨이지아: “사람들은 항상 제 눈이 너무 작아서 앞이 보이냐고 묻곤 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그래 덤벼 봐, 똑같이 되돌려 줄 테니까, 넌 어때?’라는 식이었죠.”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훗날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질문을 이어 가던 그 두려움 없는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웨이지아: “그 두려움 없음은 제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데서 온 것 같아요.”

놀림받던 작은 여자아이가 30년 뒤 미국 대통령 옆자리에 앉게 될 거라고는, 그때 그 학교 운동장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 자신조차도.


빗을 들고 흉내 내던 아이

다른 아이들이 빗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를 때, 웨이지아는 빗을 들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고 있었다.

Image generated by AI / The InnerView

웨이지아: “저는 빗을 들고 노래하는 척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빗을 들고 코니 청인 척을 했죠.”

코니 청. 미국 메이저 방송 저녁 뉴스를 진행한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당시 미국 방송계에서 아시아계 여성 앵커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린 웨이지아에게 코니 청은 — 유일하게 자신과 닮은 얼굴이 화면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코니 청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그리고 그녀의 인생을 바꾼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중학교 비디오 저널리즘 수업의 다이앤 윌리엄스 선생님.

웨이지아: “제가 방송인이 된 모든 이유는 윌리엄스 선생님 덕분이에요.”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윌리엄스 선생님은 웨이지아에게 학생 방송인 ‘채널 원 뉴스’ 대회에 한 번 지원해 보라고 권했다. 13,000명이 지원했고, 단 20명만 뽑혔다. 그중 한 명이 벅해넌에서 온 동양인 여학생이었다.

13,000명 중 20명. 좁디좁은 문이었다. 작은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그 문은 더 좁았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향한 그녀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수상자에게는 LA에서 일주일 반 동안 실제 방송 현장을 따라다니는 기회가 주어졌다. 13살의 웨이지아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사람들은 CBS 선데이 모닝의 트레이시 스미스, CBS 뉴스 기고자 리사 링이었다.

웨이지아: “저는 겨우 13살이었고, 그들은 제게 여신 같았어요. 지금도 그렇다고 말해야겠네요. 하지만 저는 방송 기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볼 수 있었고, 한 번 본 이상 그걸 지울 수는 없었어요.”

카메라 앞에 선 웨이지아는 또박또박 자신의 꿈을 말했다.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웨이지아: “저는 제2의 코니 청, 그리고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게 제 목표입니다.”

어떤 꿈은 본인이 말해 놓고도 농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농담 같은 꿈을 30년에 걸쳐, 천천히, 끝내 현실로 만들어 낸다.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Ask China”

2020년 5월 11일, 백악관 로즈가든. 코로나19로 미국에서만 8만 명 넘는 사망자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코로나 검사를 많이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기자가 마이크 앞에 섰다. CBS 뉴스 백악관 출입 기자, 웨이지아 장.

웨이지아 장: “그게 왜 중요합니까? 매일 미국인이 목숨을 잃고 매일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데, 왜 이걸 글로벌 경쟁으로 보십니까?”

트럼프: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죽고 있어요. 아마 그건 중국에 물어봐야 할 질문일 겁니다. 나한테 묻지 말고, 중국에 물어보세요. 알겠어요?”

웨이지아는 잠깐 얼어붙었다.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계 미국인 기자에게, 대통령이 “중국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트럼프는 곧장 다음 질문자로 CNN의 케이틀런 콜린스를 불렀다. 사건은 그렇게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웨이지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콜린스가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오는 짧은 틈을 비집고, 그녀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웨이지아 장: “대통령님, 왜 저에게만 콕 집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트럼프: “특정인을 향해 한 말이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고약한 질문(nasty question)을 하는 누구에게나 하는 말입니다.”

웨이지아 장: “그건 고약한 질문이 아닙니다. 왜 중요한 거죠?”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상을 떠났고, 그날의 브리핑은 그렇게 끝났다.

그날 저녁, 미국의 모든 뉴스 첫머리에 그 장면이 걸렸다. 중국계 여기자가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민자의 이야기예요”

메릴랜드 솔즈베리의 작은 방송국에서 시작해 볼티모어, 뉴욕을 거쳐 2015년 CBS 뉴스 안방까지 한 계단씩 올라갔다. 2017년부터 백악관 출입. 에드워드 R. 머로우 상, AP 통신상, 2023년 에미상이 차례로 그녀의 이름 옆에 새겨졌다. 그리고 2026년, 마침내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수장. 빗을 들고 코니 청을 흉내 내던 그날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블라드가 그녀의 이야기를 방송에 담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웨이지아: “당신이 제게 인터뷰를 하자고 부탁했을 때, 저는 정말 망설였어요. 우리 기자들은 결코 어떤 이야기의 초점이 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맥락 속에서 깨달았어요.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라, 꿈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에 온 사람들을 위한 이민자의 이야기라는 걸요. 특히 직접 봐야만 믿을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요. 그들은 이제 백악관에 있는 저를 볼 수 있잖아요.”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코니 청이 그러했듯이, 이제 그녀도 또 다른 이민자의 딸들에게 코니 청이 되어 가는 참이다.


같은 바닥에 엎드린 대통령과 기자

그녀가 오랜 시간 빚어 온 이 이야기가, 마침내 어떤 정점에 도달한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다시 2026년 4월 25일로 돌아가 본다.

