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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비 대신, 권총을 가져왔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2026년 5월 5일 오전 9시 57분, 텍사스주 캐롤턴 121번 고속도로 인근 K타운 플라자.

달라스에서 북쪽으로 32km. 인구 13만 도시 캐롤턴에는 한인 4천여 명이 산다. 그 한인 상권의 심장이 K타운 플라자다. H마트, 한국식당, 미용실, 부동산 사무실. 한국어 간판이 영어 간판보다 많은 곳.

(Photo: Fox4 Screenshot)

그날 아침, 광장시장 안쪽 사무실에는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건물주 유양근. 광장시장 관리책임자 조성래. 부동산 중개인 올리비아 김과 김요성 부부. 사업 회의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문이 열렸다. 같은 건물 1층에서 일식당 ‘깐부스시’를 운영하는 한승호(69)가 들어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렌트비는 없다. 대신 권총을 가져왔다.”

그는 먼저 휴대폰을 걷었다. 신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조성래가 출구를 향해 뛰었다. 등 뒤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숨졌다. 유양근, 올리비아 김, 김요성은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총성과 총성 사이, 75분

총성이 멈춘 뒤 한승호는 자리를 떠났다.

오전 11시 13분, 그는 4마일(6km) 떨어진 ‘더 뷰’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부동산 중개인 에드워드 슐레이의 집이었다. 한인 사회에서는 ‘조용학’으로 알려진 사람.

(Photo: Fox4 Screenshot)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슐레이가 평소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것을 한승호는 알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였으니까. 안으로 들어선 그는 두 발을 쐈다.

“당신이 내 돈을 가져가는 것에 지쳤다.”

슐레이는 자신의 거실에서 숨졌다.

다음 행선지는 H마트 캐롤턴점이었다. 수산물 코너의 직원들과 평소 안면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주머니에는 아직 실탄이 남아 있었다. 인사를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계획이었다.

12시 12분, 경찰이 H마트 주차장에서 그를 체포했다. 마지막 한 발은 끝내 쓰지 못했다.

(Photo: Fox4 Screenshot)

오전 9시 57분 첫발에서 12시 12분 체포까지, 정확히 2시간 15분. 그중 살인에 쓰인 시간은 첫 총격에서 두 번째 사망자가 나오기까지의 75분이었다.

이것은 격분한 사람의 폭발이 아니었다. 명단이 있었고 동선이 있었다. 

한승호는 모든 혐의를 시인했다. 2건의 계획적 살인, 3건의 가중 폭행. 보석 없음. 그는 덴튼 카운티 구치소로 이송됐다.

(Photo: Fox4 Screenshot)

1년 전, 25만 달러를 걸었다

이 비극이 시작된 것은 1년 전이다.

2025년 5월. 한승호는 K타운 플라자 안에 있던 일식당 ‘깐부스시’를 인수했다. 인수가 약 25만 달러. 월 임대료 1만 2천 달러. 달라스 한인 상권에서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이 인수를 주선한 사람이 슐레이였다. 건물주 유양근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부동산 중개인. 한승호는 경찰 진술에서 “깐부스시 인수 자체가 슐레이의 권유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Photo: Fox4 Screenshot)

문제는 자리였다. 광장시장이 들어선 그 자리는 이미 갤러리아 마트, 오마켓, 케이프레쉬 마켓이 차례로 망해 나간 곳이었다. 한 투자자는 손실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한승호가 들어갈 때, 그 자리에는 이미 망령들이 살고 있었다.

손님은 기대만큼 오지 않았다. 1만 2천 달러의 렌트비는 매달 목을 졸랐다.

그 와중에 한승호는 슐레이와 유양근의 권유로 조지아주 부동산 투자에 돈을 넣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슐레이에게 7만 달러, 유양근에게 5천 달러. 총 7만 5천 달러. 69세 노인의 노후 자금 전부였다.

슐레이는 약속했다. 투자 수익으로 깐부스시 렌트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 한승호는 올리비아 김이 건물주를 설득해 렌트비를 월 2천 달러 더 올리려 한다고 믿었다. 이미 1만 2천 달러도 못 내고 있던 그에게, 그 소문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5월 5일 오전 9시 57분, 그는 그 사형 선고를 거꾸로 집행하러 왔다.

(Photo: Fox4 Screenshot)

또 다른 이야기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해자 한승호의 진술이다. 

총상에서 회복 중인 건물주 유양근의 부인은 사건 이틀 뒤 지역 한인 매체에 직접 연락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7만 5천 달러? “남편은 5천 달러도 받은 적이 없다.” 그 돈은 죽은 슐레이가 받아 조지아 투자에 쓴 것이며 자신의 남편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한 발 더 나갔다. 슐레이가 받은 7만 5천 달러 중 실제 투자에 들어간 것은 5만 달러뿐이고, 나머지 2만 5천 달러는 슐레이가 개인적으로 챙겼다고 했다.

