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4일, 로스앤젤레스.
백 살 생일을 48일 앞둔 찰리 멍거가 자택에서 CNBC 기자 베키 퀵을 맞았다. 휠체어에 앉은 몸은 야위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명료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변호사로 출발한 사람이 어느새 현자처럼 불리게 됐으니, 참 기묘한 인생이지요.”
워런 버핏의 60년 파트너. 그날 인터뷰는 그의 백 번째 생일을 기념해 준비됐다. 그러나 멍거는 방송을 보지 못했다. 인터뷰 2주 뒤인 11월 28일, 그는 아흔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대화에서 기자는 그에게 가장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물었다. 멍거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견뎌야 할 시간이 옵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없고, 죽어가는 아이를 고칠 수도 없어요.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걸으며 몇 시간씩 울어도 괜찮습니다. 울어도 돼요. 그러나 그만두지는 마십시오.”
그 말은 책에서 배운 교훈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살아낸 인생의 결론이었다.

대공황의 소년
기자: 어린 시절의 가난이 선생님의 인생관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멍거: 나는 1924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다닌 시절 대부분이 대공황과 겹쳤지요. 부자에게도 돈이 없었고, 굶주린 사람들이 집집마다 음식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할아버지 집 근처에는 떠돌이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있었어요. 어른들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늘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그 시절 워런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점에서 시간당 20센트를 받고 일했습니다. 워런도 나중에 같은 가게에서 일했지만 그때는 서로 만나지 못했지요.
나는 대공황 속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도 보았지만, 가족이 서로를 구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판사였던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모아 둔 우량 담보자산을 내놓아 친척의 은행을 살렸어요. 집을 잃은 가족에게는 자기 집의 절반을 내주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필요한 순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을 갖추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무라고 가르쳤고요.
나는 일찍부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입장에 섰을 때 내가 사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함께하고 싶은 것을 먼저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돈이나 명예보다 더 귀한 것을 얻습니다. 사람들의 정당한 신뢰입니다.
세상은 완전히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격 없는 사람만 계속 보상할 만큼 미쳐 있지도 않습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배우다
1943년,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멍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미 육군항공대에 입대했다. 군은 그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로 보내 기상학을 배우게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학사 학위도 없이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1948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수학, 기상학, 법학.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공부들이 훗날 그의 사고 체계를 이루는 기둥이 됐다.
기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나요?
멍거: 나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평균보다 나은 머리를 가졌지만, 천재들만 살아남는 분야에서는 성공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내가 받은 패를 최대한 잘 쓰려고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대학의 학과처럼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경제 문제 안에는 심리학이 들어 있고, 기업 경영에는 수학, 역사, 생물학과 법률이 함께 작용하지요. 한 가지 렌즈로만 세상을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 배우는 일을 아주 잘합니다. 벤저민 프랭클린, 찰스 다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사람들과 책을 통해 대화했지요. 이미 세상을 떠난 훌륭한 이들은 만나기 어렵다고 핑계를 대지도 않고, 약속을 취소하지도 않습니다. 책만 펼치면 언제든 그들의 가장 좋은 생각을 만날 수 있어요.
지혜를 얻는 일은 출세를 위한 선택 과목이 아닙니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덕적 의무입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알고 있던 것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 아주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진 채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워런이 ‘계속 배우는 기계’가 아니었다면 버크셔의 기록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한 시대를 통과하게 해 준 능력이 다음 시대까지 데려다 준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서른한 살, 아들을 묻다
멍거는 1945년 첫 번째 아내 낸시 허긴스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은 1953년 끝났다. 이혼으로 집과 재산 대부분을 잃은 그는 낡은 차를 몰며 작은 방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보다 더 잔인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덟 살 아들 테디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치료법도, 의료보험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멍거는 변호사로 일하고 다른 두 아이를 돌보며 병원을 오갔다. 아들의 침대 곁에 앉아 있다가 병원 밖으로 나와 혼자 거리를 걸으며 울었다.
1955년, 테디는 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자: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 앞에서도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멍거: 첫아이가 죽었을 때 나는 끊임없이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어요.
