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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방아쇠를 당기는가

만찬장으로 뛰어든 남자

2026년 4월 25일 오후 8시 40분, 워싱턴 D.C. 워싱턴 힐튼 호텔.

턱시도와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 입은 2,600여 명이 대연회장 안을 채우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멘탈리스트 오즈 펄먼이 진행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참석한 백악관 기자단 만찬,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1년 중 가장 화려한 밤이었다.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Photo: Namu Wiki)

이때 로비 검색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옷차림에 12게이지 펌프식 산탄총. 그가 갑자기 금속 탐지기를 향해 돌진했다.

총성이 호텔 복도를 갈랐다. 가슴에 총탄을 맞은 시크릿 서비스 요원이 방탄조끼 덕에 쓰러지지 않고 권총을 뽑아 응사했다.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연회장에서는 둔탁한 “팡팡” 소리만 들렸다. 트럼프와 멜라니아, JD 밴스 부통령, 각료들이 시크릿 서비스에 둘러싸여 황급히 빠져나왔다. 턱시도 차림의 손님들은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겼다. 만찬은 취소됐다.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Photo: Namu Wiki)

체포된 남자의 이름은 콜 토머스 앨런(31). 캘리포니아주 토런스 한 교회의 장로 아들이자 과외 강사 겸 게임 개발자였다. 캘텍에서 기계공학을,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받은 사람이었다. 평소 학생들에겐 “지극히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가족에게 보낸 1,000단어짜리 글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서명했다. 

“콜 ‘콜드포스(ColdForce)’ ‘친절한 연방 암살자(Friendly Federal Assassin)’ 앨런.”


매니페스토:선언문

앨런은 공격 약 10분 전, 가족과 전 직장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조는 의외로 담담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많은 분들을 좀 놀라게 해 드린 것 같네요.”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면접’이 있다고만 말씀드렸는데, ‘아메리카 모스트 원티드’ 면접인 줄은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Cole Tomas Allen, 31, Suspect in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Shooting (Photo: Trump Truth Social)

행정부 관료들은 “최고위직부터 최하위직까지 우선순위에 따라” 공격 대상이라고 적었다. 단, FBI 국장 캐시 파텔은 제외였다. 호텔 직원, 손님, 시크릿 서비스, 의사당 경찰을 “비표적”으로 분류했고, 부상자를 줄이기 위해 “벽을 덜 뚫는 산탄”을 쓰기로 했다고 적었다. 

“누군가 억압받을 때 다른 뺨을 내미는 것은 기독교적 행동이 아니라 압제자의 범죄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폭력을 정당화했고, 기독교 신념에 근거하여 행정부를 ‘반역자’로 규정했다.

이메일을 받은 가족 중 동생이 코네티컷 뉴런던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시각은 공격 직전이었다. 늦었다.


“몇 번 겪어 봤지만…”

네 번째 트럼프 암살 시도였다.

2024년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장. 20세의 토머스 매튜 크룩스가 약 130미터 떨어진 지붕에서 AR-15 계열 소총을 발사했다. 첫 발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스쳤고, 한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뉴욕 타임스 더그 밀스(Doug Mills) 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 트럼프 옆을 스쳐 지나가는 흰 줄기가 총알이다. 2025년 퓰리처상 수상작

같은 해 9월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 라이언 라우스가 덤불 속에 숨어 총구를 겨눴지만 시크릿 서비스가 먼저 발견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두 달 전인 2026년 2월에는 마러라고 저택 정문에 산탄총을 든 남성이 접근했다 사살됐다.

트럼프는 CBS ‘60분’에서 자신이 만찬장에서 보인 반응을 이렇게 설명했다. 

“요원들이 ‘엎드리세요’라고 했지만 ‘잠깐만요’라고 했어요. 무슨 일인지 보고 싶었거든요. 결국엔 멜라니아랑 같이 바닥에 엎드렸어요. 저는 몇 번 겪어 봤지만, 멜라니아는 처음이었죠.”


데쟈뷔, 또 그 호텔

이번 사건이 일어난 워싱턴 힐튼은 그냥 호텔이 아니다.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7분. 취임 69일째였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워싱턴 힐튼에서 노동계 오찬을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다. T스트리트 쪽 측문, 방탄 리무진까지 4.5미터를 남겨두고 군중 틈에 섞여 있던 25세의 존 힝클리 주니어가 22구경 리볼버를 꺼냈다. 1.7초 동안 6발이 빗발쳤다. 