렌트비 인상? “완전히 왜곡됐다.” 오히려 한승호 부부가 사정이 어렵다며 찾아왔고, 3개월 동안 월 2천 달러씩 깎아 주기로 배려했다는 것이다. 조지아 투자에서 잃은 돈을 렌트비 감면으로 만회하려 한 쪽은 한승호였다는 주장이다.

그녀는 한승호의 평소 폭력성도 폭로했다. “사건 약 한 달 전, 한승호씨가 차에 타려는 슐레이씨를 향해 차량에 총을 쐈다.” 다혈질이고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좋은 사람은 살인을 하지 않는다.”

조성래의 지인들도 입을 열었다. 오스틴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출신, 재미대한체육회 부회장,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신실한 신앙인, 며칠 전 아들 결혼식을 끝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그가 그날 회의실에 있었던 이유는 건축업 경력을 살려 광장시장 재건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총소리에 출구로 달려가다가 등 뒤에 총을 맞았다. 지인들은 호소했다. “억울하게 죽은 고인을 두 번 죽이지 마라.”

한승호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유양근 측의 반박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7만 5천 달러의 행방은 양측 진술 사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

2022년의 경고는 왜 묻혔는가

이 건물에서 갈등이 폭발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22년 1월, 달라스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달사람닷컴’에 한 편의 폭로글이 올라왔다. 같은 자리의 푸드코트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다 쫓겨난 세입자가 쓴 글이었다.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갤러리아 측이 POS 기기 사용을 강요했다. 개업 후 두 달간 매출 대금이 지급되지 않아 빚을 내가며 식당을 운영했다. 가게를 넘길 때는 3만 달러 보증금 중 1만 5천 달러만 돌려주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강요당했다. ‘셋업비’ 명목으로 1만 달러를 공제했다. 글쓴이는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다시는 꿈틀거리는 지렁이 밟으려 하지 마시고, 새해 돈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4년 뒤, 같은 건물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 글이 사실인지, 사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검증된 적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고음은 이미 4년 전부터 이 건물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Photo: Fox4 Screenshot)

증오범죄에 떨던 커뮤니티, 자기 손으로 자기를 쐈다

캐롤턴 한인 사회는 지난 4년간 이미 너무 많은 총성을 들었다.

2022년 5월, 달라스 헤어월드 살롱. 흑인 남성이 한인 미용실에 난입해 총격. 직원 3명 부상. 증오범죄로 분류됐다.

2022년 8월, 달라스-포트워스 프리웨이. 접촉사고로 시비가 붙은 30대 남성이 신진일씨를 총으로 쏴 살해.

2023년 4월, 달라스 한인타운 해피데이 주점. 술 취한 62세 한인 남성이 한인 여주인 강희정(53)씨를 총으로 쏴 살해.

2023년 5월, 캐롤턴 옆 동네 앨런 아웃렛. 백인우월주의자 마우리시오 가르시아가 50발 넘게 난사. 한인 일가족 조규성(37)·강신영(35)씨 부부와 3세 막내아들 등 8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살아남은 6세 아이의 사진이 미국 전역을 울렸다.

그리고 2026년 5월, K타운 플라자.

처음 셋은 외부에서 날아온 총알이었다. 외국인 혐오, 도로 분쟁, 백인우월주의. 한인 사회는 그때마다 분향소를 차리고 와치타워를 세우고 순찰을 늘려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우리는 약자고, 표적이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한인이 한인을 쐈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교회에 다닐 법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27년 전, LA에서도 같은 총성이 울렸다

캐롤턴의 총성은 한인 사회의 오래된 기억을 깨웠다.

1999년 2월 9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채프먼 플라자. 건물주 허영수와 매니저 리처드 신이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1년 전 같은 상가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다 폐업한 이기태.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소송 중이었다.

(Photo: CBS LA Screenshot)

이기태는 두 사람의 발을 묶은 뒤 38구경 권총으로 10여 발을 발사했다. 마지막 한 발은 자신의 머리에 쐈다. 범행 직전 가족에게 남긴 말은 “오늘 내로 결판을 내겠다”였다.

27년이 흘렀다. 장소도 바뀌었고 사람도 바뀌었다. 그러나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는 구도. 한인 상권의 임대차 분쟁. 일식·스시 식당 업주. 건물주와의 금전 갈등. 법은 있었지만 닿지 않은 분쟁. 그리고 총.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국까지 와서 서로 죽이는가”

폭스4 달라스가 이 사건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댓글이 2,500개 넘게 달렸다.

