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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에서 벌어진 일

6분

2024년 9월 24일, 오후 3시 15분. 애틀랜타 벅헤드, 매리언 노인 아파트.

감시카메라에 한 여성이 잡혔다. 경비원 유니폼. 마스크와 안경으로 가린 얼굴. 손에는 컴캐스트 엑스피니티 로고가 찍힌 빨간 쇼핑백.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이 9층 건물의 각 층 복도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가 5층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계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6분 뒤. 같은 여성이 다시 엘리베이터에 나타났다. 마스크도 안경도 없었다. 바지는 크게 찢겨 있었고, 짙은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빨간 가방은 처음보다 불룩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왼손을 들여다보더니 바지도 내려다봤다. 1층에서 내려서는 다리를 절뚝이며 로비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비 데스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두 차례 더 5층에 올라갔다. 그때는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

김준기씨가 거주했던 매리언 아파트 5층 복도(Photo:Atlanta K)

그날 낮 12시, 김준기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그것이 카메라에 남은, 살아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날 오전 7시 38분, 출근한 간병인 N씨가 김씨 집 문을 열었을 때 안의 불은 꺼져 있었다. 주방 바닥에 김씨가 엎드려 있었고, 머리맡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부검 결과 자상은 54곳, 얼굴과 상체에 집중돼 있었다. 사라진 것은 지갑과 야구 모자 하나뿐이었다. 간병인이 치매 증상이 있는 김씨의 지갑을 전날 봤을 때 안에 들어 있던 현금은 32달러 정도였다.

장의사는 말했다. “이런 시신은 처음 봤습니다.”


구두를 고치던 손

김준기씨는 1981년 한국을 떠났다. 처음엔 시카고, 다음엔 애틀랜타. 한때 교량 건설 관리자로 큰 교각 일곱 개를 세웠다. 현장에서 젊은 인부를 돕다가 다리를 다친 뒤로는, 다운타운 웨스트 피치트리 로드에서 남의 구두를 고치고 지었다. 그렇게 이 도시에서 43년을 살았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고 김준기씨 (Photo: 김준기씨 가족 제공)

아내가 먼저 떠나고, 그는 벅헤드 노인 아파트에 혼자 남았다. 자식들은 뉴욕과 플로리다에 흩어져 있었다. 사건 전날 아침, 그는 같은 아파트 친구 황재숙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치과에 가야 한다고 했다. 황씨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필요한 걸 나눠 주는 사람이었어요. 원한 살 일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2014년, 그는 팔순 잔치에서 받은 용돈을 모아 한인회관 건립기금에 1,000달러를 냈다. 그것이 그가 한인 사회에 남긴 마지막 이름이었다.

치매 초기인 그는 평소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딸은 나중에 말했다. “그게 아버지를 표적으로 만든 것 같아요.”


친절한 경비원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은 자넷 윌리엄스(65). 이 아파트에서 적어도 5년을 경비원으로 일했다. 김준기씨의 가족이 찾아올 때마다 친절하게 맞아 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범행 다음 날에도 출근했다. 사건이 신고되던 날, 현장에 나온 수사관들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질문까지 던졌다. 그리고 한참 뒤, 슬픔에 잠긴 유족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용의자 자넷 윌리엄스 (photo:Fulton County Sherff’s Office)

사건 보름 만인 10월, 경찰은 윌리엄스를 체포했다. 디캡카운티 자택 압수수색에서 경비원 유니폼과 빨간 엑스피니티 가방이 발견됐다. 바지는 꿰매어져 있었다. 어떻게 찢어졌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허벅지의 큰 상처는 차고 문에 다친 것이라고 했다.

예비심리에서 한 수사관은 그녀가 마약 중독자였고, 중독이 범행과 얽혀 있다고 증언했다. 윌리엄스는 모든 것을 강하게 부인했다. 보석이 불허되자 그녀는 구치소 2층에서 몸을 던졌지만 살아남았다.


“법원을 떠나도 됩니다”

2026년 2월 27일, 풀턴 카운티 고등법원. 살인, 가중 폭행, 노인 착취. 모든 혐의에 무죄. 벨린다 에드워즈 판사가 말했다. “이제 법원을 떠나도 됩니다.” 윌리엄스는 큰 소리로 울었다.