총격을 당하기 직전, 레이건 대통령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Wikipedia)

첫 발은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의 머리를 맞혔다. 경찰관과 경호원도 차례로 쓰러졌다. 마지막 여섯 번째 총알은 리무진 방탄유리에 튕겨 레이건의 왼쪽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폐를 관통했다. 심장에서 불과 2.5cm 빗나간 거리였다. 경호원 제리 파가 본능적으로 대통령의 머리를 잡고 차에 쑤셔 넣은 뒤 그 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3/30/1981 Aftermath of the assassination attempt outside the Hilton Hotel in Washington, D.C.(Photo: Wikipedia)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레이건은 산소마스크를 쓰기 직전 농담을 던졌다.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기를 바라오.” 

한 의사가 답했다. 

“대통령님,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힝클리는 대통령이 미워서 쏜 게 아니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여배우 조디 포스터를 사로잡고 싶어서였다. 그는 정신 이상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30년 넘게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2016년 풀려났다. 영웅을 자처했지만 그가 짝사랑한 여배우는 끝까지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브래디 대변인은 부분 마비를 안고 살다 33년 뒤 그 후유증으로 숨졌고, 그의 이름을 딴 총기 규제법만이 흉터처럼 남았다.

이 사건 이후 워싱턴 힐튼 측문에는 ‘대통령의 출입구(President’s Walk)’라는 별칭이 붙었다. 호텔은 그 뒤로도 백악관 기자단 만찬을 비롯한 워싱턴 정치 행사의 단골 무대였지만, 시크릿 서비스 내부에서는 늘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장소’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45년이 흘러, 같은 호텔에서 또 한 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총탄의 표적이 됐다. 레이건이 쓰러진 자리에서 직선거리로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두 번의 ‘찰칵’

미국 역사상 첫 대통령 암살 시도는 1835년 1월 30일 워싱턴 의사당 로툰다에서 일어났다. 

67세의 앤드루 잭슨이 한 하원의원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군중 속에서 페인트공 리처드 로런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거리는 2.5미터. 그는 데린저 권총으로 잭슨의 심장을 겨눴다.

‘찰칵.’ 뇌관만 터졌고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습기가 화약을 적신 탓이었다. 

늙은 대통령은 도망치는 대신 지팡이를 치켜들고 암살범에게 돌진했다. 당황한 로런스는 두 번째 권총을 뽑아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또 불발이었다. 데이비 크로켓 의원이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두 권총 모두 정상 작동했다는 게 후일 확인됐다. 두 번 연속 불발 확률은 12만 5천분의 1.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 암살 시도는 신화 같은 우연으로 끝났다.


포드 극장의 총성

미국의 첫 번째 ‘성공한’ 암살은 그로부터 30년 뒤에 일어났다.

1865년 4월 14일 밤 10시 15분, 워싱턴 D.C. 포드 극장. 

나흘 전 남군의 리 장군이 항복하며 4년의 내전이 막 끝난 직후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모처럼의 평화를 누리며 부인과 함께 희극 ‘우리의 미국인 사촌’을 보고 있었다. 대통령석 7번 박스의 문은 경호원이 자리를 비운 탓에 무방비였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들어섰다. 당대 최고 인기 배우이자 열렬한 남부 지지자였던 26세의 존 윌크스 부스였다. 연극이 절정에 달해 객석 전체가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부스는 데린저 권총으로 링컨의 뒷머리를 쏘았다. 둔탁한 파열음이 웃음소리를 찢었다. 링컨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의자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포드 극장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을 저격하는 존 윌크스 부스(Picture: Wikipedia)

부스는 무대 뒤편으로 3.6미터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리가 부러진 채로 그는 군중을 향해 외쳤다. “폭군에게는 언제나 이런 최후를!” 절뚝거리며 그는 사라졌다. 미국 첫 대통령 암살의 막이 그렇게 올랐다.

부스는 12일간 도주했다가 버지니아의 한 헛간에서 사살됐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남부조차 그를 영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전한 남부의 지도자들마저 “그가 우리에게 가장 큰 해를 끼쳤다”고 했다.


암살자와 의료진의 ‘합작’

링컨이 죽은 지 16년 뒤. 1881년 7월 2일 아침 9시 30분 워싱턴 D.C. 볼티모어-포토맥 기차역.

취임 4개월 차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모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합실을 걷고 있었다. 국무장관과 담소를 나누던 그는 경호원조차 없는 무방비였다. 어두운 그림자처럼 찰스 기토가 다가왔다. 44구경 브리티시 불독 리볼버를 들고 있었다. 기토는 자신이 가필드를 당선시켰다고 굳게 믿으며 파리 영사 자리를 끈질기게 요구하다 거절당한 망상증 환자였다.

‘탕!’ 첫 발은 팔을 스쳤고, 두 번째 총탄이 등허리를 뚫었다. 가필드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기토는 도망치다 즉각 체포됐다. “나는 스탈워트(공화당 보수파)다! 이제 아서가 대통령이다!” 그가 외쳤다. 자신이 역사를 바꿨다고 믿는 외침이었다.