놀랍게도, 가해자를 옹호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

“남의 돈으로 장난치지 마라. 어떤 사람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사기당하다 결국 폭발한 것 같다. 놀랍지도 않다.”

“쏘는 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인생 가지고 돈을 뜯어내는 게 더 잘못이다.”

곧 댓글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인 전체를 향했다.

“한인들은 절대 한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된다.”

“그들 커뮤니티에서 흔한 일이다. 숨기고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한인들은 자기들끼리 이런 짓을 자주 한다.”

“소규모 사업자들이 자기 친구들에게 털린다.”

그리고 마지막. 한국 사회 자체를 겨눈 댓글들이었다.

“독성 한국 머니 컬처(Toxic Korean money culture).”

“한국인들은 다른 한국인들을 일상적으로 사기친다. 그저 모른 척할 뿐이다.”

“왜 미국까지 와서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죽이지?”

한인 사회가 미국에서 평생 쌓아 온 ‘모범적 소수민족’의 이미지가 댓글창에서 깨지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백인우월주의자의 난사도, 흑인 강도의 침입도 아니었다.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곪아 터진 문제였다.

신뢰가 무기가 되는 순간

에스닉 커뮤니티 — 같은 민족끼리 모여 사는 이민 사회 — 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미국의 복잡한 법체계를 건너뛸 수 있는 통로이자 이민 1세대가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기반이다. 좁은 사회 안에서는 평판이 곧 담보였고, 같은 모임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보증서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 신뢰가 양날의 검이 될 때다.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계약 조건을 애매하게 처리할 수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소송을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 커뮤니티가 좁기 때문에 평판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 ‘미국식’을 내세워 계약을 강제하고, ‘한국식’을 내세워 법적 대응을 막는다. 유리할 때마다 코드를 바꾸는 이 이중성은 에스닉 커뮤니티에 특유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에스닉 커뮤니티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작동한다.

한 달라스 한인은 이렇게 적었다.

“한인 변호사에게 상담했더니, 자기가 속한 한인 단체에 그 사람이 같은 회원이라며 못 맡겠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에게 갔더니 수수료가 받을 돈과 거의 같았다. 결국 미국계 변호사에게 의뢰해 민사 소송에서 이겼지만, 상대가 이미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아 변호사 비용 7천 달러만 날리고 돈은 못 받았다.”

승소해도 돈을 못 받는다. 한인 변호사는 같은 모임 회원이라 못 맡겠다고 한다. 미국 변호사 수수료는 받을 돈과 맞먹는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1999년 LA의 이기태도, 2026년 캐롤턴의 한승호도, 막다른 골목에서 같은 답을 골랐다.

“오죽했으면” vs “두 번 죽이지 마라”

사건 다음 날인 5월 6일 오전, 달라스 한인회관 사무실에 분향소가 마련됐다. 흰 국화꽃과 두 사람의 영정. 미국 한복판에 차려진 한국식 분향소였다. 한인회와 북텍사스 한인상공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확인되지 않은 소문 확산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Photo: Fox4 Screenshot)

그러나 호소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인 사회는 이미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이 분출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사기꾼들에 대한 심판이다.” 가해자 가족을 위한 고펀드미(GoFundMe) 모금 제안이 나왔고, 깐부스시에 가서 매출을 올려 주자는 연대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부는 가해자가 “우리 대신 쓰레기 청소를 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다른 쪽에서는 공포와 분노가 교차했다. “어떤 억울함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다.” “살아남은 가해자 한 명의 진술만으로 죽은 사람을 단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사이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한인 사회의 민낯이 까발려져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인들끼리 사기치는 일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듯하다.”

부끄러움 너머에 작은 기대가 묻어 있었다

Now / What’s Next

수사는 계속되고 있고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캐롤턴 코리아타운은 조용해졌다. 인근 식당 주인 다니엘 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 내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올드 덴튼 로드 주변의 한글 간판들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지만, 그 아래를 오가는 사람은 줄었다.

(Photo: Fox4 Screenshot)

막을 순 없었을까. 분쟁이 곪을 때까지 손을 쓰지 못한 시스템. 한인 상공회의소, 한인회, 한인 변호사 협회 — 분쟁을 법정 아래 단계에서 중재할 수 있는 기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같은 회원이라 못 맡고, 평판이 걸려 침묵하고, 결국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밀린다. 

이민 사회의 신뢰는 가장 값진 자산이자 가장 위험한 무기다. 그것을 무기로 쓰는 순간, 커뮤니티는 감옥이 된다. 그 감옥 안에서 누군가는 노후 자금을 잃고, 누군가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누군가는 결국 권총을 든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까지 왔다. 이러려고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 이승은 (Eunice Lee) / Frame. No.16 2026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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