같은 날, 장녀 박영기씨는 본보에 전화를 걸어왔다. 재판에서 칼에 난자당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거의 실신할 뻔했다고 했다.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범인이 무죄를 받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게 됐어요. 자식 된 도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알려주세요.”

담당 검사 톰 와이트는 한 문장을 남기고 법정을 나갔다. “재기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수정헌법 제5조, 이중위험 금지. 배심원이 무죄를 선고한 순간, 사건의 문은 영원히 닫힌다. 새 증거가 나와도, 수사가 엉터리였음이 밝혀져도, 같은 사람을 같은 사건으로 다시 세울 수 없다. 524호에서 벌어진 일은 그렇게 법적으로 영원히 미제가 됐다.


검찰의 빈손

재판은 1년 5개월을 끌었다. 배심원단의 심의는 단 한 시간이었다.

그 한 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재판이 드러낸 수사의 민낯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장에서 윌리엄스의 지문도, DNA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소지품에서 피해자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근무복을 비롯한 증거물은 혈흔 음성 또는 불충분 판정을 받았다. 냉장고에 찍힌 혈흔 묻은 손자국은 초기 수사에서 제대로 분석되지 않았다. 핵심 참고인 조사는 기소 전에 끝내지 못했다. 범행 도구는 끝내 찾지 못했다. 검찰이 손에 쥔 것은 엘리베이터 CCTV뿐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매리언 아파트 로비(Photo: Atlanta K)

동기를 묻자 검사는 답했다. “동기가 반드시 입증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배심원단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실한 수사가 부실한 기소를 낳고, 부실한 기소가 무죄를 낳고, 무죄가 내려진 순간 헌법이 문을 잠근다. 이 사건은 그 연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끝에 남은 것은 유족뿐이었다.


“몇 시에 출근했습니까”

간병인 N씨는 3년 동안 김준기씨를 돌봤다. 그의 주검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도 그녀였다.

재판에 증인으로 섰지만, 법정에서 그녀에게 돌아온 질문은 몇 시에 출근했느냐 같은 것들뿐이었다. 사건이 난 지 거의 2년 만에 열린 첫 재판. 기억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고, 정작 중요한 질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CCTV가 있었고, 피 묻은 옷이 있었다. 그런데도 무죄라니. 그녀는 그 결과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벅헤드 매리언 노인 아파트 (Photo:Atlanta K)

평결을 보며 N씨가 떠올린 것은 김씨가 죽기 1년쯤 전에 겪은 또 다른 일이었다. 아파트 앞 인도에 세워진 택시 때문에 드나들기 불편했던 노인이 이를 따지다가 기사에게 떠밀려 팔이 부러졌다. 기사는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갔다. 그 뒤로 김씨는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살해되던 날에도, 그 팔은 성한 상태가 아니었다.

두 번의 일을 겪으며 N씨는 소수계 노인의 피해가 번번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은 아닌지 깊은 불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도, 이번에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것 같아요.”


“누구든 들어올 수 있어요”

사건 다음 날, 본보 기자는 제보를 받고 매리언 노인 아파트로 달려갔다. 현장에 온 한인 언론은 본보뿐이었다.

기자가 건물 앞에 멈췄을 때, 수사경찰 차량도 거의 같은 시각에 도착했다. 노란 접근 금지 테이프는 아직 쳐지기 전이었다. 로비 시큐리티는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기자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갔다. 복도 끝, 524호 앞까지. 막아서는 손도, 폴리스 라인도 없었다.

그 무방비함이 곧 이 사건의 본질이었다.

벅헤드 매리언 노인 아파트 외관(Photo: Atlanta K)

240가구가 사는 이 건물은 애틀랜타 주택청 소유다. 카메라는 곳곳에 있었지만, 정작 복도에는 한 대도 없었다. 누가 어느 집에 드나드는지 기록되지 않았다.

아파트 1층 로비에서 만난 한인 주민들은 “이 아파트에는 한인 시니어들이 많이 살아요. 낮에는 시큐리티가 있고 밤 11시부터 새벽까지는 애틀랜타 경찰이 경비를 맡지만, 문이 열릴 때 누구라도 따라 들어올 수 있어 늘 불안해요.”라고 했다.