삶은 끔찍하고 부당한 타격을 줍니다.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나고, 어떤 이는 그 자리에 머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질투와 원망, 복수심과 자기연민은 사람을 망가뜨리는 사고방식입니다. 특히 자기연민은 편집증과 가까워요. 한 번 빠지면 세상 모든 일이 나를 해치기 위해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망치고 있다고 믿는 순간, 실제로는 내가 나 자신을 망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행을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슬픔은 피할 수 없어요. 나 역시 거리를 걸으며 울었습니다. 다만 고통을 신분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피해자로 남지 말고, 그 불행 속에서도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버티며 앞으로 가는 것.
울어도 좋지만, 그만두지는 않는 것.
부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멍거에게는 부양해야 할 대가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아이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거느린 사람”이라고 농담했다.
낮에는 법률 업무를 맡고, 남은 돈을 아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렇게 13년이 흐르자 투자로 모은 유동자산이 그동안 변호사로 벌어들인 세전 소득 전체보다 많아졌다.
1962년, 그는 투자회사 휠러 멍거 앤드 컴퍼니를 설립했다.
기자: 안정된 변호사 생활을 떠나 투자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까?
멍거: 겉으로 보면 대담한 결정 같지만 사실 나는 겁 많은 다람쥐에 가까웠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를 모은 뒤에야 움직였으니까요. 생활비 10년치를 확보하고도 한동안 법률회사에 한 발을 남겨 두었습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화려한 생활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이었어요. 부유한 고객에게 청구서를 보내고 돈을 기다리는 생활이 싫었습니다. 내 판단으로 일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를 원했지요.
준비만 하다가 평생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아요. 일생에 세 번이나 네 번 정도, 파이 진열대 앞에 초대받는 순간이 올 뿐입니다. 그때는 작은 조각만 집어서는 안 됩니다.

워런 버핏을 만나다
1959년, 서른다섯 살의 멍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고향 오마하를 찾았다. 지인들은 그에게 6살 반 어린 투자자 한 명을 소개했다. 워런 버핏이었다.
두 사람은 오마하 클럽의 별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몇 시간씩 통화를 이어갔다.
아내가 “왜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느냐”고 묻자 멍거는 대답했다.
“당신은 몰라.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기자: 두 분의 동업이 60년 가까이 흔들리지 않은 비결은 무엇입니까?
멍거: 워런과 나는 성격도, 정치적 견해도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원칙에서는 닮아 있었어요. 둘 다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약속을 지켰으며, 장기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함께 일할 사람을 고를 때는 지능보다 성품을 먼저 봐야 합니다. 게으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장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리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더 위험하지요.
워런은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배운 방식대로 실제 가치보다 싼 기업을 사들였습니다. 사업의 질이 형편없어도 가격만 싸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버크셔 해서웨이의 낡은 섬유 사업도 그렇게 샀지요.
나는 그에게 형편없는 회사를 헐값에 사는 일을 그만두고,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쁜 사업은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를 데려와도 좀처럼 고칠 수 없습니다. 훌륭한 경영자와 평판이 나쁜 사업이 만나면, 대개 살아남는 것은 사업의 나쁜 평판입니다.
1972년 우리가 인수한 시즈캔디는 이 생각을 증명했습니다. 공장이나 재고보다 더 귀한 것은 고객이 브랜드에 품은 애정과 신뢰였어요.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면 시즈캔디를 찾았고, 그 충성도를 무너뜨릴 경쟁사의 전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버크셔는 그 뒤로 싼 기업을 고르는 회사가 아니라,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는 회사로 바뀌었습니다.
동업은 누가 더 많은 공을 가져가느냐를 겨루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잘한 일은 기억하고, 실수는 장부에 적어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오래 가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한쪽 눈을 잃고 배운 것
1970년대 중반, 쉰두 살의 멍거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참기 어려운 통증 때문에 결국 안구를 제거해야 했다.
더 무서운 진단도 이어졌다. 남은 오른쪽 눈까지 실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람에게 실명은 삶의 중심을 잃는 일이었다. 멍거는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증상은 가라앉았고 오른쪽 눈의 시력은 지킬 수 있었다.
기자: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답을 찾으셨나요?
멍거: 정면에서 답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를 뒤집어야 합니다.
독일 수학자 야코비는 “뒤집어라, 언제나 뒤집어라”고 했습니다. 성공하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엇이 실패를 불러오는지 먼저 생각하는 겁니다.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겠다면 어떤 습관이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찾아 그것부터 피하면 됩니다.