프랭크 레슬리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페이퍼에 실린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 암살 사건 판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필드의 진짜 사인은 총탄이 아니었다. 의사들은 소독하지 않은 맨손과 기구로 79일간 상처를 들쑤셨다. 패혈증이 온몸을 갉아먹었다. 9월 19일 그는 백악관 침상에서 숨을 거뒀다. 기토는 다음 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손수건 속의 총

매킨리 대통령은 자신을 보러 줄을 선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1901년 9월 6일 오후 4시, 뉴욕주 버펄로 팬아메리칸 박람회장 ‘음악의 전당’. 무더운 늦여름 날씨라 많은 사람들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그 줄 속에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가 있었다. 오른손은 흰 손수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안에는 32구경 아이버 존슨 리볼버가 숨어 있었다.

아킬레 벨트라메의 삽화에서 리언 촐고츠는 1901년 9월 6일 천 조각 밑에 숨긴 리볼버로 매킨리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했다.

매킨리가 친절하게 왼손을 내민 순간, 촐고츠는 손수건째로 두 발을 발사했다. 흰 조끼가 붉게 물들었다. 군중과 경호원들이 그를 짓눌렀다. 그러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매킨리는 가쁜 숨으로 외쳤다. “그를 살살 다루게(Go easy on him, boys).”

매킨리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8일 뒤 숨졌다. 

폴란드계 미국인이었던 촐고츠는 자신을 노동자의 영웅이라 믿었지만, 미국 노동운동은 그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무정부주의 운동조차 그와 거리를 뒀다. 그는 한 달여 만에 전기의자로 처형됐다. 

가장 큰 변화는 그의 죽음이 아니라 매킨리의 죽음에서 왔다. 42세의 젊은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하며 미국의 20세기를 열었다.


총 맞고도 90분 연설

그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11년 뒤 표적이 됐다.

1912년 10월 14일 저녁 8시, 위스콘신주 밀워키 길패트릭 호텔 앞. 

총격 직전 밀워키에서 자동차 위에서 연설하는 루스벨트
(Photo: Wikipedia)

진보당(불 무스) 후보로 세 번째 대권에 도전 중이던 53세의 루스벨트가 유세장으로 향하기 위해 오픈카에 막 올라섰다. 그때 군중 맨 앞에 서 있던 바텐더 출신 존 슈랭크가 38구경 콜트 리볼버를 가슴 정중앙에 발사했다.

총탄이 명중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쓰러지지 않았다. 가슴 안주머니에 두껍게 접혀 있던 50쪽짜리 연설문 원고와 묵직한 강철 안경집이 총알의 속도를 줄였다. 군중이 “그를 죽여라!”라며 달려들었지만 루스벨트는 막아섰다. “그를 다치게 하지 마시오. 내게 데려오시오.” 사냥꾼이자 해부학에 밝았던 그는 피를 토하지 않는 것을 보고 폐가 멀쩡하다는 걸 직감했다. 병원행을 거부하고 강당 연단에 올랐다.

1만 청중 앞에서 외투를 열어젖혔다. 피로 붉게 물든 셔츠와 총알 구멍이 뚫린 원고를 들어올렸다. “여러분, 제가 방금 총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90분간 연설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피 묻은 셔츠 (Photo:Wikipedia)

의사들은 끝내 총알을 제거하지 못했다. 루스벨트는 그 총탄을 가슴에 품은 채 평생을 살았다. 슈랭크는 정신 이상 판정을 받고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그는 “매킨리의 유령이 명령했다”고 진술했다. 영웅을 자처한 또 한 명의 광인이었다.


마지막 라이드

그리고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새겨진 그날.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 텍사스주 댈러스 딜리 플라자. 

눈부신 햇살, 가득한 환영 인파.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영부인을 태운 짙은 푸른색 링컨 컨버터블 리무진이 시속 18km로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건물을 향해 굽은 길을 돌았다. 

케네디 대통령이 피탄되기 직전 촬영된 사진 (Photo:Wikipedia)

“대통령 각하, 댈러스가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겠죠.” 텍사스 주지사 부인의 웃음 섞인 말이 끝나는 순간 첫 파열음이 울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환영의 폭죽 소리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총성이 모든 것을 바꿨다. 6층 창문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쏜 총알이 케네디의 목과 머리를 뚫었다. 케네디는 아내의 무릎으로 무너졌고, 재클린은 패닉 속에 남편의 뇌 조직 파편을 주우려 트렁크 위로 기어 올라갔다. 경호원 클린트 힐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그녀를 다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리무진은 병원으로 질주했지만, 댈러스의 아스팔트 위에 미국의 거대한 상실이 새겨진 뒤였다. 