한 주민은 “주변에 홈리스가 많고 마약중독자도 많이 돌아다녀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섭다”면서 “누군가 저녁에 몰래 들어와 비상계단 같은 데 숨어 있었다면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이 54번 찔리는 동안, 그 복도를 본 카메라는 없었다. 김준기씨 사건 뒤, 같은 아파트의 경비원 둘이 말다툼 끝에 서로에게 흉기를 휘두르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중 출입문은 그제야 설치됐다.


어떤 죽음은 대통령이 나선다

평결이 나오기 한 달 전,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6년 1월 31일 밤, 애리조나주 투손. 84세 백인 여성이 자택에서 사라졌다. NBC 간판 앵커 사바나 거스리의 어머니, 낸시 거스리였다.

며칠 만에 대통령이 움직였다. 트럼프는 연방 수사기관의 전폭 지원을 직접 지시했다. FBI가 전국에 빌보드를 세웠다. 보상금 5만 달러. 제보 1만 8,000건. 그럼에도 낸시 거스리의 행방은 끝내 묘연하다.

사바나 거스리와 실종된 낸시 거스리 (Photo: 사바나 거스리 인스타그램)

김준기씨 사건은 정반대였다. 사건은 충분히 잔혹했지만, 주류 언론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이것에 이름을 붙여 두었다. ‘백인 여성 실종 신드롬.’ 2004년 저널리스트 그웬 이필이 명명한 뒤, 학술 연구로 거듭 검증됐다. 젊고, 백인이고, 중산층인 피해자에게 미디어와 수사기관이 자원을 몰아준다는 것.

2022년 기준, 실종 상태로 분류된 유색인종은 약 3만 4,000명이었다. 그들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비율은 통계적으로 현저히 낮았다. 시러큐스대 캐럴 리블러 박사는 악순환을 이렇게 짚었다. 경찰이 자원을 쏟으면 보도가 늘고, 보도가 늘면 다시 수사가 정당화된다. 미디어가 침묵하면, 수사도 침묵한다.

김씨는 그 저울의 가장 불리한 쪽에 있었다. 이민자. 노인. 남성.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낸시 거스리의 딸은 전국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 김씨의 딸들이 연락할 수 있는 곳은 한인 언론 하나뿐이었다.


24명, 그리고 25번째

조지아주 수사국이 공개한 미제 살인 명단에는 이름들이 있다.

2004년, 미용실에서 점심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사라진 38세 패트리스 엔드레스. 차 열쇠는 그대로였다. 1년 뒤 교회 뒤편 숲에서 유골로 발견됐고, 결혼 반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2009년, 산책 중 납치돼 2년 뒤 숲에서 나온 38세 크리스티 콘웰. 2012년, 자택에서 총에 맞은 에이미 엘리슨. 그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녀의 자식이었다.

장소도 방식도 나이도 달랐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대부분 유색인종이었고, 전국의 관심 밖에서 잊혔다.

조지아 미제 살인 희생자들 속 김준기씨 얼굴(Photo:조지아 수사국 GBI)

2000년 이후 이 명단의 피해자는 24명. 그중 아시아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준기씨가 사실상 25번째가 되면서 이 목록에 오른 첫 아시아계 이름이 됐다. 


Now / What’s Next

형사 절차는 끝났다. 유족에게 남은 길은 민사다.

민사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가 아니라 ‘증거의 우월성’이라는 낮은 기준으로 다툰다. 갈래는 둘이다. 용의자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그리고 보안을 방치한 건물 운영사와 소유주 애틀랜타 주택청을 상대로 한 관리 책임 추궁. 다만 둘 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승소도 보장되지 않는다.

조지아주 수사국은 여전히 제보를 받고 있다. 새 용의자가 특정되면 기소는 이론상 가능하다. 그러나 한 번 패소한 사건에 자원을 다시 쏟을 검찰은 드물고, 증거는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고 김준기씨 장례식 (Photo:Atlanta K)

현실적으로 이 사건은 시간과 함께 잊혀 가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사건 발생 초기, 김씨의 딸들은 본보에 연락해 “경찰 수사가 미진한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워요. 한인사회가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호소했었다. 

남는 질문은 결국 우리를 향한다. 우리 공동체의 가장 약한 사람이 잔혹하게 죽고 그 죽음이 단죄 없이 묻힐 처지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크고 오래 시스템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다음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잊히지 않도록,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9 2026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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