나머지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나’만 묻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뛰어나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일을 꾸준히 피한 덕분에 살아남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엇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지부터 찾아보세요.
뒤집기가 당신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을 가장 먼저 의심하라
멍거가 투자자들에게 남긴 가장 엄격한 원칙은 좋은 주식을 고르는 법이 아니었다.
자기 두뇌에 속지 않는 법이었다.
그는 심리학, 경제학, 역사에서 인간이 반복해서 잘못 판단하는 이유를 수집했다. 보고 싶은 증거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 자기 이익을 정의로 포장하는 자기편향, 보상에 따라 행동이 변하는 인센티브의 힘을 평생 연구했다.
기자: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자격은 언제 생깁니까?
멍거: 반대편의 논리를 그쪽 사람들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때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면 아직 의견을 가질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생각을 스스로 부술 수 있어야 합니다. 찰스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맞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기록했습니다. 사람의 뇌는 불편한 증거를 빨리 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지키려 하지 않고 진실을 지키려 했어요.
이념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도 위험합니다. 한 가지 신념이 정신 전체를 지배하면, 사실을 판단하기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방어하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도 자기 생각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어리석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능이 높을수록 틀린 주장을 더 교묘하게 합리화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 의견을 내기 전에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십시오. 그곳에서 가장 강력한 논리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격해야 합니다.
지혜는 정답을 많이 소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틀린 생각을 남보다 빨리 버리는 능력에 있습니다.

부고를 먼저 쓰고 살아라
멍거는 큰 부를 이루고도 약 70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다. 친구들이 더 크고 화려한 저택을 지을 때도 옮기지 않았다. 자녀들이 부를 삶의 의무처럼 소비하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에서도 자신의 실패를 감추지 않았다. 아흔아홉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알리바바 투자를 자신의 최악의 거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누구에게나 잘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위대한 테니스 선수도 센터코트에서 형편없이 경기하는 날이 있어요.”
기자: 백 년 가까이 살아본 뒤, 좋은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무엇입니까?
멍거: 워런에게 자신이 원하는 부고를 먼저 써 보고, 그 내용에 맞게 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 부고를 따로 쓰지 않았어요. 내가 살아온 방식이 곧 부고가 될 테니까요.
인생에는 많은 고난이 옵니다. 그때는 버티며 앞으로 가야 합니다. 드물게 큰 기회도 찾아옵니다. 그때는 알아보고 붙잡아야 하고요. 교훈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고르고, 존경할 수 없는 사람 밑에서는 일하지 마십시오. 내가 사지 않을 물건을 남에게 팔지 말고,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과 일하십시오.
질투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수입보다 적게 쓰십시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평생 배우십시오. 기대를 조금 낮추는 것도 행복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완벽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실수도 많이 했고, 더 잘할 수도 있었어요.
성공하는 비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흔히 실패하는 길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2024년, 워런 버핏은 찰리 멍거가 없는 첫 연례보고서를 썼다.
그는 오랜 친구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라고 불렀다. 멍거가 자신에게 낡고 값싼 기업을 좇는 습관을 버리게 하고, 훌륭한 회사를 오래 소유하는 길을 보여주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멍거가 설계한 것은 버크셔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 인간이 고난을 통과하며 어떻게 생각을 다듬고,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될 것.
매일 조금 덜 어리석어질 것.
답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를 뒤집어 볼 것.
자신의 생각보다 진실을 더 사랑할 것.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오래 걸어갈 것.
불행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지 말 것.
그리고 삶이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울어도 좋다.
그러나 그만두지는 말 것.
글. 이승은 (Eunice Lee) / InnerView. No.26 2026년 8월 5일
편집자 주: 이 원고는 멍거의 여러 시기 발언을 시간순으로 엮어 재구성한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편집을 위해 새로 구성했으며, 답변은 실제 인터뷰·연설의 취지를 살려 번역하고 연결했습니다.
주요 근거 자료는 CNBC 마지막 인터뷰, 2017년 미시간대학교 대담, 2020년 칼텍 인터뷰, 2007년 USC 졸업 연설, 버크셔 해서웨이 2023 연례보고서, Reuters 부고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