6년 전 “중국에 가서 물어보라”며 등을 돌렸던 대통령과, “왜 저에게만 콕 집어서 그러십니까?”라며 물러서지 않았던 여기자. 두 사람이 같은 카펫 위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웨이지아는 다음 날 CBS 뉴스룸에서 “대통령과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바닥에 엎드렸다”고 회상했다.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미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와 그 권력에 가장 끈질기게 질문해 온 여자를 단숨에 같은 선 위에 올려놓은 것은 역사에 기록될 암살 시도 현장이었다. 바닥에 엎드린 그 순간, 두 사람은 더 이상 권력자와 기자가 아니었다.


객석에 있던 가족들

무대 뒤 대기실. 12명이 넘는 SWAT 요원과 비밀경호국 요원, 대통령 수행원이 분주히 오갔다. 정보는 엇갈렸고, 진행 중인 위협이 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웨이지아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장면뿐이었다 — 객석에 있는 일곱 살 딸. 남편. 그리고 여든을 넘긴 부모님. 그날 밤은 그녀가 회장으로서 처음 주관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자리였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한 자리였다. 그 모든 사람이 지금 그 위험한 객석에 있었다.

웨이지장의 남편과 자녀들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웨이지아: “제 경력 동안 수많은 총격 사건과 살인을 취재해 왔지만, 제가 직접 그 반대편 —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떤 취재 경험도 이런 상황에 대비하게 해줄 수는 없었어요.”

그녀는 모니터에서 가족이 앉은 테이블을 한순간도 떼지 못한 채, 동시에 행사장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무너질 수 없었다. 행사를 주도한 최고 책임자의 손에 엉망진창이 된 만찬장의 결말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꺼진 대기실에서

그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녀를 자신의 대기실로 불렀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호위하는 작고 조용한 방. 트럼프는 그곳에서 그녀에게 직접 상황을 브리핑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가 꺼진 곳에서 먼저.

트럼프: “우리는 단념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는 트루스 소셜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LET THE SHOW GO ON)”라고 올렸다.

기자들과 적대적 관계를 이어 온 대통령이었다. 그 사람이, 자기 안전이 위협받은 직후에 기자들을 위한 만찬을  계속 이어가자고 말한 것이다. 웨이지아는 그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법 집행 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행사 중단을 권고하면서 만찬은 한 달 내 다시 개최하기로 했다.


“우리”

만찬장에서 대피한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돌아와 브리핑룸 단상에 섰다. 여전히 턱시도 차림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이 약간 번진 웨이지아도 이브닝 드레스 그대로, 기자석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Photo: CBS Morning News (screenshot)

트럼프는 용의자에 관한 업데이트를 마친 뒤, 첫 질문권을 그녀에게 넘기며 말했다.

트럼프: “Madam Chairman(마담 체어맨), 아주 환상적인 일을 해내셨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저녁이었어요. 일정은 다시 잡겠습니다.”

평소 기자들에게 칭찬이 인색한 대통령이 기자에게 공개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Photo: CBS News 24/7 (screenshot)

웨이지아는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마이크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웨이지아 장: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특히 대통령님께서는 안타깝게도 이런 종류의 위협에 대한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에 더욱 여쭙고 싶습니다. 위협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이 우리에게 엎드리라고 했던 그 순간 —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지, 어떤 기분이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Photo: CBS Mornings (screenshot)

트럼프: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늘 충격적이죠. 저한테도 약간 그런 일이 있었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영부인이 제 오른쪽에 있었고, 어떤 소리가 들렸는데 — 저는 처음에 그게 쟁반이 떨어진 소리인 줄 알았어요.”

우리.

그녀가 우리에게라고 던진 공을, 그는 우리가라고 받았다.

‘우리’라는 대명사로 묶여 본 적 없던 두 사람이었다. “Ask China”의 그날, 너 같은 기자는 너희들의 나라인 중국에 가서 물어보라는 그 한마디는 너와 나를 가르는 칼날이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그날 밤, 대통령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웨이지아가 트럼프의 답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으로 직접 꼽은 문장이다.

트럼프: “이 행사는 표현의 자유에 헌정된 자리였고, 양당의 의원들과 언론인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 정말로 그렇게 됐어요. 사람들이 그저 하나로 뭉쳤다는 그 사실 때문에 말이죠.”

Photo: CBS News (screenshot)

평소 같으면 도저히 ‘우리’가 될 수 없을 사람들이 잠시 한 배를 탔다. 양당의 의원들, 행정부 관계자들, 언론인들. 그리고 6년 동안 상극으로 느껴졌던 한 대통령과 한 여기자까지. 모두가 같은 바닥에 엎드렸고,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큰 위험 앞에서 연약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하나뿐이다 — 함께 그 시간을 통과하는 것.


위기가 기회가 될 때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 사람은 잠시나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대통령도 기자도 아닌,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어쩌면 그 짧은 시간이 두 사람에게는 처음으로 서로를 같은 사람으로 바라본 거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음 주면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는 기자로, 그는 그 질문에 거칠게 응수하는 대통령으로. 그게 그들의 본업이고, 그래야 미국이 굴러간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두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 작은 자국 하나쯤은 남겨 두었을 것이다.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만약 그날 밤 트럼프 옆에 함께 엎드린 사람이 웨이지아가 아닌 백인 남성이었다면, 아시아계 이민자 여성이 아니었다면 — 우리는 지금 이 장면을 이토록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날 이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여느 해처럼 먹고 끝나는 잔치였다면 그녀의 등장이 이렇게 파급력이 있었을까.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의 운명에서 어떤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기도 하는 듯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그녀의 다음 페이지가 기다려진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The InnerView. No.13 2026년 4월 29일


Photo courtesy of Weijia Jiang’s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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