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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이긴 걸까

금메달의 눈물, 은메달의 선언

2026년 밀라노.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한국 대표 최가온(17)이 금메달, 미국 대표 클로이 김(25)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클로이 김이 서 있던 자리에
이제 최가온이 올라섰다.

오랜 시간 클로이 김은 최가온의 롤모델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두 선수는 나란히 BBC 인터뷰석에 앉았다.


그날, 마이크 앞에서

최가온의 말

“사실 넘어지고 나서 처음에는 ‘이대로 포기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많이 울었습니다. 엉엉 울었어요. 그래도 이를 악물고 한 번 걸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걷기 시작하니 조금씩 다리에 힘이 돌아왔고, 그때부터는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다시 해 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첫 올림픽 메달이 금메달이라서 정말 행복합니다.”

클로이 김의 말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입니다. 저는 이 일을 영원히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이 종목이 좋은 손에 맡겨지고 있다는 걸 보는 것도 큰 의미입니다.

가온이는 제가 아는 선수들 중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재능도 뛰어나지만 그만큼 정말 열심히 훈련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놀라운 선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녀가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대회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클로이는 저 기술도 할 수 있고, 이 기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스노보드를 타러 온 것입니다. 어떤 메달이든 받게 된다면 좋겠지만, 제 우선순위는 항상 그 순간 제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그것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제 기준에서 저는 승자입니다. 끝까지 인내했고, 싸워냈기 때문입니다.”


데뷔의 떨림과 챔피언의 호흡

올림픽 직후의 인터뷰는 경기의 연장선이다.
숨은 아직 고르고 있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다.

최가온에게 이번 무대는 데뷔전이었다.
첫 출전, 첫 메달, 그것도 금메달.
그녀의 말은 사건의 순서를 따라 흐른다.

넘어졌다. 울었다. 이를 악물었다. 힘이 돌아왔다.

이 인터뷰는 메시지를 설계한 문장이라기보다,
방금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따라가는 고백에 가깝다.
처음의 언어는 생생하다.

반면 클로이 김은 여러 차례 올림픽을 경험했다.
경기뿐 아니라 인터뷰 자리마저 자신의 무대로 만들 줄 안다.

나는 영원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 자리는 좋은 손에 남겨졌다.
내 기준에서 나는 승자다.

경험은 문장을 다듬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인터뷰는
표현의 능숙함이나 성향의 차이라기보다
시간과 경험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차이에 가깝다.


같은 뿌리, 다른 문장

그러나 연륜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두 선수의 말에는 자라온 환경의 결도 배어 있다.

한국에서 자란 선수는 집단 속에서 훈련한다.
합숙과 반복, 위계와 책임.
성취는 종종 고통을 통과한 기록으로 말해진다.

“엉엉 울었다”는 고백은 약함이 아니라
통과의 증언이다.

미국에서 성장한 선수는 비교적 일찍
자신의 목소리를 설명해야 한다.
목표를 말하고, 강점을 말하고,
자기 기준을 세우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클로이 김의 말에는 주어가 선명하다.

나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가.
나는 오늘 무엇을 해냈는가.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터뷰 이후

인터뷰가 공개되자 소셜 미디어의 반응은 클로이 김에게 쏟아졌다.

“인품이 금메달이네.”
“진짜 멋지다.”
“삶을 철학으로 사는 스포츠인 같다.”
“이게 올림픽 정신이지.”
“괜히 퀸이 아니구나.”

좋아요 수가 수천 개씩 붙은 댓글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금메달은 최가온의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클로이 김의 말과 태도를 되새겼다.

대중은 메달의 색보다
그들이 보여준 자세를 인상 깊게 기억한다.


시상대에서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를 안아 주었다.
금메달리스트는 롤모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한국의 뿌리를 지닌 선수들이다.
환경은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잠시 부모의 마음이 되었을지 모른다.
‘둘 다 잘 자랐다.’

수년 뒤 순위는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장면은 기록보다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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