오스월드는 이틀 뒤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자신의 동기를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후 60여 년이 흘렀지만 음모론이 끝나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귀를 스친 총알, 치켜든 주먹

2024년 7월 13일 오후 6시 11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야외 유세장.

붉은 모자를 쓴 수만 명의 군중이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에 올라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스크린의 통계표를 가리키기 위해 그가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 그 찰나, 맑은 여름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세 번 연속 울렸다.

트럼프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오른쪽 귀를 움켜쥐었다. 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숙이세요!”라는 비명과 함께 시크릿 서비스가 무대로 달려들어 그의 몸을 두꺼운 방어막처럼 덮었다. 

약 130미터 떨어진 건물 지붕에서 20세의 토머스 매튜 크룩스가 발포한 것이었다. 군중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고, 유세에 참석한 한 시민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저격수가 사살되고 1분여의 정적이 흐른 뒤,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트럼프가 다시 일어섰다. 얼굴에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을 에워싼 경호원들 사이로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싸우자(Fight)! 싸우자!” 

피격 직후 피를 흘리며 주먹을 치켜세우는 트럼프
(Photo: Wikipedia, AP통신의 에번 부치가 촬영한 사진)

충격에 빠져 있던 군중들은 곧바로 “USA!”를 연호하며 폭발적으로 화답했다. 생중계로 전 세계에 송출된 그 컷은 양극화된 미국 정치의 민낯과 권력을 향한 본능이 충돌한 가장 상징적 이미지로 역사에 새겨졌다.

크룩스는 공화당 등록 유권자였다. 민주당 측에 소액을 기부한 적도 있었다. 그의 동기는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 그 무게

2025년 1월 20일 정오, 워싱턴 의사당 로툰다.

영하의 추위 탓에 옥외 행사가 실내로 옮겨진 트럼프의 두 번째 취임식이었다. 멜라니아가 두 권의 성경 — 어머니가 준 가족 성경과 1861년 링컨이 사용했던 그 성경 — 을 받쳐 들고 옆에 섰다. 그러나 트럼프는 성경에 손을 얹지 않은 채 오른손만 든 채로 35단어를 따라 읽었다. 그의 오른쪽 귀에는 6개월 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스친 총알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맹세하며, 능력의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할 것이다.” 

Ceremony – Swearing In – 60th Inaugural Ceremonies
for Donald J. Trump – January 20, 2025
(Photo by Ike Hayman/ Official House Photographer)

이 짧은 35단어의 선서 뒤에는 200년의 피가 묻어 있다. 4명이 죽었다. 링컨, 가필드, 매킨리, 케네디.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가슴에 총알을 품고 평생을 살았다. 레이건은 폐가 뚫렸다. 그리고 트럼프는 귀에 총알이 스친 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Now / What’s Next

백악관 만찬장 암살 시도로부터 사흘 뒤인 4월 28일 오전, 백악관 사우스 론.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를 맞이하는 공식 환영식이 열렸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4일간의 국빈 방문이었다. 군악대가 ‘갓 세이브 더 킹’과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차례로 연주했고, 21발의 예포가 워싱턴의 봄 하늘을 갈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짙은 남색 정장에 그의 페이보릿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올랐다. 그 옆에 선 멜라니아 여사는 깃과 단추가 정교하게 자리 잡은 아이보리색 투피스 스커트 슈트에, 챙이 넓은 모자를 우아하게 눌러 쓴 채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사흘 전 만찬장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겼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찰스 3세 국왕, 영부인 멜라니아, 카밀라 왕비가 행사장에 입장해 무대 위에 올라 있다. (Photo:DWS NEWS 스크린샷)

연단의 트럼프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국식 날씨로군요.”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이날 미국의 모든 신문 1면을 채운 것은 국왕의 방문, 다음 날 예정된 의회 합동 연설, 그리고 이란전 발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휘발유 가격이었다. 콜 토머스 앨런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흘 전 워싱턴 힐튼 10층 객실에서 아침을 맞았던 앨런은 같은 시각 연방 구치소에서 종신형을 기다리고 있는 범죄자로 전락했을 뿐이다.

200년 가까이 누적된 암살자 명단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방아쇠를 당긴 자들 중 누구도 자신이 꿈꾸던 영웅이 되지 못했다. 정치적 폭력은 자신이 옹호하려는 명분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 

CBS ’60분’ 인터뷰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
(Photo: 60 Minutes 스크린샷)

총격 다음 날 ‘60분’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한 말에 주목해 보자. 

“암살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보세요. 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에요. 큰 이름들이죠. ‘영광이다’라고 말하긴 싫지만…저는 워낙 큰일들을 해 왔으니까요.”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3 2026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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